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소통하고 싶어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흐린 날이네. 이런 날에 해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더라면 오히려 내내 축 처져 있지 않았을까. 다행히 오늘은 들어야 할 강의가 다섯 개씩이나 있어서 전혀 심심하지는 않을 것 같아! 지금은 강의를 듣기 전, 기분이 다운되기 전에 미리 교환일기를 써놓는 중이야.
어제는 애인과 함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테넷'을 봤어.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어서 어쩐지 낯선 느낌이더라. 코로나 때문에 무서워서 영화관을 못 가겠다는 내게, 너희들이 오히려 카페 같은 곳보다 영화관에 사람이 훨씬 적고, 영화 보는 내내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된다고 해서 간 거였어.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마치 영화관을 전세라도 낸 듯이 상영관 안에는 나랑 애인밖에 없었어. 물론 평일 낮이었고, 읍 단위의 작은 도시에 있는 영화관이라 그런 거겠지만. 그런 주제에 시설은 또 좋아서, 뒤로 젖혀지는 편안한 의자에 앉아 다리를 쭉 펴고 마음 놓고 영화를 볼 수 있었지. 물론 영화 내용은 다 이해하지 못했어. 그래도 중반 부분까지는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서 '그렇구나'하면서 봤는데, '인버전' 된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맞물려서 왔다 갔다 하는 부분에서는 나와 애인 둘 다 휘둥그레 해졌지. 어느 정도 감은 잡을 수 있겠는데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겠는? 느낌. 두세 번은 봐야 이해할 것 같은데, 굳이 두세 번 씩이나 보고 싶진 않아.
'쓰기'와 '말하기' 중 어느 것이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지에 대해 얘기했지? 예전의 나였다면 당연히 '쓰기'라고 대답하지 않았을까 싶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일기를 써왔고, 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글을 쓴다는 게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진 않아. 가끔은 글을 너무 쉽게 쓰는 것 같기도 해. 좀 더 깊이 사유하고 여러 번 뜯어고치면서 완벽한 글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휘리릭 쓰고 한 번 다시 본 다음 끝. 이게 내가 글 쓰는 방식인 것 같아. 너도 공감하겠지만 글이란 건 처음 시작하기가 어렵지, 한 번 글을 쓰기 시작하면 마치 탄력을 받은 것처럼 쭉쭉 써나가지잖아? 난 그런 느낌이 참 좋아. 그런데 요즘은 말하기에 대해서도 똑같이 느껴. 나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를, 그 사람들이 내 말을 어떻게 이해할까 두려워서 싫어했다기보다는 그냥 나한테 시선이 집중되는 것 때문에 싫어했던 것 같아. 그런데 언론정보학과를 4년 넘게 다니다 보니, 말하는 것에도 너무 익숙해졌어.
말하는 것과 쓰는 것 모두 자신을 표현하는 거잖아? 나는 가끔 내가 너무 쉽게 글을 쓰고 쉽게 말을 하나 싶기는 하지만, 둘 중 어느 것을 선호하든 결국 진짜 실행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너도 이렇게 매주 교환일기를 쓰면서 글 쓰는 것에 익숙해지고 수월해짐을 느꼈듯이,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망설이다 보면 결국 모두 놓쳐버리는 것 아닐까? 예전에는 '쓰기'가 혼자만의 일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말하기는 소리로, 쓰기는 문자로 하는 것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 결국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이룰 수 있는 일이지. 우리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고, 우리의 팟캐스트를 많은 사람들이 들어주면서 그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이 제일 커, 지금은.
나는 계절이 지나는 것에 되게 감흥을 많이 느끼는 사람인가 봐. 여름을 더 잘 보내주고 싶고, 가을을 더 잘 맞이하고 싶어. 사진첩에 쌓여있는 이번 여름의 사진들을 보면서 나중에 이 추억들은 어떤 노래, 어떤 냄새, 어떤 감정으로 기억될까 궁금해져. 예전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나이 들었다 느껴질 때면, 이 생각도 미래의 내가 보면 철부지 같겠지 싶고.
그렇기에 더더욱 지금의 생각들을 감춰두지 말고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해. 나중의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요즘은 다른 사람의 표현에도 조금 더 대꾸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어. 내가 좋아하는 유튜버나 웹툰 작가의 창작물에 댓글을 남기고, 내가 맘에 들었던 영화나 팟캐스트에 대해 리뷰하고. 치킨 시켜먹을 돈으로 그런 창작자들에게 조금이나마 후원을 한다던가.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해. 우린 그런 자그마한 표현이 얼마나 그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지 알고 있잖아. 세상에는 점점 더 많은 창작물들이 쌓여가지만, 그중에 내가 좋아하는 것이 그냥 사라지지 않도록 꾸준히 응원하고 대꾸해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너를 만나고, 너희를 만나고 나는 세상에 대한 애정을 배워가고 있는 것 같아. 예전에는 그저 나와, 그리고 내 주변의 아주 좁은 세상에만 온통 신경을 쏟고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내 세상이 넓어지고 있어. 그게 마음에 들면서도, 동시에 나 자신도 잘 챙겨줘야지, 하면서 바쁜 와중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지.
언론정보학과에 입학하고 쥐뿔 배운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세상과 소통하는 법, 그거 하나는 확실히 배운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