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일본 영화를 기대했다면, 이 영화는 좋은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 영화는 오히려 상영시간 내내 관객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반전도, 플롯도 요란한 카메라 워크도 없다. 마치 단렌즈로 포착한 평범한 일상을 스냅사진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단조롭고, 때문에 눈곱만큼도 재미없는 영화.
베니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영화‘라는 평을 들었다는 얘기에 별 망설임 없이 영화관을 들어섰지만, 상영 시작 후 30분이 지나자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십수 년 전 문학상을 한 번 받았지만 더 이상 소설을 쓸 수 없어 흥신소 일을 하며 가족과의 재결합을 기대하고 있는 사내. 아버지가 죽은 후 낡은 연립주택에서 홀로 살고 있는 노모, 이혼 후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은 전처, 사내 아들 싱고.
해체된 가족이 태풍으로 인해 우연히 노모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오랜만에 따뜻한 시간을 같이 보낸 후 다시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형식만큼이나 내용도 단조로운 영화.
그러나 이 영화는 극 중 인물들 사이의 짧은 대사를 통해 범상치 않은 삶의 진실을 우회하지 않고 드러내고 있다. 영화는 일상의 남루함 그 자체가 우리의 삶이며, 태풍이 지나간 후 망가진채 거리에 버려진 우산의 모습이 결국 우리의 미래라는 것을 우울하게 암시하고 있다.
희망은 태풍에 날아가는 로또와 같이 공허한 것이다. 노모는 오히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계속 포기하라고 권유한다. 누군가를 깊게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라는 그녀의 말에 이르러서 관객의 불편함은 증폭된다.
기껏해야 노인은 베란다에 놓인 화분을 바라보는 사내에게 ‘꽃도 열매도 자라지 않지만 세상에 다 필요한 것’이라는 말로 관객들을 애써 위로할 뿐이다.
그러나 가끔 영화에서 보여주는 작은 삽화는 따뜻하다. 사내와 노모가 얼음 빙수를 힘들여 깨 가며 먹는 모습, 태풍이 몰려오는 밤, 가족끼리 함께 나누는 카레라이스, 비바람이 세차게 부는 놀이터 그 좁은 공간에서 부자간에 맞닿는 살과 그 체온 같은 것들...
며칠이 지나서야 영화에 대한 불편함이 조금씩 사라지고 영화 속 몇몇 따뜻한 풍경들이 더 도드라지게 다가왔다. 누군가와 불화를 겪은 이후 화해를 할 때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이 영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이쪽을 향해 손을 내밀어온다.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잘해보자는 거였어. 알잖아.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 영화는 멋쩍게 어깨를 한번 툭! 친다. 무언가를 갈망하지만 채워지지 않고 누군가를 그리워 하지만 대체로 혼자일 수 밖에 없는 주변부의 일상.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삶이며, 그것을 인정한 이후에야 그 속에 '진짜' 서정이 드러난다는 것을 이 영화는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천천히 이야기한다.
‘바다보다 더 깊이 누구를 사랑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거야’ 긍정도 체념도 달관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에서 영화는 현재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그 위치를 낮은 톤으로 묻고 있다.
사진출처 : unslpash
#태풍이 지나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