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 있는 사람이고 싶어 앞만 보고 달렸던
너의 지난 교환일기를 읽으면서, 버리고 싶지만 끝끝내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붙잡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올랐어.
나는 우리 집을 일으킬 사람, 삐끗하지 않고 꿋꿋이 서서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 남들이 모두 울 때 단단하게 내색하지 않는 사람. 이런 틀에 나는 항상 갇혀 있었고, 이것들이 내 모든 행동의 동기가 되었어. 남의 시선을 전혀 1%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 사실 남의 시선, 반응이란 건 정말 양날의 검인 것 같아. 그것이 나를 옥죄고 고통스럽게 하는 반면, 그 시선이 전혀 없다면 나는 무기력하게 아무 일도 하지 못했겠지.
너는 부족하지 않은 사람임을 증명하고 싶다고 했었지. 나는 쓸모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고 싶었어. 그게 바로 인정 욕구일까? 부모님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과 관심을 주위 사람들에게서 얻어내고 싶었어. 나의 경우엔 그게 애정결핍이 아니라 인정 욕구로 드러난 거 같아. 스무 살 중반에 접어들어서야 느낀 거지만, 이런 인정 욕구와 득달같은 내 성격이 맞물려서 나의 체력을 갉아먹고 있더라고. 일을 해내고 있는 와중에는 나를 채찍질하고 앞으로 달려 나가느라 내 피로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다가 일이 끝나고 나면 여기저기 고장 나 있는 나를 발견하곤 깜짝 놀라지. "그래,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적어도 내 건강 상태를 유심히 살펴보면서 달려가자"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강한 사람이고 싶었어. "남들에게 도움받지 않고도 혼자 꿋꿋이 살아갈 수 있는 강한 사람"이고 싶었어. 지금까지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고 스스로를 속여왔지만... 나는 그저 '그런 사람'이라고 남들에게 증명하면서 살아왔을 뿐이구나 싶더라. 그걸 깨닫고 나서 느꼈던 공허함과 낭패감은 잊을 수가 없어.
요즘 아무래도 건강이 조금 안 좋았다 보니, 정신적으로도 지친 것 같아.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드는 일이 힘겹게 느껴지기 시작하길래, 또다시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 건가 싶더라고. 그런데 어제 너랑 옵치(가명)랑 같이 팟캐스트 녹음을 하면서 오랜만에 셋이 얘기를 하니까 정말 힐링이었어. 정신적 불건강이 커지고 있는 때에 그저 맥락 없이 나누는 대화는 내 불건강을 더 심화시키는데, 이렇게 목표가 정해져 있고, 업무적이면서도 동시에 생각을 깊이 나눌 수 있는 대화가 오히려 나한테 더 이로운 것 같아! 그걸 어제 깨달았지 뭐니.
아무튼 나는 오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와 씨름할 것 같아. 그래도 이번 주의 마무리가 여담 촬영일 예정이라서 정말 다행이야. 아무것도 안 하면서 한 주를 마무리하기도 싫고, 그렇다고 과제 때문에 골치 아프기도 싫었거든. 오늘도 꼭 비타민 챙겨 먹고, 나한테 실망하지 말고 다독여주는 하루를 보내야겠어.
p.s. 그리고 우리 어제 녹음하면서 얘기했던 '어른 되기 공부' 정말 도전해보는 거 어때? 여담 사람들이랑 같이도 좋고, 둘이서도 좋고! 일단 과제를 끝내고 토요일부터 준비해보려고 하는데, 네 의향을 알려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