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없는 노동은 없어 [아루쿠마]

2020. 06. 24

by 잠긴 생각들

짠 놀랐지! 이제는 무조건 미루지 않고, 기한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일부러 이번 일기는 하루 앞당겨서 글을 써. 너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조금이나마 너에게 운동 습관을 전파했다는 생각에 뿌듯했어. 네 말대로 우리 여기까지 오면서 겪었던 수많은 고통을 잊지 말자, 마름에 대한 강박이나 내 몸에 대한 강한 부정 같은 것들 말이야. 너의 식습관에 대해 잘 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입장에서, 네가 엄마가 끓여주신 미역국을 한 그릇 맛있게 비웠다는 문장이 왜 이렇게 읽기 좋은지 몰라.

나는 오늘도 마감까지 하루 종일 카페에 붙잡혀 있는 날이라 글을 쓰는 지금도 카페에 있어. 그러고 보면 난 참 다양하게 많은 아르바이트를 이어서 이어서 꾸준히 해온 것 같아. 너나 다른 친구들도 훨씬 자주 만나고 싶은데, 매번 그렇게 되지 못하는 원인에 내가 ‘언제나’ 일을 한다는 사실이 있잖아. 그래서 네가 가끔은 내 일 때문에 이런저런 걸 같이 하고 싶어도 하자고 말을 꺼내지 못한다고도 했지. 그러게. 나는 늘 일하기 싫다, 출근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크게 봤을 때는 늘 묵묵히 일하면서 살아가고 있어.

일이라는 건 참 이상해서, 하고 있을 때는 버티기 힘들고 견디기 벅찬 순간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막상 그만두면 일을 했던 때가 떠오르면서 심지어 그리워지기도 해. 나한테 특히 파리바게뜨 아르바이트가 그랬어. 주말 오전 타임에 했던 그 일이 자주 그립거든. 내가 너까지 끌어들여서 한 달 정도는 함께 갓 나온 빵을 진열하고, 배송 온 케이크와 빵을 정리하고, 충분히 식은 빵은 하나씩 포장했었잖아. 방금 구워진 각각의 빵 냄새를 맡으면서 소시지가 들어간 빵에 케첩을 뿌리고, 크림을 넣어야 하는 빵은 따로 빼뒀다가 완전히 식으면 일정한 간격으로 썰어서 크림을 잔뜩 채워 넣곤 했었는데...

물론 어떤 일은 다시는 그쪽으로 쳐다도 보기 싫을 만큼 끔찍하게 기억되기도 해. 오늘 이렇게 아르바이트에 대한 글을 쓰는 건, 바로 지금의 알바가 그런 끔찍한 기억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야. 파리바게뜨에서의 기억은 좋고도 재밌었기 때문에 사소한 순간들도 마치 스크린으로 본 적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기억하는 반면에, 유독 싫어했던 일은 기억에 남지 않은 게 더 많아. 이것도 생존본능의 일부겠지? 하지만 나는 분명 어떤 일을 오랜 시간 동안 했는데 그 시간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진다는 게 아깝기도 하더라고. 아무것도 없었던, 의미가 없는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드는 게 조금 허무한가 봐.

그래서 정말 일기의 의미로써 나중에 내가 이 글을 읽으면서 ‘저렇게 살았구나. 정말 싫어했지만 어찌 됐든 꾹 참고 목표를 위해 어떤 일을 열심히 하면서 시간을 보냈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좋겠어. 학교 다닐 때 했던 미래의 나에게 편지 쓰기 같기도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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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출근할 땐 704번 버스를 타. 이 버스의 배차 간격이 얼마나 긴지 알지? 그래서 출근 준비가 끝나기 10분 전부터 계속 어플로 도착 정보를 확인해야 해. 적어도 9시 20분에는 카페에 도착해야 사장님이 출근하기 전까지 오픈 준비를 마칠 수 있거든. 카페에 도착하면 비밀번호를 치고 도어록을 열어. 깜깜하고 조용한 카페 내부에 들어서서 하나씩 전원과 전등 스위치를 켜지. 캐리어를 꺼내고 픽업대에 쟁반을 세팅하고 빨대나 홀더, 컵과 뚜껑을 넉넉하게 꺼내 둬. 테이블을 닦고 거미줄을 치우고 사장님이 오시면 대걸레를 빨아와서 바닥을 닦아. 그러면 오픈 준비 끝! 생략한 부분도 많지만 모든 오픈 준비는 20분 안에 전부 해야만 해. 생각보다 시간이 빠듯하지.

우리 가게는 특이하게도 오전 시간이 제일 바쁜 카페야. 보통 카페가 제일 바쁜 시간대는 오후나 늦은 저녁시간인데, 아웃렛 1층에 위치한 우리 카페는 직원들이 출근하면서 음료 한 잔씩 사가기 딱 좋은 곳이거든. 오픈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일찍 출근한 직원들이 들이닥치기도 해. 결제기기는 왜 이렇게 복잡하고 직원들은 왜 이렇게 항상 새치기에 자기 말만 하는지. 처음 일을 시작했던 겨울에도 아침에는 바쁜 편이었지만 요즘은 오전에 한 시간 동안 평균 7-80잔을 팔아.

처음엔 손을 덜덜 떨면서 손님이 주신 카드를 놓치고, 핫 음료 컵에 얼음을 담고 별 실수를 다 했어. 사장님도 워낙 성격이 급하고 완벽주의 강박이 심하시거든. 긴장하니까 그만큼 더 일이 빨리 안 늘더라고. 우여곡절 아침을 보내고 나면 12시쯤 점심을 먹으러 가. 별로 맛은 없지만 야채 반찬이 골고루 나온다는 점이 좋은 직원식당을 이용해.

그리고 마의 시간이 오는데 대충 오후 1시에서 오후 3시 사이의 시간이야. 희한하게도 그 시간만 늘려놓은 듯 천~천히 시간이 흘러. 손님은 없고 사장님도 나도 각자 휴대폰이나 책만 쳐다보고 있지, 그 정적 속에 기계 돌아가는 소리만 웅웅 들리는데, 사장님과 둘이 그 공간에 남겨질 때 가끔 숨이 잘 안 쉬어지기도 해. 우리 저번 회차 녹음에서 언급했듯이 이 시간이야말로 어색이라는 단어를 상황으로 표현한 듯한 시간이야.

다행히 우리 카페는 레시피가 전부 쉬워서 빨리 익힐 수 있었어. 어떤 파우더 어떤 시럽이 어디 있는지 헷갈려했던 때가 언제인지, 지금은 안 보고 손만 뻗어도 위치를 알 수 있을 지경이야. 다른 카페에서 일했을 땐 음료를 만들지 않는 시간에도 끊임없이 해야 할 일이 있었거든? 재고를 파악한다던가 부족한 걸 채워둔다던가. 그런데 여기는 그저 보조 나쁘게 말하면 기꺼이 시종을 들 아르바이트생을 원하기 때문에, 뭔가 도와주려고 할 때에도 계속해서 눈치를 봐야 해. 뭐 그것조차 이젠 익숙해졌어. 6월이 되고 나서야 내 몸이 이 공간을 내가 움직여도 되는 공간으로 받아들였어. 더 이상 뻣뻣하게 서 있지 않고, 곁눈질로 사장님의 행동을 살피는 횟수도 줄어들었어.

보통은 4시 15분에서 20분 사이에 사장님의 “퇴근합시다~” 말소리와 함께 퇴근하는데, 오늘처럼 내가 마감하는 날에는 12시간을 갇혀 있어야 해. 마감은 막상 하고 있으면 할 만 한데 하기 전이나 직후에는 굉장히 힘들게 느껴져. 그래서 남자 친구한테 마치 수감 생활하는 기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어. 마감하는 당일에는 내가 끊임없이 자기 합리화를 하는 걸까?

쓰다 보니 불쌍함 투성이네. 그래도 요즘 손님이 없을 때는 포스팅 알바를 하거나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면서 나름 쏠쏠하게 시간을 보내. 나중에 내 상사가 이런 사람이라면 하고 상상해보면서 나름의 사회생활을 배우기도 하고... 어느 때는 너한테도 말했듯이 내가 여기서 뭐 하는 걸까 자괴감을 느낀 적도 있었어. 나는 누구고 뭐 하는 사람인데 돈을 위해 이런 식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걸까, 결국 알바는 내 시간과 돈을 맞바꾸는 것뿐이라고. 카페를 그만둘 날이 한 달 남짓 남은 시점에서 이렇게 돌이켜보면,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또 그것만은 아냐. 8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덤덤하게 같은 일을 성실하게 해냈다는 것 그 자체로도 의미 있는 거니까. 해 본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무언가니까.

하소연이 길어져서인지 오늘 글을 엄청 길게 써버렸다. 이번 편은 그냥 미래의 나와 이 글을 읽은 다른 알바몬들이 공감해 주기만 한다면 그걸로 의미를 다한 걸로 치지 뭐. 모두에게, 특히 미래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의미 없는 노동은 결코 없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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