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시인 소동파는 '인간사란 그저 한판의 바둑'이라는 짧고 강렬한 명구를 남겼다. 바둑과 관련한 처세 명언이 유난히 많은 이유도 바둑이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전제에 기인한 것이리라.
'목숨을 걸고 둔다'는 저 유명한 조치훈의 말은 한 판의 바둑에 임하는 그의 투혼과 정신의 치열함을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그는 대국 중 잘못된 수를 두었을 때, 두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를 세게 때리며 자학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곤 했다. 그러나 숱한 패배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 멀쩡하게 살아있다. 바둑에 목숨을 거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바둑을 미학적인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린 것은 패배를 인정하는 방법, 즉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있다. 반상의 미학자라 불리는 일본의 오타케 히데요는 '바둑을 질 수는 있어도 추한 수를 둘 수는 없다'라는 말로 그의 바둑 철학을 완성했다. 실제로도 그는 종반 무렵, 한두 집 정도 차이밖에 없는 미세한 국면에서도 서슴없이 '돌을 던졌다'.
곤궁한 삶을 구차하게 연명하느니 반상을 아름답게 여백으로 남겨놓고 돌을 거두는 이러한 승복의 미덕은 다른 스포츠나 게임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바둑만의 에토스라고 할 수 있다.
좋아하는 바둑기사를 꼽으라면 한 치의 주저 없이 조훈현이다. 희고 긴 손가락으로 장미 담배를 연신 꺼내 물던 모습을 TV에서 볼 때부터 나는 그의 오랜 팬이었다. 그의 훤칠한 외모, 과장 없는 억양과 세련된 말투 그리고 상식을 뛰어넘는 행마와 유장한 기풍까지 그는 가장 섹시한 기사임에 분명하다.
국민 만화 '미생'을 탐독한 이유 또한 각 챕터마다 실린 박치문의 기보해설을 보기 위해서였다. 조훈현 9단과 네웨이핑 9단의 응씨배 결승5번국 제5국. 그의 해설은 어느 서사시보다도 극적이고 문학적이었다. '텅 빈 바둑판은 요염하게 빛나고 그 위로 폭풍전야의 정적이 흐른다. 외나무다리에 선 승부사들은 묻곤 했다. 그곳 망망대해의 어디에 나의 삶이 존재하는가. 이제 나는 칼을 품고 대해로 나가려 한다. 나는 과연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두 적수는 무심한 눈빛으로 판을 응시한다.' (미생 p15)
시인 함성호는 첫 시집 '56억 7천만년의 고독'에서 아예 기보 형식의 시를 실험하기도 했다.
'42가 느슨했다는 조훈현 기왕의 평……. 57이 졸렬했다고 유 3단은 반성했다……. 서봉수는 저 일점을 완벽하게 반성할 수 있을까. 전대 고수의 환생이라는 이창호의 그 지루한 기다림을 복기한다.'(p63-64)
조훈현에게 따라붙는 별명이나 수사는 유난히 많다. 그의 잘생긴 외모와 날렵한 행마를 빗댄 '조제비'라는 별명이 있는가 하면, 판을 뒤흔드는 빠르고 역동적인 기풍을 의미하는 '속력 행마', 그리고 세계 최다승 (1938승) 최다 우승(180회)에 걸맞은 전신 (戰神)이라는 별명도 있다.
오늘 (7.12) 자 한국일보는 정치인으로 변신한 조훈현의 인터뷰를 다루고 있다. 그는 정치인으로 보낸 지난 몇 년을 복기하면서 그의 변신이 결과적으로 악수(惡手)였음을 고백했다. 정치는 반상보다 더한 흑백 대결의 장이며 타협의 여지가 없는 비정한 공간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정치 입문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며 걱정했지만 막상 최고수 자신은 그 필연적 악수를 보지 못한 모양이다. 물론 시행착오의 시간을 포함해 그것도 한 판의 바둑이다. 그러나 더 아름다운 한 판의 바둑을 기대했던 그의 많은 팬들에게 그의 정치 행마는 다소 아쉬운 것이었다.
돌은 일단 한 곳에 착점 되면 다시 번복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한 수는 최후의 한 수이다. 누구나 한 판의 바둑을 둘 수 있지만 흑과 백이 잘 어우러진 좋은 바둑을 두는 것은 쉽지 않다. 아름답고 충만한 '진짜' 바둑 한 판은 더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