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뭐랄까... 우울과 불안과 강박의 굴레로 빨려 들어가기 직전의 상태인 것 같아. 내가 자초한 일들 때문에 바쁘게 살고 있는 거지만, 이제는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기보다는 부차적으로 발생하는 스트레스들이 나를 좀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그런 상태인 걸 몰랐는데, 최근의 내 행동이나 기분 등을 살피면서 이틀 전쯤에서야 깨닫게 되었어. 사실 우울이나 무기력에 대한 이야기는 팟캐스트에서도 사적인 우리의 대화에서도 너무 자주 한 것 같아서 더 이상 이런 이야기를 꺼내 놓는 건 의미 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교환일기에는 진심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만을 하고 싶기 때문에 결국 이런 주제로 글을 써봐.
우리 녹음 때도 이야기했던 거지만, 요즘 할 일들이 여러 분야로 다양하게 많다 보니까 너무 정신이 없어. 하지만 그래봤자 하루에 할 수 있는 양은 정해져 있잖아. 그래서 일주일 계획을 세울 때 하루하루로 나누어서 업무를 할당해두거든? 이게 매일매일 지켜지면 참 좋을 텐데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병행하고 있다보니, 갑작스럽게 스케줄을 변경해야 할 때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일이 또 생기기도 해. 너도 정말 공감하겠지만. 나는 주로 내 기억을 못 믿어서 휴대폰 스케줄러 어플에 모든 일정을 작성하는데, 요즘은 어플만이 아니라 원래 토익공부를 위해서 구매했던 스터디 플래너에 수기로 작성을 해야 하는 상황이야. 그러다 보니 내가 이걸 했던가? 이게 내일까지 처리하면 되는 일이 맞던가? 자꾸 헷갈리고 확인해야 하는 경우가 생겨서 강박적으로, 습관적으로 스케줄러를 보고 또 보게 돼.
문제는 이 행위의 반복에서 내가 너무나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거야. 원래 나는 바쁠 때에도 잠을 6시간 이내로 줄이지 않는 사람이거든. 그 이유는 이제껏 살아온 내 인생의 데이터에 따라 잠이 내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야. 잠을 줄임으로 인해 다른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는 걸 미리 방지하는 거지. 그런 내가 요 며칠간 깊은 수면을 취할 수가 없어. 자꾸 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관련된 꿈을 꾸며 잠 같지도 않은 잠을 자거나,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휴대폰을 습관적으로 확인하면서 오늘 뭐 해야 하지? 이거 했나? 하면서 화들짝 놀라. 너는 평소에도 숙면을 못해 괴로워하곤 하지만, 나는 발표 전날이라든지 첫 출근이라든지 정말 긴장한 상태일 때가 아니고서야 그런 경험을 별로 하지 않거든. 그래서 이 변화가 며칠간 반복되는 걸 보면서 깨달았어, 아 나 지금 매일매일을 평소보다 더 큰 긴장과 강박 속에서 살고 있구나.
물론 잠 말고도 다른 증상들이 더 있어. 자꾸 한 끼라도 맛있는 식사를 하자고 생각하다 보니 다른 끼니는 생략하거나 정말 대충 빠르게 챙겨 먹어서 체할 것처럼 허겁지겁 먹게 돼. 몇 시간 동안 시간을 정하고 ‘이때는 쉬자! 너무 나를 갈아 넣지 말자!’ 하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그 시간 내내 긴장을 놓지 못해서 불편한 마음으로 축 처져 있게 되고, 결과적으로 전혀 에너지 충전이 되지 않아. 이런 번아웃과 우울증의 초기 증상들을 찡찡대며 늘어놓으려고 오늘의 글을 쓰는 건 아니고, 주절주절했지만 결론은 리프레시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거야. 우리는 이미 여러 번의 우울과 번아웃 경험이 있고, 나는 언젠가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 이제는 나름의 방식대로 이 상황을 (억지로가 아니라) 최대한 극복해보는 방향의 주제로 내 마음을 집중시키고 싶어.
그렇게 선택한, 이번의 기분 전환 방식이 헤어스타일 변화야. 원초적으로 내 몸에 변화를 주면 자꾸 거기에 눈길이 가고 괜히 낯설지만 신기해서 거울을 들여다보게 되잖아. 비슷한 맥락에서 타투를 해보고 싶기도 했지만 거기까진 아직 무서운 쫄보라서, 스무 살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탈색을 하기로 결심한 거야. 요즘 내 헤어스타일이 질린다 싶기도 했고, 어차피 과제 폭탄에 시험기간이라 바쁜데 다른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계속 데리고 다녀야 하는 내 몸에 변화를 주는 게 확실한 리프레시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 앞머리만 탈색한 독특한 헤어스타일이라 친구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하지만, 그래도 나는 마음에 들어. 탈색까지 했으니 몇 번이고 다양한 색상으로 변화를 줄 수도 있고.
그래도 친구들이 전부 다 어색해하고, 대놓고 이상하다는 말은 못 하면서 정적의 반응을 보이니까 마음이 상하기도 했어. 예민한 내 심리상태에서 결정한 나름의 리프레시였는데, 다들 같은 반응이니까 오히려 기가 죽고 위축되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괜히 너한테나 그만 비웃으라고 틱틱거려 보기도 하고. 또 내가 소심한 관종이라 남의 눈치는 엄청 보잖아. 스트레스가 가득한 상태에서 기분전환이랍시고 준 변화에 부정적인 평가만 돌아오니까 그랬나 봐. ‘내가 그래서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짜증이 났던 거구나’ 인지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나아졌어. 역시 언제나 반복적인 스트레스의 굴레 속에 있다 보면 리프레시가 필요한 것 같아. 그 굴레는 벗어난 줄 알았다가도 또다시 돌아오고, 난 그걸 알고 있고, 인지할 수 있고, 극복해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아직은 그 과정이 서툴기도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방식을 알고 있으니 그걸로 조금은 성숙해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