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5. 25
아직도 5월이야. 지겹다 지겨워- 내가 좋아하는 파란 하늘과 따뜻한 햇볕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7월이 겨우겨우 지나가고 8월이 오면, 드디어 기다리던 8월이 온다면 말이야... 하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상상하는지 몰라. 하지만 길어서는 안 돼. 그 상상이 길어질수록 지금을 사는 나는 분명하게 불행해질 테니까.
그래도 오늘만큼은 그때가 오면 뭘 하고 싶은지 늘어놓아보고 싶다. 우선 지금과 같이 매일 아침 6시에서 6시 반 사이쯤 애매하게 늦장을 부리다가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할 거야. 내 몸의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펴보면서 비몽사몽 한 정신을 불러오고, 깊은 생각에 빠지지는 말고. 몸을 풀고 나면 건강하지만 맛있는 아침 식사를 할 거야. 그날그날 내 입맛이 이끄는 대로 메뉴를 선택하겠지. 여기까지는 현재와 같네. 나만의 아침 루틴이 끝나고 나서, 출근을 위해 집과 멀리 떨어진 카페로 향하는 지금과는 다르게 동네 카페로 자리를 옮길 거야. 나도 너처럼 카페에 가야만 뭔가를 할 수 있을 게 뻔하니까- 거기서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이제는 정말) 토익 공부를 하면서 오전 시간을 보내는 거야. 오후에는 약속을 잡은 친구와 만나서 밥을 먹거나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남자 친구와 넷플릭스를 보면서 게으름을 부리기도 할 거야. 가끔은 더 신나는 일도 있겠지? 너와 피치와 함께 바다에 가서 물장구를 치고 시원한 물회도 먹을 테고. 남자 친구와 즉흥적으로 계획 없는 여행을 떠나기도 할 거야.
나도 알아. 그때는 또 그때의 고민이 생길 거란 걸.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아침이면 카페에 가기 귀찮아서 이불속을 파고들기도 할 거고 내 예상만큼 공부하는 시간이 평화롭지만은 않겠지. 많은 약속에 비해 텅텅 비어 가는 통장을 보며 일도 안 하면서 돈은 더 쓴다고 한숨을 푹 쉴지도 몰라. 그러니까 미래에 대한 갈망은 그만두고 현재를 즐겨보자, 그래 그렇게 나쁘지 않잖아? 하고 매일같이 되뇌어보곤 해.
상상은 짧게, 현재를 즐기자는 다짐은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그걸 반복하기를 벌써 몇 달째인지 모르겠어. 이번만큼 일하기 힘들었던 적이 있었던가? 아니면 원래 나는 이제까지 해온 모든 일을 힘들어하는 사람이었나? 이젠 잘 모르겠어.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너를 비롯한 누군가가 “또 저 이야기야??” 하고는 나의 나약함에 진절머리를 느낄까 봐 초조해.
결론적으로 나는 아직도 올해 초에 시작되었던 무기력증을 이겨내지 못했어. 힘들었다가 괜찮아지기를 여러 번 반복하면서 그럴 수도 있지~ 잊어버리고 털어버리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내 조울의 주기가 점점 더 짧아지고 있는 것 같아.
이 답글도 사실은 저번 주에 어느 정도 써뒀었거든. 잠깐만 그 글을 보여줄까? 오늘의 글과는 너무나도 색이 달라.
오늘은 이상하리만치 바쁜 날이었어. 사람은 참 이상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 정말 기운이 없고 머리가 띵했는데 말이야. 하루아침에 갑자기 이렇게 쌩쌩할 수가 없어! 하늘은 마치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하게 뭉게뭉게 구름이 떠있더라. 명화 같다기보다는 정말 동화 같은 하늘이었어. 진짜 이상하게 말이야. 하늘을 보고 기분 좋게 밥을 먹고 유난히 바빴던 오늘 하루 종일을 왔다 갔다 하며 열심히 일했는데, 평소와 똑같은 하루일 수도 있었을 오늘이 아주 행복하게 느껴져.
어때? 글에서 행복이 뚝뚝 떨어지지 않아? 나 저 날 굉장히 행복하다고 느꼈었거든. 행복이란 별거 없다고 생각했었고...
너의 말대로 내가 반짝이는 비전을 가진 사람일까? 이렇게 자주 조울을 오가면서 몇 년을 진득하게 업으로 삼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맞을까? 대체 엄마 아빠는 어떻게 나를 낳기 전부터 지금까지도 노동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걸까? 너무 비관적인 태도라는 거 알면서도 나는 자꾸 나를 의심하게 돼. 지금 하고 있는 일 자체가 주체적이기보다는 주로 보조적인 일이라서 내 자존감이 조금 내려간 것뿐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다. 주체가 될 수 있는 나의 일을 한다면 이렇지 않을 거라고, 이번 일이 끝나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오늘도 길어지지 않게, 짧은 상상을 돌려.
(세상의 모든 노동자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