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조율하러 간다

by 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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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27일의 산책-



산책로에서 나는 느리게 걷는다. 내 뒤에서 걷던 사람들 대부분이 나를 추월한다. 그렇다고 빠르게 걷는 산책객과 더딘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손가락질하진 않는다. 경보輕步가 산책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산책로 위에서의 내 관심은 그곳에 펼쳐진 자연의 아름다움이다. 물론 자연의 아름다움과 나의 비루함을 비교하며 나를 몰아세우지도 않는다. 나무와 산과 새를 보며 나는 충전된다. 그 밝은 에너지는 싱싱한 동력이다. 열등감이나 자학으로 나를 고통스럽게 구동하는 게 아니라, 보물찾기 하는 어린이의 마음이 되어 능동적으로 발을 옮기게 된다. 산책로는 그런 곳이다.


나는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의 삶을 오래 들여다볼수록 열등감에 빠진다. 나 자신의 너절함에 매몰될 때나, 이상화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타자들의 편집된 삶에 시선을 빼앗길 때, 내 마음은 겨울 잔디처럼 시든다. 그럴 땐 다른 사람의 모습을 경탄하거나 인정하지 못한다. 그를 질투하는 동시에 나를 못마땅해한다. 이건 나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우리 애들이 보는 유튜브 중 SIS VS BRO라는 채널이 있다. 그 채널엔 어느 캐나다인 남매의 일상이 올라온다. 내용에 별 무리가 없는 것 같아서 아이들에게 시청을 허락했다. 한편 이 채널은 현재 구독자가 1400만 명을 돌파했다. 영상에 나오는 남매는 거대한 맨션에 산다. 그 애들은 소박한 요리를 만들거나 숨바꼭질을 하다가도 고가의 물건을 아무렇지 않게 구매한다. 우리 아이들은 이 채널을 깔깔대며 시청하면서 그들과 자신의 격차를 조용히 인지해 나갔다.


아이들은 차차 뭔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막내는 자기도 방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큰애는 자기 방에도 침대가 있으면 좋겠고, 우리 집엔 마당이 있으면 좋겠고, 저 애들처럼 셋째 동생(…)이 태어나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들이 저런 요구들을 심각하게 조른 건 아니었다. 저 목록들이 전적으로 SIS VS BRO의 영상 때문에 생겨난 욕구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전에 없던 결핍이 생긴 건 분명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오래된 미래』에 이렇게 썼다. "'여기 이곳'은 먼 곳의 화려함에 대조되어 빛을 잃는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이나, 내가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룬 사람을 보면 때로 마음에 그늘이 진다. 그러나 다행히도 '여기 이곳'의 광도光度를 손상시키지 않는 '눈부신 어떤 곳'을 나는 알고 있다. 창조주의 품과 그분이 만든 자연이 바로 그곳이다.


나의 열패감은 산책로에 부는 강바람에 씻긴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신 뒤 "보시기에 매우 좋았"[1]다고 말씀하셨다. 공원 산책은 말씀으로 지어진 경이로운 자연을 펼쳐서 창조주의 흡족함을 읽는 행위이다. 이 독서는 나와 타자를 향한 어그러진 관점을 교정해 준다. 나와 너는 '매우 좋은 작품'으로 조율된다. 타자와의 비교는 산책로 위에서 흙 알갱이처럼 부서진다. 너와 나의 관계가 "내 뼈 중의 뼈요, 내 살 중의 살"[2] 이라는 경탄으로 출발했음을 기억해 낸다.


자연의 조율 효과는 아이들에게도 적용된다. 불필요한 개발과 방치된 쓰레기로 총체적 난국인 우리 동네 공원 같은 겨우 이 정도의 자연에서도 아이들의 마음엔 조명이 탁! 켜진다.


오늘의 산책로에서 우리의 감탄사는 독수리가 몽땅 차지했다. 강 건너에 앉아있던 독수리들이 땅을 박차더니 우리 쪽으로 나직하게 접근했다. 첫째날개깃의 개수를 셀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은 가까워졌다. 우리나라 조류 중 가장 큰 저 새들은 날개를 일자로 펴고 활공했다. 원을 그리며 천천히 고도를 높이는 독수리들을 향해 우리는 온갖 호들갑을 떨었다.


"우와아아!" "우와, 완전 가까워!" "저기도 있어!" "진짜 크다!" "전부 일곱 마리야!" "우와 짱이다!" "완전 팬 서비스 같아요(오랫동안 우리 근처에서 매우 낮게 날고 있는 독수리를 보며)"


이것이 천연기념물 제243-1호와의 마지막 인사일 줄은 몰랐다. 오늘로 거대한 겨울 철새는 우리 동네에서 사라졌다. 물론 그들은 연말에 돌아올 테지만 한동안 보지 못할 걸 생각하니 섭섭했다. 한편으론 다행스러웠다. 떠나는 독수리들을 아낌없는 "우와!"로 배웅할 수 있었으니까.


독수리는 떠났지만 공원에 새로 찾아온 것들도 많았다. 티스푼 같은 개망초 잎과 다글다글한 갈퀴덩굴 잎이 무리 지어 피어났다(이름은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알아냈다). 쑥은 마른 잔디와 버려진 담배꽁초 틈에서 몸집과 개체 수를 야금야금 불리고 있었다. 잔디가 동글동글 무리 지어 피어났다. 그 동그라미는 우리 애들의 주먹 만했다. 토끼풀도 조금씩 올라왔고 돌나물은 뾰족뾰족 돋아났다. 나뭇가지의 여린 연두색은 조금 더 짙어졌다. 올해 처음으로 개미구멍도 발견했다. 우리 셋은 개미들이 뱉어낸 흙 알갱이와 동그란 개미굴 입구를 다리가 저리도록 쪼그려 앉아 쳐다보았다.


집에서 나는 내가 마음에 안 들었다. 산책로에서 나는 새싹을 보느라 나를 잊었다. 아이들은 집안의 지루한 공기가 불만이었다. 그러나 바깥공기를 마시고선 들떴다. 돌멩이 하나로도 깔깔 웃을 만큼.


다음은 큰애가 산책로의 돌멩이를 주운 뒤 발표하신 허풍이 되시겠다.(괄호 안은 나의 추임새.)


"이거 집에 소중히 들고 갈 거예요. 이건, 어~ 있죠, 아담과 하와가 쓰던 돌이거든요. (…뭐라고?) 깔깔깔, 내가 어른 되면 서울대 들어갈 건데요, 아니면 카이스트에 갈 수도 있고요. 뭐 하는 학굔지는 모르는데 어쨌든 거기 가서요, 제인 구달같이 이런 걸 연구하는 사람한테 가서 (제인 구달 같은 사람은 지질학이 아니라 동물학을 연구할 텐데) 깔깔깔! 아무튼 연구를 해서 현대 과학이 이 돌멩이의 비밀을 밝힐 거고, 나는 노벨상을 받을 거예요. (연구는 남이 하고 상은 네가 받는다고?) 그럼 이걸, 그 뭐더라, 부르르르르 박물관? (…루브르?) 아 맞다 부르르! (아니 루브르라고.) 꺄하하하, 네! 부르르! (꺄하하하!) 으히히히, 부르르 박물관 이름을 내 이름으로 바꿀 거예요. 으하하하!"


경탄과 허풍이 혼합된 큰애의 빅 픽처에 태클을 걸던 나는 그만 아이를 따라 웃어버렸다. 큰애가 저 돌멩이에서 첫 인류의 지문을 찾아내긴 어려울 거다. 하지만 아이는 보물 찾기에 성공했다. 돌멩이 속에 숨겨진 '여기 이곳'의 경이로움을 발견했으니까.







1. 쉬운 성경, 창세기 1:31중

2. 쉬운 성경, 창세기 2:23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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