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만의 '쉬인'의 귀환

장정일 시집 <눈 속의 구조대>

by NJ

캄캄한 항문을 보여줘/당신의 가장 감추고 싶은 것/당신이 줄 수 없는 것/당신이 아닌 것을 줘/침과 오줌과 똥 <중략> <구더기>


‘쉬인’이 돌아왔다. 무려 28년 만의 귀환이다. 30대 초반의 청년에서 이제 그는 60을 바라보는 장년의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그가 이제 철이 들었냐고? 천만에. 기형도식으로 말하면 그는 아직도 ‘이상한 소년’이다. 김현이 우려한 데로 ‘섹스 과잉’은 여전하다. ‘불경스런 시적 징후’는 도처에 널려 있다. 그는 장정일이다.

한 편의 ‘가정 요리서’를 통해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 햄버거를 후딱 만들어 내는 신박한 묘기를 보여준 이후, 거의 매년 한 권씩의 시집을 세상에 내놓더니, 뚝! 갑자기 시를 쓰지 않았다. 이유를 묻는 독자에게 어느 날 갑자기 시마(詩魔)가 와서 시를 쓰기 시작했고, 어느 날 갑자기 그것이 떠났다는 둥 얼토당토않은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그는 희곡과 소설로 갈아탔다. 그는 늘 그래 왔듯 문단권력 주변을 배회하는 대신 생계에 충실했다.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읽고 '독서일기'를 매년 출간했고,
대학입시 논술 필독서인 '삼국지'도 집필했다. 틈틈이 재즈를 들었음은 물론이다.


시를 쓰지 않았을 뿐 '적진에 던져진 비정규 게릴라'인 그의 전투는 28년간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하기야 그에게 시와 산문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문학과 삶이 일치하는 존재에게 문학은 그냥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가는 것, 잘 훈련된 게릴라처럼 낮은 포복으로 끝없이 전진하는 것.


‘나는 문예지를 볼 때(2019년 기준) 시인들의 약력부터 보고, 1990년생 이전 태생이라면 거들떠도 안 봐. 등단한 지 10년만 되면 모조리 폐닭, 쉰내 나는 쉬인이지. (중략) 예, 예, 꼴리는 대로 부르셔요. 나는 김수영 장정일입니다. 포르노 작가라고 비웃지 않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올시다’
<양계장 힙합>


금기와 성역은 자기를 검열하거나 순응하는 자의 몫. 그는 명랑하고 발랄하게 세상과 사람을 조롱하고 냉소하며, 스스로에게는 위악과 자조의 궁극을 드러낸다.
아파요/더 때려요!/ 사랑합니다! (중략) <얼굴 없는 사랑 중>


식탁에 펼쳐진 바쇼오 시집에/냉잇국이 튀었네./
앗,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
<우스운 하이쿠>


시인의 자서도 추천사도 해설도 없는 이상한 시집.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언어적 카르텔에 속하지 않는 진짜 게릴라 장정일의 ‘리얼 힙합’* 시집 ‘눈 속의 구조대’. 좋은 시집은 독자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좋은 시집은 대체 아름다움 이란 무엇인가 회의하게 만든다. 이 시집이 그렇다. 이 책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


* '리얼 힙합' : 한국일보 이슬기 기자의 시평 중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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