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깨서 쓰는, 술 냄새나는 일기 [녹마]

이기지 못할 술은 마시지 말자

by 잠긴 생각들

또 악몽을 꾸고 깨버렸어. 요즘 따라 악몽을 꾸는 빈도 수가 더 늘어난 것 같네. 평범한 시간에 자도, 낮잠을 자도 어김없이 악몽을 꾸고 깨버려. 오늘은 피곤해서 '꿀잠을 자야지'하면서 스르륵 잠들었는데, 잠든 지 한 시간 만에 꿈속에서 온갖 수모를 겪고 소스라치며 잠에서 깼지. 목을 부여잡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시계를 봤는데 정말 잠든 지 한 시간밖에 안 지나있더라. 나는 그래도 새벽 다섯 시는 됐을 줄 알았는데.

제일 최근에 꾼 악몽은 너에게도 말했던, 오른손이 완전 너덜너덜 작살나는 꿈이었지. 꿈인데도 그 고통이 너무 선명해서 무척 아파했었어. 이번 꿈도 살짝 비슷해. 꿈에는 살인마가 등장했어. 처음엔 남자였어, 처음에는. 누군가의 집에서 다 함께 노는데 그 살인마가 억하심정을 가지고 모두를 죽이기 시작했어. 죽이는 방식이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죽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워낙 생생했어. 약간- 뇌가 녹아내리는 느낌? 숨이 턱 막히면서 모든 고통이 머리에 집중돼. 나는 너덜너덜해져 죽은 채로 끝나지 않는 고통 속에 몸부림쳤지. 그런데 이상하게 내가 다시 살아났더라고. 그 집에서 다시 눈을 떴을 때 사람들은 몇 남지 않았고, 살인마는 사라진 상태였어. 나는 그 살인마가 다시 돌아와 남은 생존자를 죽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서 벌벌 떨면서 숨을 곳을 찾기 시작했어. 어떤 방에 들어가니까 커다란 장롱이 있더라. 첫 번째 장롱 문을 여니 이불이 켜켜이 쌓여있어서 도저히 숨을 수 없었어. 그래서 두 번째 장롱 문을 열었더니 거기에는 겨울옷이 많이 걸려있어서, 그 옷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웅크리고 숨었지. 그런데 내가 숨자마자 거의 바로 살인마(이번엔 여자였어)가 장롱 문을 열고 내 목을 비틀어 잡더니 기다란 꼬챙이 같은 것으로 내 목을 푹- 찔러버렸어. 이번에도 역시 생생한 고통이 느껴졌고, 나는 내가 다시 죽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발버둥 치지도 않았어. 그렇지만 너무 아팠고, 그렇게 꼬챙이에 찔린 채로 소스라치며 꿈에서 깼지.

눈을 뜨고도 나는 내 목이 성한지 모르겠기에 목을 감싸 쥐고 주위를 둘러봤어. 내 옆에선 우리 집 고양이가 곤히 잠들어있더라······.

다시 잠들면 또 악몽을 꿀 것 같아서 도저히 잘 수가 없었어. 그래서 뒤척이다가 이렇게 교환일기를 쓰는 중이지. 지금 시간은 새벽 세 시 삼십 분이야. 내일도 열심히 강의를 들으려고 했는데 이게 뭐람.




요즘은 술을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아. 물론 내가 술을 워낙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나는 꼭 한 번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자꾸 술 약속을 잡아서 계속 들이붓게 돼. 술을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말이야. 혼자 술 마시는 건 딱히 즐기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는 걸 좋아해. 술 취했을 때의 알딸딸함도 좋고, 술자리의 그 들뜬 분위기도 좋아. 이제 시험공부, 여담 일 때문에 술 마시는 건 당분간 할 수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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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번 '술 난리'는 올해 초의 '술 난리'보다 심하지 않았어. 그때의 술은 정말 현실도피를 위한 술이었던 것 같아. 어쩌다 한 번 간단하게 술을 마시면 또 모르겠는데, 거의 매일 술을 마시면 내내 술에 취한 상태가 유지되기 때문에 현실과의 괴리가 생기게 되더라. 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게 되는. 그래서 알코올의존증이 생기게 되는 건가 봐. 아무리 술을 좋아해도 알코올의존증이나 알코올중독은 조심해야겠지.

너도 알다시피 우리 아빠가 알코올중독이잖아. 나는 술이란 걸 딱히 무서워해본 적이 없었어. 우리 아빠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일상처럼 술을 끼고 살았는데, 그래도 그 정도가 심하지는 않았어. 저녁때쯤이면 항상 취해있긴 했지만 그건 아빠가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정도였던 거지. 그런데 작년에 술에 온몸과 마음을 지배 당해 밥도 먹지 않고, 밖에 나가지도 않고 정신을 잃을 때까지 술만 마셨던 아빠의 상태를 보고 술이 너무 무서워지더라. 주변에 나처럼 술을 좋아하는 애들이 그래도 꽤 있잖아? 그런데 내가 왜 술을 마시는지, 누구랑 마시는지, 얼마나 마셨는지도 모른 채 마시는 건 정말 해로운 것 같아.

며칠간 술을 지독히 마셔놓고 이렇게 금주 캠페인 같은 글을 써놓는 것도 웃기다. 그래도 나는 술이 좋은 걸 어쩌겠니. 너랑 최근에 마셨을 때는 정말 너무 취해서 또 너한테 진상을 부리게 됐지만. 그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네가 편해서 그랬나 봐. 오랜만에 나의 술 진상을 보니까 어떻든? 그날은 너랑 오랜만에 편하게 노느라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는데. 시험이 끝나면 또다시 그렇게 놀자. 술은 마시지 말도록 하는 게 좋겠지. 아니면 집에서 간단하게 맥주 한 캔 하거나!

아무튼 나는 깬 김에 야식이나 먹으러 갈래. 팟캐스트 녹음할 때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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