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아저씨 K와 친분을 맺은 지 십 수년이 지났지만 그가 커피 마니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불과 몇 개월 전이다. 오랜 세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이후, 한동안 세상과 인간에 대해 험한 말을 하고 다니더니 그것도 지쳤는지 결국 커피에 정착한 듯 보였다.
알고 보니 내공이 상당한 나름 커피 전문가였다. 커피에 대한 기본 상식과 역사적 배경은 물론이고 커피 벨트를 연필로 쓱쓱 그려가며 '유 갓 잇?' 어쩌고 하며 설명할 때, 비로소 그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커피를 볶는다. 어디에 납품하거나 판매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인터넷으로 생두 가격을 비교해서 구입하고, 블랜딩하고 마침내 로스팅까지 하는 그 번거로움을 감내하는 이유를 물었을 때, 그가 퉁명스럽게 답한다. '그기 바로 아날로그 정신 아이가 이 멍충아야'.
덕분에 나는 부르스타 가스불과 수망으로 '아날로그' 로스팅한 여러 종류의 원두를 공짜로 즐긴다. 로스팅과 냉각이 끝나면 그는 저울로 갓 볶은 원두 1kg을 잰 후 그것을 봉지에 담아 밀봉한다.
아직 마지막 과정이 남아있다. 이것을 위해 여기까지 왔다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포스트잇 한 장을 착 뽑아 로스팅한 날자, 품종 그리고 받는 사람 이름을 꼼꼼하게 기록한다. ‘2019.6.26일. 케냐 AA + 만델링. To xx with love’. 포스트잇을 봉지에 탁 붙이면 진짜 끝이다. 내 한 달간의 커피 양식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공짜는 아니다. 그는 ‘커피 수여식’이 끝나면 항상 갈증이 난다며 호프집을 향해 앞장을 선다. 근데 맥주를 마시면서 들어야 하는 그의 커피 강의가 의외로 들어줄 만하다.
대부분은 두서가 없으나 기술자에게 이론의 정치함까지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 덕분에 커피가 무슬림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부터 프랑스 부르주아 혁명의 산실이었다는 등 잡다한 지식까지 덤으로 익혔으니 참 고마운 일이다.
몇 년 전 커피와 관련해 ‘공정무역’이라는 단어가 국제적으로 화두가 된 적이 있었다. 소위 ‘윤리적 소비’라는 가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으나 국내에서의 반향은 그리 크지 않았던 듯하다. ‘윤리적 소비’는 궁극적으로 ‘윤리적 자본’을 목표로 하고 있는 데, 개인적으로 그게 가능할지 의문이다. '착한 자본'은 '이성적 인간'이라는 표현처럼 어색하다.
이것과는 사뭇 결이 다른 커피에 대한 기사도 생각난다. 미국 스타박스 매장을 방문한 400명 가까운 고객이 차례로 뒷사람의 커피값을 대신 치렀다는 ‘미담’이다. 뒷사람의 몫까지 한꺼번에 계산하는 이른바 ‘페이 잇 포와드 (Pay it Forward)의 행렬이 11시간 가까이 이어졌다니 참으로 놀라운 풍경이다.
누구에게 커피는 장시간 가혹한 육체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불공정'한 삶의 현장이고, 또 누구에게는 얼굴도 모르는 타인에게 베푸는 폼나는 친절이며, 멋과 여유 혹은 그것의 과시이기도 하다.
K에 의하면 커피는 딱 두 가지 맛, 쓴 맛과 신 맛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혀로 감각하되 언어로 정의할 수 없는 맛들이 얼마나 많은가. 작은 머그에 담겨 있는 커피 한잔. 내가 매일매일 마주하는 시간처럼 커피는 얼마나 지독하게 쓰면서 달콤한가. 나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세상처럼 그것은 또한 얼마나 시리도록 시면서 향기로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