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잃지 않으려 [아루쿠마]

by 잠긴 생각들

나도 덩달아 2주를 쉬어버려서 엄청 오랜만에 교환일기를 쓰는 것 같아. 원래 쓰려고 생각해 둔 주제가 있었는데, 시간이 너무 지나버려서 비슷한 듯 다른 주제로 이야기해 볼까 해. 마지막으로 썼던 일기가 10월의 마지막 날이었더라. 지금이 벌써 11월의 중간을 달리고 있는 시점인데 말이야.

며칠 전부터 찾아온 생리와 함께 이런저런 심경의 변화를 겪었어. 덕분에 다시 한번 스스로를 돌아보며 휴식하는 시간을 갖고 있어. 여담 회의에서도 말했듯이 하루의 타임 테이블을 정확하게 지키지 못하더라도, 계획해 둔 일정을 전부 소화하지 못하더라도, 해내지 못한 부분이 아니라 ‘해낸’ 부분에 집중해서 나를 칭찬하려 하며 지내. 이전에는 계획된 태스크 중 보통 8할을 평균적으로 해내는 것에 대해 오늘도 전부 하지 못했다며 자책하곤 했는데, 요즘은 8할이나 해내다니 대단하다고 칭찬해 주고 나머지 2할에 대한 미련을 갖는 대신 딱 그만큼의 휴식을 취하곤 해.



내가 선택하고 내가 결정한 일들을 왜 버거워 할까. 내가 하는 모든 선택에 완벽한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고 싶은데, 나는 왜 그러지 못할까. 나는 나약해. 나는 부족해. 남들에 비해 떨어지니까 그만큼 노력해야 하는데 정신력도 강하지 못해. 도대체 왜 나는 남들만큼 해내지 못할까.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이것저것 병행하며 살게 되면서 나는 나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었어. 물론 과거에도 그런 시기들이 있긴 했어. 그럼에도 내가 왜 스스로 완벽하기를 원하는지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는 건 두려우면서 동시에 복잡한 일이었어. 사실은 그 이유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피하기만 했는지도 몰라.

너도 알다시피 나는 남의 눈치를 많이 살피는 편이야. 그런데 내가 그런 성향을 가진다고 해서 내 삶의 중요한 기준이 ‘남’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되는 거잖아. 내가 완벽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드는 이유는 내가 완벽하다는 걸 남에게 증명하고, 인정받으면서 비난받고 싶지 않아서야. ‘내가 이만큼 대단하다~’ 이런 게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 어떤 분야든지 ‘나는 그래도 부족하지 않은 사람이에요.’라는 걸 증명해내지 못하면 큰일이 날 것만 같고, 미움받을 것 같은 마음이 들어. 그래서 완벽하지 못한 나를 완벽한 척 보여줘야 할 것만 같고, 망신 당하고 싶지도 놀림당하고 싶지도 않아서 완전한 나를 남에게 잘 보여 주지도 못해. (그런 적도 없으면서 늘 마음이 이런 건 내 오랜 마음의 병이겠지. 상담받고 싶다 정말)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너무 잘 알면서도, 아니라고 그냥 내가 원해서 잘나서 그렇게 한 거라고 합리화를 한 것 같아. 그러다 보니 인생의 많은 부분이 나도 모른 채 내가 아닌 ‘남’을 기준으로 만들어지더라. 내가 믿는 가치관,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과 점점 멀어지는 방향으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시기가 오면, 어김없이 그 뿌리는 ‘남’이 나를 보는 시선과 연관되어 있었어. 문제는 그런 삶에 무의식적으로 몰입하다 보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여러 차례 잊어버리고 길을 헤맨다는 거야.






내 주변의 어떤 애들은 이런 나의 고백을 의아하게 받아들일지도 모르겠어. 나를 두고, 안정적이면서도 취향을 지키며 열심히 살아가는 게 부럽다고 말해준 친구들은 그럴 것 같아. 내가 내 취향과 소신대로 나를 표현하고 사는 건 어느 정도 사실이고, 나도 그런 내가 좋아.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습관적으로 남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도 사실이야. 그래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낼 때 나를 좀 더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어. 모든 게 내 자존감이 낮은 탓이지만, 그래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고, 너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해주면 좋겠어. 어쩌면 망신도 당하고 놀림도 비난도 받겠지만, (늘 그렇듯이 나의 기우뿐일지라도) 나도 노력해야겠지. 보여주기식의 인생이 아닌 내 인생을 살 수 있게. 내가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 그대로일 수 있게. 나를 잃지 않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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