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자에게 경의를

by NJ

내 기억이 옳다면 태어나서 최초로 들었던 대중가요는 이미자였다. 어머니가 집안일을 하실 때 때때로 '동백아가씨'나 '가슴 아프게'를 흥얼거리셨던 것이 기억난다. 가사를 모르는 부분은 대충 낮게 허밍 하고 아는 소절은 소리를 더 높여 불렀다.

가난했던 시절, 집안에 있는 문화시설이라야 진공관 라디오가 전부였다. 식구들은 전부 라디오 가청권 내에 앉아서 연속극 '섬마을 선생님'을 들었고, 이미자와 바니걸스, 배호와 남진의 노래를 듣고, 따라 불렀다.

라디오에서 동백아가씨가 흘러나올 때 나는 동백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스무 살 가까운 터울의 큰누님은 겨울에 피는 예쁜 꽃이라고 대답했다. 아가씨가 뭐냐고 물어보니 아직 시집을 가지 않은 처녀라고 둘째 누님이 말했다. 어떻게 이 작은 라디오에서 이런 노래가 나오냐고 물으니 그제야 나를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보다 몇 세대 이전 가수로 알고 있었던 그런 이미자를 어제 동네에서 만났다. 물론 실제로 대면한 건 아니다. 동네 길거리 현수막에서 그녀의 사진을 목격한 것이다. 강산이 네댓 번 바뀔 정도의 세월이 지났는데 그는 아직까지 현존했다. 게다가 9월 며칠 동네에서 공연까지 한다는 것이 아닌가.

그 근처 또 다른 현수막에는 '박학기의 추억여행'을 홍보하는 또 다른 현수막이 걸려있다. 박학기와 이미자.
마치 두 개의 다른 시간대 한가운데에 서있는 듯한 착각에 순간 어지럽다.

박학기가 추억이라면 이미자는 역사다. 박학기가 한 시절을 소환한다면 이미자는 삶에 배어있는 풍속과도 같다.

이미자에게는 호칭이 없다. 이미자씨도 이미자님도 아닌 그냥 이미자. 소크라테스나 마호메트와 같은 절대적 인격에게 우리가 존칭을 붙이지 않 듯, 이미자는 이미자,
장정일식 표현을 빌면 이미자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이미자인 것이다.

이전 권위주의 정권 시절, 이미자는 '왜색 창법'이라는 이유로 권력에 의한 대중 통제의 희생양이 된 적이 있다. '금지곡'으로 묶였던 몇 곡의 노래는 사실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 있고 많이 불려진 노래였다. 금지곡 여부와 관계없이 어머니는 몇십 년 동안 동백아가씨를 흥얼거렸다.

이미자의 나이를 세어서 무엇하리. 올 초 그의 은퇴 소식을 포탈에서 잠시 읽었는데, 다시 무대에 선다니까 반갑다. 휠덜린의 말처럼 '삶 속에서 예술을 배우고 예술 속에서 삶을 배우는' 모든 예술가들에게 은퇴란 없다. 그들은 영원한 현역이다.

죽을 때까지 현역으로 있는 모든 예술 노동자들에게 경의를! 이제하, 신중현, 패티김, 황융위, 에릭 크랩튼, 애쉴리 브라이언, 신구,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할아버지들에게도 경의를! 그들의 삶에도 예술에도 경의를!

#이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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