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는 피부 위에 새겨져 있는 심장의 언어이다.
그것은 가장 고통스러우므로 가장 강렬한 형태의 자기 서약이며, 동시에 번복할 수 없는 자기 선언과도 같다.
타투의 라틴어 어원은 스티그마 (낙인, stigma). 말이나 소의 엉덩이에 가해지는 불도장이 그것이다. 지금이야 주요 패션 아이템 중의 하나지만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에 그것은 가장 가혹한 형벌 중의 하나였다.
기록은 대략 기원전 700년전부터 타투가 시작 되었다고 전한다. 고대 그리스의 노예는 이마에 그 신분의 낙인이 찍혀있었다. 노예는 국제적으로 빈번히 거래되었고, 시장에서 합법적으로 거래되는 노예들의 몸에는 납세필 (Tax Paid) '도장'이 선명했다.
현자 플라톤 조차 징벌적 타투 옹호론자였다. 그는 절도범의 경우 식별이 용이한 신체의 일부분에 죄목을 새겨넣어야 하며, 특히 가장 중한 죄인 신성모독의 경우에는 범법자의 얼굴에 죄목을 새겨넣어 공동체로부터 영구 추방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 때문인지는 몰라도 강제적 타투는 당시 공공연한 관행이었다. 테오필로스 황제는 자신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두 수도사의 얼굴에 무운(無韻) 포르노시 11수를 각각 새겨넣었다.
이러한 잔혹한 징벌방식은 로마시대에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시저, 키케로, 세네카 조차도 이 잔혹한 형벌의 현장을 자주 친견(親見) 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압권은 역시 폭군 칼리귤라였다. 그의 취미 중의 하나는 심심할 때 궁정에서 눈에 띠는 누군가를 지명해서 마침 떠오른 시상을 지명된자의 몸 위에 '써내려' 가는 것이었다. 바늘을 쥐고 있던 사람은 물론 황제 자신이었다. 광적인 데카당스, 비범한 새디스트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징벌 관행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와서야 멈추게 된다. 그는 인간의 얼굴은 신의 형상을 본떠 만든 것이므로 어떠한 이유건 그것을 훼손하는 자는 신분과 지위의 고하를 떠나 신성모독으로 간주하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이후 타투는 행위의 주체가 변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낙인을 찍었고 그 낙인의 언어로 무언가를 말하거나 표현하고자 했다. 인간의 육체는 더 이상 신성의 사원에 머무르지 않고 세속도시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때론 어떤 것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혹은 영육을 보호하는 부적의 기능으로, 신념이나 삶의 모토를
자신과 타자에게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그 불도장의 고통을 감내한다.
영화 '메멘토'나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주인공은 기억해야할 가장 중요한 텍스트를 자신의 육체 위에 기록한다. 안젤리나 졸리의 왼팔에는 입양한 네아이가 태어난 곳 위도와 경도가, 브레드 피트의 배에는 06/4/75라는 아내 졸리의 생일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모든 사회적 이슈가 그렇듯 타투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비판의 시선은 주로 타투의 현시적이고 자기애적인 성향에 향해있다.
특히 어깨 타투의 경우는 바라보는 사람의 의사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드러나므로 지극히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자기표현 방식이라고 비난한다.
결국 타투는 사람들의 관심을 먹고살며, 더 이상 주의를 끌 수 없을 때 종국에는 상처 받을 수 밖에 없는 저급한 사이비 아트 장르라는 것이다.
타투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가 일부 유효하다 하더라도 여전히 타투만이 가지고 있는 치명적인 매력을 부인하기는 쉽지 않다.
타투는 육체로 만들어진 언어가 아니라, 언어로 만들어진 육체이므로, 텅 빈 육체를 텍스트로서의 육체로 변화시킬 수 있는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예술 장르이다.
얼마전 인터넷에서 포의 '애너벨 리'를 온몸에 문신한 한 여성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한소절의 생략도 없이 전편을 하나하나 온몸에 새겨나갈 때 그녀의 고통이 얼마나 컸으리라는 것은 상상하고도 남는다.
이 긴 서정시를 선택한 이유를 기자가 묻자, 언외의 의미를 강조하는 타투 특유의 문법과 형식을 빌어 그녀는 가장 짧고 대답했다.
'고통은 아름답거든요' (Pain is beauti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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