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하고 싶지 않은 나는 잘못이 없어 [녹마]

무례한 사람에게 '안' 웃으며 대처하는 법

by 잠긴 생각들

이제는 밤이고 낮이고 할 것 없이 너무나도 추워진 날씨를 실감하고 있어. 나는 급격히 커진 일교차로 떨어진 면역력 때문에 거의 보름 동안 끙끙 앓았지. 평범한 감기몸살로 시작해서 약국에서 아무 소염진통제나 사 먹으면서 버티고 있었는데, 결국 그게 편도염으로까지 번지고 만 거야. 편도에 느껴지는 고통과 열 때문에 새벽 세 시에 깨서 응급실이라도 가야 하나 싶더라고. 그래서 마침내 어제 이른 아침에 병원에 다녀왔지. 왜 진작 병원에 안 갔나 싶을 정도로 지금은 몸 상태가 훨씬 많이 좋아졌어.

컨디션 난조와 밀려드는 과제와 수업 때문인지 저번 주에는 교환일기 쓰는 걸 깜빡 잊고 말았어! 너와 얘기한 끝에 꼭 일주일에 한 번이 아니라 좀 더 유동적으로 교환일기를 업로드하기로 결정한 건 잘한 일인 것 같아. 돈이 나오는 일도 아니고, 우리의 일상을 서로 공유하고, 생각을 나누고 싶어서 시작한 거잖아? 업로드하는 주기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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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주 일요일에는 과제로 인한 부담과 감기 기운에도 불구하고 중학교 친구들을 만나러 갔었어. 알고 지낸지 거의 십 년째인 그 애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반갑지. 그 둘은 나랑 다른 계열의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졸업하자마자 취직을 한 애들이라 한낱 대학생인 나와는 다르게 이미 독립해서 돈을 벌고 있는 직장인이야. 예전에는 이게 나와 그 애들의 가장 다른 점이라고 생각했어. 회사에 다니느냐 다니지 않느냐 말이야. 그런데 지금은 그것보다 제일 큰 차이를 실감하고 있지. 바로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 차이야. 굳이 '페미니즘을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는 논하고 싶지 않아. 그렇게 따지면 수많은 여성운동가이나 교수님들보다는 내가 훨씬 모를 테니까. 그런 문제가 아니라, 내 친구들은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페미니즘을 지지한다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매우 조심스러운 일, 쉬쉬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우리가 하고 있는 '여담'의 명함을 친구들한테 나눠주니까, 고맙다며 받으면서 '여담'이 무슨 일을 하는 곳이냐고 묻더라. 나는 "대전 여성들을 인터뷰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어"라고 대답했지. 그랬더니 친구는 갸우뚱하며 "왜 인터뷰하는데?", "꼭 여성들이어야만 하는 거야?" 등을 되물어왔어. 그런데 그... 뉘앙스라는 게 있잖아. 예를 들어 이런 얘기를 내 친한 대학 동기들한테 한다면 그 애들은 단박에 알아듣고 응원해 줄 거라고 생각해. 그런데 일단 내 중학교 친구들은 뭔가를 마음속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 그래서 나는 대전 여성들을 인터뷰해서 가시화하는 게 목적이라고 몇 마디 설명해 준 다음 얼른 대화 주제를 바꿔버렸어.


그러고 나서 얼마 후 다시 관련 얘기가 나오게 됐어. 내 중학교 동창이긴 한데, 전혀 연결고리가 없고 거의 대화도 해 본 적이 없는 친구가 '여담' 인스타그램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고 스토리 같은 것도 모두 확인해 주더라, 정말 감동이었다는 얘기를 했지. 그러자 내 친구가 말했어.


"그래, 정말 감동이었겠다. 나는 걔랑 친하잖아. 걔랑 네 얘기를 하면서 너 참 멋있다고 그런 얘기를 했어. 사실 그 친구도 페미니즘에 관심이 많긴 하거든. 페미니즘 '그런' 거 말하기 좀 그렇잖아. 너처럼 완전 대놓고 당당하게 페미니즘 관련된 거 인스타그램에 많이 올리고 그러기 어려운데."


이게 칭찬처럼 들릴지는 몰라도, 나는 솔직히 그렇게 좋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어. 나는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게 창피하고 감춰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 왜냐하면 그게 내 소중한 가치관이고 앞으로도 내 일의 기반이 됐으면 좋겠는 이념이니까.


물론 내 중학교 친구들만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아니야. 더 무례하고 심한 사람들도 많지. 나는 그런 사람들하고는 대화하고 싶지 않고, 그래서 그 사람들이 마치 "신기하고 별난 사람을 다 보겠네"라는 식으로 무례하게 질문을 퍼부을 때마다 고개를 홱 돌려버리고 "그만 얘기할래"라고 대답해버리곤 했어. 그러면 그 사람들은 거의 반 이상이 마치 나에게 공격당한 것처럼 당황스러워하면서 무척 기분 나빠하더라. 맞아. 사실 기분 나쁘라고 그렇게 반응한 거야. 그 사람의 무례한 질문에 내가 기분이 상했는데 굳이 상냥하게 대답하길 거부할 필요는 없잖아?


그래도 이런 뻔뻔한 나에게 곤란한 상황이 가끔 찾아오곤 하는데, 그게 바로 내 친한 '여자인' 친구들이 그렇게 행동할 때야. 그 애들이 페미니즘을 하는 나를 별난 취급하고 무례하게 굴 때마다 기분이 나쁘긴 하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인연을 끊고 싶진 않거든. 그 친구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가치관이 있고, 나는 페미니즘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으로 나눠서 사람을 만나고 싶지도 않아. 그렇지만 어쨌든 여전히 '대화 거부'의 기술을 쓰곤 하지. 아니면 너무 얼토당토않는 소리를 하면 정색을 하고 비꼬듯이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네?"라고 대꾸하기도 해. 물론 '갑분싸'가 되지만 오히려 더 이상 그런 빻은 얘기가 나오지 않아서 참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해.



어쩐지 얘기가 좀 길어진 것 같네. 아무튼 이제 열도 안 나고 컨디션도 좋아져서 꿈도 안 꾸고 푹 잘 수 있을 것 같아. 모레쯤엔 다시 자취하는 지역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고. 본가에 올 때마다 참 잘 쉬다 간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교환일기 마칠게. 이번 주 일요일 성 평등 독서토론 때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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