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7. 02
너는 어린 시절 가장 행복했던 '너'를 떠올리면 어떤 순간이 떠올라?
이제 막 스무 살 중반으로 접어들었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참 어리석은 짓일 수 있겠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행복함을 찾는 것이 어렵게 느껴져. 행복은 언제나 지나고 나서야 내 곁에 있었음을 깨닫는 것 같아. 젊음을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도 모른 채 얼렁뚱땅 스무 살을 지나쳐 버리고, 그 순간 조금 더 당당하고 용감했으면 어땠을까 후회하기도 하지.
우리 엄마는 회사를 쉬는 일요일마다 자주 나와 언니가 자취하는 집으로 놀러 오곤 하는데, 아마 고양이들을 보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네. 지난주 일요일이었어. 셋이 함께 우리 집에 옹기종기 앉아 한가하게 떠들고 있었지. 엄마는 고양이 장난감으로 아이들을 놀아주고 있었어. 나와 언니는 테이블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어. 그러다가 문득 아주아주 어린 시절 이야기가 화두에 올랐어. 엄마, 아빠, 언니, 나. 이렇게 네 가족이 함께 살았던 드문 시절에 대한 이야기였지. 내가 유치원을 졸업하고 나서는 우리 가족이 화목했던 적은 거의 한 번도 없는 것 같아.
"내가 어렸을 때 가장 행복했던 때를 말해보라고 한다면······."
언니가 먼저 입을 뗐어. 언니가 풀어놓은 이야기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라서 나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이야기였어. 그런데 도저히 '가장' 행복했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하고 평범한 기억이더라.
초저녁이었고, 우리가 살던 다세대 근처의 골목길이었어. 우리 넷은 함께 자주 가던 '초원식당'으로 향하는 중이었던 것 같아. 공기도 선선하고 좋았지. 나랑 녹마는 뭐가 그렇게 급한지 엄마 아빠를 앞서서 후다닥 뛰어갔어. 그러다가 뒤에서 엄마 아빠가 '00, 녹마야!' 하고 우리를 부르더라. 뒤를 돌아봤는데, 분명 우리를 뒤따라 오던 두 사람이 사라져 있었어. 우리가 어리둥절해져 있는 찰나에, 옆으로 새는 골목길 담장으로 엄마 아빠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지. 우릴 보면서 장난스럽게 웃고 있던 엄마 아빠의 얼굴이 보였어. 당연하지만 지금과 달리 두 사람은 아주 젊었어.
이게 다야, 우리 언니의 소중하고 따뜻한 기억은. 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내가 기억하는 그 골목길과 내가 기억하는 엄마 아빠의 젊은 얼굴이 선명히 떠올랐어. 그런 장난을 부모님이 많이 했다는 것도 어렴풋이 기억났고.
다음으로 내가 행복한 기억을 꺼내놨어.
우리가 어렸을 때 살던 다세대엔 안방이랄 게 따로 없고 널따란 거실만 있었어. 가끔씩 주말에 엄마가 이불 빨래를 하고 나서 다 마른 이불을 그 거실 바닥에 펼쳐놨었지. 귀여운 동물 캐릭터와 커다란 구름이 몇 개 그려져 있는 하늘색 이불이었어. 그 이불을 참 좋아했던 게 기억나. 햇볕에 잘 마른 이불에서는 포근한 햇빛 냄새와 섬유유연제 냄새가 났어. 나는 그 이불에 그려져 있는 구름 위에 올라앉아서, 내가 진짜 구름 위에 떠있는 상상을 하면서 잠이 들었지.
그 당시 우리 가족은 절대 행복한 가족이 아니었어. 자고 일어나면 부모님의 싸움으로 온 집안 살림이 다 부서져 있었던 적도 있고, 새벽에 우리 몰래 울고 있는 엄마를 본 적도 있었어. 그런데도 어린 나는 참 행복했지.
나와 언니가 웃으며 두런두런 나누고 있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이 보였어. 그건 후회의 눈물이었을까, 아니면 그리움의 눈물이었을까? 절대 화목했다고는 할 수 없었던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거기엔 항상 엄마가 있어. 지금보다 훨씬 젊고 지금보다 훨씬 연약했지만 그래도 나와 언니의 곁을 지키려고 애썼던.
너의 어린 시절 행복한 추억은 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