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와 글쓰기
습관적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걸 줄여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바쁜 요즘이야. 몇 개월 전에 쓴 일기장에서도 우리의 교환일기 글에서도 “나 요즘 너무 바빠”라는 말을 심하게 자주 했더라. 그런데 어쩌겠니? 거의 항상 바쁜 게 사실인걸. 그래도 학창 시절에 모두가 했던 방식대로 나를 미친 듯이 갈아 넣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매일 아침 짧지만 꾸준한 운동과 충분히 건강한 끼니는 놓치지 않으려 하면서 살고 있어. 의식적으로라도 나를 다정하게 챙겨주는 걸 잊지 않으려고 말이야. 너도 언제나 그걸 잊지 않기를 바라.
(*이제까지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남자친구 이야기가 자주 나올 것 같은데, 자꾸 남자친구라고 지칭하는 게 조금 오글거리니까 이제 편의상 Y라고 부를게.)
최근에 Y도 나처럼 드디어 길고 길었던 아르바이트를 그만뒀어. 조금 허무하게도 복학을 함과 동시에 실시간 강의를 매주 듣게 되어서 끝을 맺은 거지만. 덕분에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수업을 듣고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어서 나로서는 조금 행복한 소식이야. Y는 우리와 다르게 저녁형 인간이라서 나는 당연히 Y가 늦은 오전에 일어나서 늦장을 부리다가 오후부터 수업을 듣거나 과제를 할 거라고 예상했거든? 그런데 Y도 이제 막 학기라 슬슬 논문을 준비해야 해서인지 이른 오전에 일어나겠다는 각오를 했어.
그리고 실제로 함께 아침에 일어나서 집안일을 하고 수업을 듣고 며칠 전에는 아침 산책도 다녀왔어. 사람도 적은 평일 아침에 산책을 나가니까 거리의 가게들은 분주하게 오픈 준비를 하고, 몇몇 사람들은 나와 Y처럼 산책로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파란 하늘은 높고, 시원한 바람은 딱 기분 좋을 정도로 살살 불고... 너무 좋더라. 바쁘다는 이유로 요즘 서로 오래 얼굴을 맞대고 눈을 쳐다볼 시간이 적은 우리인데, 아침 산책을 하니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떠오르는 대로 여러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좋았어.
특히 그날 나눈 대화 중에 말하기와 글쓰기를 주제로 한 이야기가 기억에 주로 남아 있어. 너는 말하기와 글쓰기 중 어떤 것에 더 자신 있는 사람이니? 매일 일기를 쓰고 책의 좋은 구절이나 가사를 옮겨 적곤 하는 너는 역시 글쓰기라고 말하려나? 나는 내가 말과 글 모두에 서투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야. 그런데 말은 정말 지나치게 못해서 차라리 글이 낫나 싶기도 해. 어떨 때는 말로 할 때보다 글로 쓸 때 내 생각이나 마음을 더 와닿도록 표현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그럼 역시 말인가 싶기도 하고...
Y는 확실하게 글을 쓰는 것에 더 자신 있다고 말했어. Y는 말이라는 건 한 번 뱉으면 주워 담을 수가 없어서 더 조심하고 아끼게 된대. 글은 작성하면서 수정하거나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라도 논리적이고 탄탄한 구조로 완성할 수 있다는 점이 좋대. 평소에도 Y는 말을 할 때 꽤나 신중하고, 특히 자신과 상대의 심리적 거리가 멀수록 대화를 자제하는 편이야. 며칠 전에 대화했던 주제에 대해 오래 고민하다가 내가 잊고 있을 때쯤 자기의 의견은 이러하다고 말해주기도 해. 자칫 겉으로는 생각이 적거나 짧은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친한 사이 한정으로는 재잘재잘 말이 많은 나에 비하면 오히려 특정 주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수 있을지 훨씬 더 고민하는 것 같아. 일회성으로 휘발되는 말조차도 그렇게 신중하게 하는 성향이라서 순간적인 생각을 SNS에 자주 업로드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 비판적으로 느끼더라고. Y는 아직도 아무 SNS를 사용하지 않는데, 그게 본인의 이런 성향과 관련이 있대.
반면에 나는 사실 Y처럼 딱 이거야!라고 선택하기가 어려워. 어릴 때부터 글 쓰는 습관이 들어있지 않아서인지 글 하나를 쓸 때 엄청나게 오래 걸리는 시간에 비해 좋은 글을 완성하지는 못하거든. 그래서 주어진 시간 안에 골격이 단단하면서도 매력 있는 글을 써내는 사람들을 보면 늘 신기하고 부러워. 말도 마찬가지야. 친밀한 상대와 대화하는 건 아주 좋아하고, 나라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꼭 필요한 에너지 충전타임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어휘력도 약한 데다가 공식적인 말을 해야 할 때는 무대공포증이 심해서 생각했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엄청 초조해져. 어느 순간 머릿속이 백지로 변해버려. 몇 년 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자신 있게 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야.
그래도 나의 말 하기, 글쓰기 능력에 있어서 희망적인 건 뭔지 알아? 신기하게도 우리가 함께 하는 교환일기와 팟캐스트를 통해서 글과 말이 둘 다 늘고 있다는 거야. 그 정도가 얼마나 되든 간에 일주일에 한 편의 글을 쓰고, 2주에 한 번씩 너와 방송으로 내보내는 말 하기를 행하고 있어. 완성도 높은 글을 쓰지는 못하는 것 같지만 글을 쓰는 게 습관으로 자리 잡아서 더 이상 키보드에 손을 올리는 게 전처럼 두렵지 않아. 녹음본 편집을 하다 보면 나의 말버릇도 발견하게 되고, 버벅거리는 순간도 많이 줄어들어서 전보다 많은 편집 작업이 필요하지도 않고. 이게 나에게는 큰 변화가 아닐 수 없어.
글쓰기는 4개월째, 팟캐스트는 1년째 지속하고 있는 우리가 대견하기도 하고, 그 시간만큼 성장한 우리가 느껴져. 그 과정을 혼자가 아니라 너와 함께 하고 있어서 더 의미 있고 소중해. 요즘은 너와 내가 점점 사업 파트너로 만나는 시간이 많아지는 시기이긴 해도, 원래 한 관계 속에는 이런저런 시기가 얽혀있는 거니까. 나는 우리가 파트너인 동시에, 사실은 그보다도 친구로서 오랜 시간 함께 할 거라고 믿어. 네가 가끔 어차피 끝은 온다며 회피하려는 마음이 든다 해도- 만약에 네 말대로 어떤 기간 동안 우리 사이가 멀어진다 해도 나는 왠지 여러 굴곡을 거쳐서라도 계속 서로의 곁을 맴돌 거라고 믿어. 그러니까 파트너와 친구로서 우리리 손 놓지 말고 같이 나아가자. 같이 성장해나가면서 서로의 과정을 지켜봐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