팀장의 연봉에는 '감정 쓰레기통'도 포함된다 (1)

극 대문자 T인 내가 F들 사이에서 살아남은(?) 이야기

by 햅피백수
Prologue

"팀장님 T발 C에요?"
: MBTI 'T' 성향인 사람들에게 하는 말로, 원래는 T와 C의 자리가 바뀌어야 하는데, 너무 심한 욕설로 보여 그 위치를 바꾼 말이다.


상대방의 말에 공감은 "오" "아" "그렇군" 이 3가지 표현력으로 돌려쓰던 나는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MBTI의 최대 피해자였다.


억지 공감을 요구하고, 이미 듣고 싶은 대답을 정해놓은 직원들의 경우, 나에게서 생각했던 반응이 나오지 않으면 나를 감정도 이해 못 하는 사이코패스 취급했고 그들의 반응에 나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추악할 수도 있는 존재인지..

알고 싶지 않았는데 알게 되었다.





대표님이 자기를 싫어하는 거 같아서 운다는 직원의 말에 나도 울었다. ㅅㅂ


뿌엥~ 대표님이 저 싫어하는 거 같아요


생각해 보면 어릴 적 학교를 다니면서도 선생님이 나를 싫어하는 거 같다며

우는 친구들은 본 적이 없는 거 같다.

하지만 학교가 아닌, 엄연히 월급 받는 회사에서 대표님이 자신을 싫어하는 거 같다며

몇 번이고 울던 직원이 있었다.


학교 같았던 회사 분위기에서 나는 직원이 울면 달래줘야 하는 포지션이었는데,

갑자기 일을 하다가 눈물을 보이는 퍼포먼스로 회사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드는 건 심각한 문제였다.

사무실에서 울고, 화장실에서 울고, 복도에서 울고.

원인이 어찌 되었던 직원이 울면 울게 만든 회사가 나쁜 놈이 되는 분위기였던 터라..


애드라.. 제발 그만해 줘.. 너희 12살 아니고 22살이야.. 멈춰


그렇게 울고 있는 그녀를 보고 직원들은 꿀사탕을 발견해 몰려드는 개미들 같았고, 그런 그들에게 공감을 요구하며 회사 욕을 부추기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회사에 일을 하러 온 사람인지, 놀러 온 사람인지 참..

그 후, 울었던 이유를 알게 된 나는 허.. 이마를 탁 치며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다.


"대표님이 저 싫어하는 거 같아요"


아이고..

이게 회사야 유치원이야.


"빼엑 난 일단은 울어야겠으니깐 울 거야 뿌에엥!"


여자라서 그런지 너무 감정적인 거 같네요


그러면 뿌엥 '이슈'가 발생하게 되었을 때 그 '이슈'를 대처하는 오너의 태도는 어땠을까?

나의 오너는 전혀 납득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고 나도 그런 그를 100% 이해했었다.

회의실에 불려 가서 이 말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여자라서 너무 감정적인 거 같은데.. 울만한 문제는 아니지 않나요?"


맞아요. 울만한 이유 절대 아닌 거 저도 알 알아요.

그의 말대로 충분히 울만한 이유도 아니고, 회사에서 제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여과 없이 모든 것을 드러내는 미성숙함은 어디에서도 이해받지 못할 행동이라는 걸 알지만..


'여자라서'라는 오너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좋은 사람도 맞는데 마냥 좋은 사람은 아니얐네요! 나쁜 모습은 꽁꽁 숨기고 있었다니!


돈보다는 회사의 성장.

그 성장은 함께 일한 직원들 덕분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던 '10년 전 내 오너'는 바깥에서 갑작스러운 비가 오면 직원들에게 기다리라며 혼자 온몸으로 비를 맞아가며 우산을 사 오던 배려심 넘치는 사람이었고, 회식이라도 하는 날은 절대 직원들이 집게를 잡지 못하게 홀로 고기를 굽던 사회에서 만나기 힘든 꽤 괜찮은 어른이었다.


그런 그의 입에서 '여자라서 그런 거 같다'라는 성차별적인 이야기가 나왔을 때 느꼈다.

'오너가 변했다'가 아니라, 그의 새로운 본모습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을.

차라리 어린애 같은 미성숙한 행동이라고 집어줬다면 좋았을 텐데..


옛날의 그는 군대에서 여상사 밑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여자들이 어떤 행동에 상처를 받는지 안다고 자신 있게 말했었다.

그 배움을 거름 삶아 앞으로 여직원들이 많아지더라도 그녀들의 감정 변화에 자신 있게 대처할 수 있다고 말하던 사람이었는데.. 쩝.


너희 왜 싸우는지 안 궁금하다고.. 아니 내가 회사에 일하러 왔지 싸움 중재하러 왔냐고..


한일전 보다 뜨거웠던 대표 vs직원들의 기싸움


출근해서 사무실에 들어가면 종종 눈을 마주치던 직원들이 있었는데, 그건 꽤나 섬뜩한 기분이 들곤 했다.

쒸익쒸익, 한껏 가늘어진 눈을 흘기며 언제 불만의 폭탄을 터트릴지 '각'을 재고 있었던 모습 때문에..

아직 애를 낳아보지 못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이 회사 사람들의 엄마가 된듯한 기분을 종종 느꼈다.


연고전, 고연전, 한일전보다 더 뜨거웠던 대표 vs직원 대결 구도는

궁금하지도 않은 그들의 불편한 감정의 소리를 듣게 만들었는데,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내 처지는 감정 쓰레기통에 딱 걸맞았다.

그 감정 쓰레기들은 내가 딱히 피드백을 해줄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었거든.

그저 냄새만 존재하는 썩은 감정들...


차라리 '위에서 까라면 그냥 까'라는 회사였다면 내가 덜 괴로웠을 텐데,

'우리 회사는 누구나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할 수 있는 수평적인 문화예요'라는 듣기 좋은 말만 내세우며 답정너 자세를 선보이는 대표님 덕분에 나는 이 리치이고 저리 치였다.


너희 다 썩은 물인데 왜 누가 더 맑은 물이냐 싸우고 있냐고요..


하지만 대표님에게도 여러 고충은 있었다.

가장 큰 한 가지는 성장과 책임감은 관심 없지만 월급은 많이 주세요!라는 몇몇의 직원들의 태도였다.

그의 이런 고충은 세상에서 제일 꿀잼이라는 험담(?)으로 나에게 발현되었는데..


어떤 직원은 하는 거에 비해 돈을 많이 받아가는 거 같다. 일을 만들어서라도 시켜라. 또 다른 직원은 저렇게 일하면 안 된다. 너무 잘해주지 마라. 등등..

나름 매일 출퇴근을 성실히 하는 것만으로도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직원들의 신념은

대표님에게 한없이 부족해 보였고, 그건 듣고 싶지 않은 험담으로 나에게 고스란히 돌아오기 일쑤였다.


문제는 직원들이나, 대표님이나 나에게 각자 힘든 것만 털어내면서 '이건 당연히 이해되지 않아요?'라는 디폴트가 장착되어 있었던 것인데..

몰라 C벌!!

내가 왜 너희들 기싸움에 공감해줘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이럴 거면 차라리 나한테 대한민국 평균 변호사 월급을 줘라!


"앞으로 대표님과 직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기싸움은 변호사인 저를 통해서 해결하시길 바랍니다"


짖어라, 월월 짖어라, 그냥 개가 짖는다고 생각하자.
왜 사람 기를 죽여요? 제가 징징거리는 건 이유가 있다고요!


워낙 다양한 사람이 모이는 곳이 회사다 보니 각자의 발작버튼은 존재했는데, 그 버튼이 매우 가볍던 사람이 있었다.

특히나 듣고 싶은 말을 해주지 않으면 그 반응은 생각보다 엄청났다!


"팀장님 어떻게 해야 연봉협상을 잘할 수 있나요?"

"본인 일에 최선을 다하고, 회사는 과정보다는 결과 우선적이니 어떻게든 회사 매출에 기여한 정도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으면 잘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라고 말한 그날의 나를 후회한다.


'왜 사람 기를 죽이고 그래욧!!!!'


아무리 성과를 내는 게 없었어도! 아무리 연봉협상을 10년째 하고 있던 나였더라도! 입사 한 달째, 회사 프로세스만 배우고 있던 직원이었더라도! 그전의 경력이 우리 회사에서 전혀 경력직이 되지 않더라도!


'능력 있으신 거 같으니까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라고 말했어야지 멍청이!
그렇게 그의 발작버튼을 눌러버린 내가 들은 그날의 말은 꽤 트라우마가 되어버렸다.


시간이 흘러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여서 영혼마저 탈탈 털려있던 어느 날..

내 기준 내 업무가 잘 풀리지 않아, 그의 앞에서 상심하는 모습을 보였던 적이 있었는데 그런 내 모습이 또 그의 발작 버튼을 눌러버렸다.


'팀장님이 직원 앞에서 그러면 어떡해요! 저보다 상황이 낫잖아요! 저 기죽이려고 그러는 거에욧?!'


기죽이냐는 그 말은 요즘도 꿈에 나올까 조마조마하다.

진짜 PTSD 오지게 왔네;


내로남불 오지네.. 남이하면 불륜이고 네가 하면 로맨 스지 아주


음, 그러고보니 항상 일관성 있는 사람도 있었네

본인의 자존심만 지키면 자존감이 높아질 거라 생각하는 그 일관성.

자존심과 자존감을 동등하게 두고 있었던 그는 이런 일관성을 지킬 수만 있다면 본인이 상대방에게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꽤 마음에 들어 했었고, 그 모습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그어놓은 선을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밟으면 발작 버튼은 여지없이 눌러졌다. 삐!


"정말 예의가 없네요!!"


선을 밟은 사람은 한순간에 배려가 없는 괘씸하고 무례한 사람이 되었고, 그런 그의 모습에

한두 명씩 점점 그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소스라치게 어깨를 털어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긋지긋하다고.

더 이상 그 사람 이야기는 듣고 싶지도, 하고 싶지도 않다고.


충격적인 건 본인은 상대방들이 그어놓은 선을 고무줄 놀이하듯 마음껏 뛰 넘어 다녔다는 것인데..


저는 물을 쥐어 짜내도 더 이상 물도 나오지 않는 걸레가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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