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지금의, 앞으로의 우리 [아루쿠마]

by 잠긴 생각들

어제는 아침부터 날이 흐려서 눈을 뜨기가 힘들었어. 알다시피 나는 어두운 날이면 개운하게 일어나기가 힘들거든. 이제 겨울이 되면 여름과 달리 그런 날이 많을 텐데, 참 걱정이야. 어쨌든 억지로 몸을 일으켜서 아침부터 zoom으로 여담 회의를 했어. 꾸벅꾸벅 졸면서 아르바이트 작업도 하고. 다른 날에 비하면 할 일이 많은 날은 아니었는데 회의가 끝나고도 다시 잠들 수 없었던 건, 너와 오랜만에 우리 집에서 놀기로 한 날이었기 때문이야. 여담도, 잠긴 생각들도 아닌 그냥 ‘놀기’를 위한 날.

1학년 때 우리 정말 집에서 자주 놀았었잖아. 네가 물을 적게 넣고 끓여 준 라면이 진짜 맛있었는데. 너희 집이 학교와 더 가까워서 자주 놀러 갔었고. tv도 없던 너희 집에서 우리 참 잘도 놀았어. 생각해보면 그냥 매번 수다 떨던 기억뿐인데 그 시간들이 참 좋았어. 그때는 그런 날이 앞으로도 정말 많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4학년이 되고 보니 정말 그렇게 자주 여유로운 시간을 함께 보낸 게 까마득해. 우리가 함께 하는 일이 많아서 자주 만나는 것과는 별개로, 둘이 그저 놀기 위해 만나는 건 아주 가끔이 되어 버렸으니까.



그래서 어제 나 되게 신나 있었던 것 같아. 우리 둘 다 싫어하는 흐린 날이었는데도 말이야. 여기저기 들러서 요리할 재료를 사 오고, 내가 요리하는 동안 너는 배고프다고 옆에 왔다가 이것저것 도와주기도 하고. 연어 덮밥을 메인으로, 버섯 대파 구이를 사이드로 점심 식사를 했지. 나도 맛있었고, 너도 맛있다고 해줘서 다행이었어. 뭐 연어가 다 한 거지만? 식사를 끝낸 후에 나는 잠깐 동안 하던 일을 덜 끝내서 간단히 일을 처리하고, 너는 옆에서 유튜브 영상을 봤잖아. 숨듣명 콘서트가 올라와서 중간중간 같이 보는데, 학창 시절의 생각도 떠오르고 어린 나이로 돌아간 기분이어서 뭔가 벅찬 느낌이 들었어. 그리고 너와 함께 그 감정에 공감하면서 키득대던 것도 재밌었어.

뭐랄까 너랑은 그냥 별 걸 하지 않아도, 아무렇게나 흘러가는 의식의 흐름대로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지는 것 같아. 그리고 우리 그렇게 뒹굴며 놀다가 나란히 매트와 이불을 깔아 놓고 아쉬탕가 요가를 했잖아. 나는 어제를 떠올리면 특히 그 시간이 진짜 좋았거든. 그런데 사실 어떤 친구가 집에서 같이 놀기로 해놓고 요가를 하자고 제안하거나, 내가 제안할 때 흔쾌히 좋다고 하겠어. 너랑은 그럴 수 있는 관계라는 게 참 좋아. 아닌데 척을 할 필요도, 이미 서로 잘 알고 있었으니 막 불편해질 지점도 없으니까. 특히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무언가를 너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게 말이야. 우리는 알면 알수록 다른 사람이라는 게 드러나는데도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단순히 서로 알고 지낸 시간이 길어서라기에는 통하는 부분이 많은 게 참 신기해.

그건 아마 MBTI나 애착 유형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엇 때문이겠지? 그 무엇이 20살의 너와 나를 연결시켜주고 지금까지도 함께 서로의 가치관을 정립해가도록 만들어주는 거라면, 앞으로도 우리 관계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거라는 막연한 믿음과 기대가 생겨. 스무 살의 어렸던 생각들과 쉽게 받곤 했던 상처를 나눴던 기억. 현재의 조금은 철들고 달라진 어떤 생각들. 그리고 차차 우리 자신의 것이 되어가는 공통된 가치관을 나누는 대화. 그걸 담은 우리의 팟캐스트. 그다음은 뭘까? 나중의 우리는 또 어떤 걸 함께 나누고 있을지 기대돼. 그리고 그때도 가끔은 어제처럼, 스무 살의 그때처럼 네가 먹고 싶은 음식을 나한테 말해주면, 나는 요리를 하고, 같이 맛있게 먹고, 심심한 듯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 만남이 있기를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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