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했던 소소하지만 시시하지 않은 이야기[녹마]

'서늘한 마음썰'의 마지막

by 잠긴 생각들

안녕, 정말 오랜만에 교환일기를 쓰는 것 같네.

우리 둘 다 정신없는 시험기간이라 차마 일기를 쓸 시간까지는 내지 못한 거겠지. 오늘은 잠깐 짬이 생겨서 생각난 김에 이렇게 일기를 쓰러 왔어.

요즘은 또다시 역대급으로 치솟은 코로나 확진세 때문에 우리 모두 공포에 떨면서 지내고 있지. 그래도 누군가는 여기저기 놀러 다니면서 잘만 살더라. 식당에서 여럿이 밥을 먹으면서 '마스크 답답하다~' 같은 글과 함께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다던가······. 누구는 답답하지 않아서 집 안에 콕 박혀서 공부만 하고 있는 게 아닌데 말이야.

아무튼 계획했던 연말 모임은 모두 날아가 버렸고, 갑자기 찾아온 영하의 날씨 때문에 사람들이 감기도 잘 걸리는 것 같아. 다들 집에서만 지내느라 면역력도 떨어졌을 텐데. 집에서 가습기도 빵빵하게 틀고, 비타민도 꼬박꼬박 챙겨 먹고, 홈트 영상 짤막한 거 하나라도 조금씩 따라 하며 건강을 챙겨야 하는데. 물론 나도 못 그러고 있어. 그래도 밥하고 영양제는 잘 챙겨 먹으려고 노력 중이지.

나는 자꾸만 슬슬 올라가는 확진자 수 때문에 너무나도 두려워서 어제 본가로 왔어. 대면 시험을 본 다음에! 대체 이 시국에 대면 시험이 웬 말이냐고 너랑 같이 교수님을 씹어 재꼈지. 그런데 문제는 고향에 오니까 되게 나태해진다는 거야. 너도 여기에 와 봐서 알겠지만 여긴 시골이기도 하고 사람도 많이 없어서, 확진자도 거의 안 나오다시피 해. 게다가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살던 곳이다 보니 너무너무 익숙하기도 하고. 정말 마치 시간이 멈춘 곳 같아. 그래서인지 뉴스에서 떠드는 일은 모두 먼 곳의 이야기 같고, 심지어 SNS도 잘 안 하게 되지. 고립된 것 같은 곳? 그런 곳이야. 익숙한 곳이니까 마음은 엄청 편하지만, 너무 오래 있다 보면 시간 감각을 잊게 된다고 해야 하나? 나는 해야 할 여러 일들이 있는데, 그것들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버려. 그건 문제지.

그래, 2020년의 마지막 날을 너와 함께 보내러 다시 자취하는 지역으로 돌아갈 때까지는 좀 쉬어도 되겠지. 종강만 해봐라, 맨날 앉아서 공부만 하느라 뻣뻣하게 굳은 근육과 관절을 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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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에 업로드된 서늘썰 170화.

시험기간이라 업로드된 지도 모르고 지냈다가, 어제서야 발견하고 너무 놀라서 바로 이어폰을 꼽고 들어봤어. 처음에는 반가운 마음뿐이라서 서밤님, 블블님, 봄봄님의 근황을 주의 깊게 듣고 있었어. 다들 얼마나 힘드셨을까, 이런 안 좋은 일이 왜 하필 이분들한테 일어났을까 하는 착잡함도 느껴졌고, 그러면서도 구독자들한테 미안해하는 세 분의 마음이 느껴져서 너무 먹먹해졌어. 그렇게 열심히 듣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이야기를 듣게 됐지.

바로 서늘썰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였어. 아마 내년 1월까지만 방송을 하고 이제 마무리를 짓는다는 이야기. 나는 너무 놀라서 내 귀를 의심하고 볼륨을 키웠어. 담담하게, 하지만 조심스럽게 말씀하시는 세 분의 목소리에도 내 머릿속엔 '말도 안 된다'라는 생각뿐이었지.

너와 내가 팟캐스트를 시작하고, 이렇게 교환일기를 쓰고 있는 것도 어찌 보면 다 서늘썰 덕분이잖아. 팟캐스트에 대해서는 일절 아무것도 모르던 우리가 팟캐스트의 세계에 입문하고, 서툴지만 차근차근 팟캐스터가 된 것도 다 서늘썰 덕분이지. 매번 들으면서 위로받고, 세 분이 하시는 말씀에 정말 많이 공감했었는데. 모든 것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게 이렇게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 같아.

그동안은 잠자코 듣기만 했던 소극적인 청취자였다면, 영영 끝나버리기 전에 이메일로 감사 인사라도 보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안 그러면 정말 후회할 것 같았거든.

이렇게 우리의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주었던 것이 사라지네. 그래도 나는 세 분을 계속 응원하고 싶다. 우리의 팟캐스트도 언젠가 끝이 있겠지만, 세 분이 그랬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서 묵묵하게 해나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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