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라는 세계의 문을 열지 않았더라면, [아루쿠마]

by 잠긴 생각들

너도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며칠 전이 팟캐스트 ‘책읽아웃’의 3주년이었다고 해. 그러니까 정확히는 이번 주 수요일이 3주년이었대. 나는 어제 그나마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면서 인스타그램을 들락날락하다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어. 여담의 대표 언니와 저녁 약속이 있어서, 늦은 오후쯤 새로 올라온 책읽아웃의 회차를 재생해서 들었어. 3주년 기념 방송으로 지금까지 올라온 회차와 게스트의 순위를 소개해 주시면서 재잘재잘 떠드는 방송이었어. 설거지를 하고 샤워를 하면서 방송을 듣고 있자니 새삼 내가 언제부터 팟캐스트를 들었는지 떠올려보게 되더라.

생각해보니 내가 책읽아웃을 청취해온 기간이 벌써 1년 남짓이 됐어. 그보다 훨씬 전부터 책읽아웃이라는 팟캐스트의 존재는 알고 있었어. 그런데 당시 책에 별로 애정을 가지지 못했던 편이라 편식하며 가끔씩만 책을 읽곤 했고, 당연히 책 관련 팟캐스트도 들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어. 언제부터라고 정확히 말할 순 없지만 휴학하면서 자연스레 책을 읽는 시간이 많아졌어. 독서라는 게 이런 거구나, 어렵거나 지루한 게 아니구나 깨닫는 시간을 지나서, 작년 가을의 어느 아침 카페로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책읽아웃을 처음 들었어. 평소에 듣던 서늘한 마음썰이나 영혼의 노숙자와는 또 다른 색깔이라, 그냥님의 활발한 목소리나 세 분의 대화가 익숙하지는 않더라고. 그런데 이상하게 세 분만의 책 추천과 그에 얽힌 이야기, 잡담까지도 지금은 너무나 사랑하게 되었어. 이분들이 언젠가 팟캐스트를 그만둔다면 나는 팟캐스트로 채웠던 그 많은 순간들을 어떻게 해야 하지 싶을 정도로.



물론 서두는 책읽아웃으로 시작했지만, 나는 정말 돌이켜 보면 서늘썰, 영노자, 책읽아웃과 같은 팟캐스트들을 만난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 이렇게 나와 가치관이 잘 맞고 혹은 언니로써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을 주변에서 찾기도 얼마나 어려운데. 팟캐스트라는 세계를 알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의 나만큼 성장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매주 새로운 주제의 (듣는 불편함이 전혀 느껴질 필요도 없는) 대화를 듣고, 수동적인 듣기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이분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도 나의 생각을 더 깊게 할 수 있게 되고 말이야. 어떤 대화는 아무리 좋은 어떤 책보다도 나에게 깊은 깨달음과 가르침을 주기도 해.

처음에는 워낙 친구와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나라서 팟캐스트를 듣기 시작했어. 유튜브처럼 계속 화면을 봐야 하는 것도 아니고, 라디오처럼 고정된 시간에 맞춰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휴대폰에서 팟캐스트 아이콘을 처음 눌러보고 발견하게 된 서늘한 마음썰이라는 단어가 내 호기심을 잡아끌었어. 회차 제목들을 보니 너무 나와 결이 맞는 문장, 키워드들이 많아서 듣기 시작했지. 막상 학교에서 팟캐스트 제작 실습이라는 과목을 수강했을 때는 종강할 때까지도 ‘팟캐스트가 그래서 뭔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우연히 찾아내서 필요와 흥미에 의해 듣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어진 거지. 서늘한 마음썰로 시작해서 영노자, 책읽아웃 순으로 하나씩 새로운 팟캐스트를 도전하며 들었는데 정말 한 회차도 빠짐없이 다 들었고 좋아하는 편은 정주행도 몇 번이고 하게 됐으니.



그뿐이니? 우리가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기까지 하잖아. 정말 팟캐스트라는 세계의 문을 열어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루한 시간에 친구들과 통화할 수 없을 때마다 외로워했을 거고, 이만큼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사람이 되기도 어려웠을 거야. 편식 없이 여러 분야의 책을 읽게 되지도 않았을 거고, 너무나 좋은 작가님들, 감독님들에 대해 전혀 모르며 관심도 없었을 거고, 오원님의 유튜브가 나날이 성장하는 모습도 흐뭇하게 지켜볼 수 없었겠지. 물론 너에게 팟캐스트를 추천하고 함께 듣고 들었던 회차의 주제로 이야기 나누고, 지금처럼 팟캐스트를 1년이 넘도록 진행하지도 못했겠지.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보다 팟캐스트가 더욱더 내 인생에 이렇게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구나 싶어.

앞으로도 내 취향에 맞는 새로운 팟캐스트가 생겨나고, 내가 좋아하는 팟캐스터들끼리 함께 콜라보 해서 대화를 나눠준다면 좋겠다. 우리가 오래오래 팟캐스트를 진행해서 더 어엿한 팟캐스터로 성장한다면, 그분들과 어떻게 소통할 수 있게 된다면, 내 신념과 가치관에 확신을 줘서 그리고 오랜 기간 목소리를 내주어서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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