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7. 28
팟캐스트를 녹음할 때도, 교환일기를 보면서도 느끼는 건데, 우리는 참 정반대인 부분이 많은 사람들인데도 어떻게 이렇게 오래 우정을 유지할 수 있는 걸까? 나는 신중하지 못한 섣부른 사람, 너는 매사에 신중한 사람. 나는 감정을 기피하려는 사람, 너는 감정에 몰두하려는 사람. 사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지금과 달리 오히려 네가 나랑 비슷한 사람이라고 느꼈는데 말이야. 무뚝뚝하고 시니컬해 보이지만 속으론 생각이 많은 것도 그렇고, 가족이라는 것에 느끼는 환멸, 애니메이션 취향, 느긋하게 산책하면서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 것, 집을 깔끔하게 정리해놓는 것을 좋아하는 것 등등...
우리는 참 다른 사람들이구나, 를 느낄 때마다 나는 거리감보다는 오히려 친밀감을 느껴. 우리가 이렇게나 다른데도 서로를 잘 이해하고, 다른 부분까지 모두 알아챌 정도로 깊은 우정을 맺고 있는 관계라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요즘 내가 제일 하고 싶은 게 뭔지 아니? 바로 이불 빨래야. 나는 잠자리에 민감한 사람이라 항상 이불을 깔끔하게 해 놓는 것을 좋아하는데, 요즘은 항상 비가 오고 우중충해서 도통 이불 빨래를 하지 못하고 있어. 그래서 아쉬운 대로 돌돌이로 이불 먼지를 떼고 털면서 자고 있지. 그렇지만 여전히 느껴지는 찝찝함과 섬유유연제 향이 느껴지는 이불의 그리움이 싫어. 얼른 장마철이 끝나서 깔끔하게 이불 빨래를 하고 싶다.
너한테도 말했다시피 나는 어렸을 때 쑥쓰럼이 정말 많고 조용한 애였어. 지금도 낯가림이 있기는 하지만 그때는 더 심했지. 중학교 영어 시간이었어. 그때 원어민 선생님이 나를 콕 집어서 뭐라고 물어봤었는데, 교실에 앉아있는 애들의 눈이 나에게 온통 집중되고 나 혼자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지. 어려운 질문도 아니었어. '활동을 해보니 어땠니?' 같은 질문이었던 것 같아. 어찌어찌 대답을 하긴 했는데, 원어민 선생님이 하하 웃으시더니 나한테 그랬어. '녹마 얼굴이 사과같이 빨개졌네'라고. 나는 내 얼굴이 빨개졌는지도 몰랐는데. 그때부터 나는 수업시간에 질문이나 발표 같은 건 거의 안 하는 애가 됐지. 중학교 축제에서 우리 반 전체가 뮤지컬을 해야 했을 때, 그때도 나는 자진해서 무대 가장자리에서 패널을 들고 있는 역할을 맡았어. 그래서 중학교 졸업앨범 이곳저곳을 들여다봐도 내 사진은 거의 없어. 난 항상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으니까.
아빠는 나의 그런 면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모양이야. 안 그래도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울분을 삼키는 애라는 걸 아빠는 눈치채고 있었는데, 쑥쓰럼을 타면서 자기 생각을 잘 얘기하지 않으니까 답답했던 거겠지? 친척들과 다 함께 있는 자리에서 내가 또 우물쭈물하고 있으니까 아빠는 꾸짖듯이 바라보면서 '네가 하고 싶은 게 뭐야? 똑바로 말해봐'라고 다그쳤어. 그런데 내가 아빠를 참 좋아했거든? 아빠가 무작정 나를 혼내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진짜 내 생각을 듣고 싶은 거라는 걸 나도 알아차렸지. 그래서 용기를 내서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어. 그럴 때마다 아빠는 정말 들어주었고. 속으로 울분을 삼키는 성격은 아직도 고쳐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우물쭈물하면서 부끄러워하는 성격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어. 우리가 팟캐스트 녹음을 하면서 얘기했다시피 말이야. 너무 커버린 탓일까.
난 이젠 전혀 다른 결의 고민을 하게 됐어. 내가 너무 생각 없이 말을 내뱉는 거 아닐까? 하는 고민. 우리 여담 회의할 때 봤지? 내가 얼마나 아무 말이나 하는지. 그뿐만 아니라 너랑 팟캐스트 주제나 제목을 정할 때도 나는 일단 생각나면 내뱉고 보잖아. 그럼 네가 '그게 무슨 뜻이야?'라고 물어보지. 사실 그냥 말하고 본 거라서 네가 물어보면 그제야 내가 어떤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생각하게 돼.
내가 섣부르게 내뱉는 말들의 대부분은 아무 악의도 없을뿐더러 한 귀로 흘려들으면 그만일 것들이지만, 가끔은 무서워지기도 해. 내가 한 성의 없는 말에 상처 받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말이야. 사실 스스로도 상처 안 받는 척, 쿨한 척 하지만 기본적으로 불안 수치가 높은 사람이라 잠이 안 오는 밤에는 자기혐오로 힘들어하는 나니까 더 그런 걱정을 하게 되는 것 같아. 찬찬히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생각해보는 게 필요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
아무튼 일주일 후면 나는 안면도로 여름휴가를 가! 가서 뭐 딱히 여러 군데 돌아다니면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나를 노출시킬 생각은 없어. 그냥 바다가 보고 싶기도 하고, 낯선 골목을 걷다가 길도 잃어보고 싶어. 너도 이번 주 까지만 하면 드디어 너를 힘들게 했던 카페 아르바이트에서 벗어나니까 우리 본격적으로 여름을 즐겨보자. 아마 다음 주면 장마도 끝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