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알사탕이 필요한 날

by 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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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25일의 산책-



우리 동네 산책로를 언제까지 거닐 수 있을까. 이곳에서 평생 살 거란 보장은 없다. 정든 강과 산을 보며 산책할 날은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작별할 날이 올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지루할 만큼 익숙해진 흙길이 와락 소중해진다. 산책의 모든 순간이 애틋해진다.


산책하러 와놓고 산책로와 작별할 날부터 떠올린 이유는 굴착기와 트럭들 탓이다. 공원의 절반이 공사 중이다. 공원엔 찻길이 따로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공사차량들이 산책로 위를 굴러다닌다. 오늘은 굴착기가 산책로의 두 군데를 파내기까지 했다. 배수시설을 만드는 것 같았다. 축축하고 진한 흙무더기와 검은색 원통, 트럭 두 대가 산책로에 놓여 있었다. 오전 10시부터 내린다는 미래의 비를 피하기 위해 아침 9시에 나온 나는, 산책로와 하게 될 미래의 작별을 오늘 연습하게 될 줄은 몰랐다.


'멀쩡했던 산책로'와 헤어지게 된 나는, 공사 영역에 포함되지 않아 용케 살아남은 '구사일생 산책로'로 향했다. 언덕길을 돌아 그곳에 도착했다. 거기에도 내 발자국보다 타이어 자국이 먼저 찍혀 있었다. 이 흙길은 중장비의 출퇴근 기록기이기도 했다. 나는 새들을 위해 가져온 땅콩 조각을 길가에 뿌렸다. 산책로도 이걸 나눠 먹고 새 살이 오르면 좋겠다. 눌리고 파인 곳이 다시 반듯해지길 바랐다.


굴착기보단 늦었지만 나의 출근이 느린 편은 아니었다. 아침 9시의 산책로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내 뒤론 아무도 없었고 수십 미터 앞에도 딱 한 명만이 걷고 있었다. 홀가분하게 마스크를 벗었다. 흐물흐물한 천으로 된 마스크를 쓰고 왔더니 들숨 때마다 천이 콧구멍에 찰싹 달라붙었다. 마스크를 빼니 콧구멍에 들어갔던 콩알이 빠진 것처럼 시원했다. 그러나 좋은 느낌이 오래가진 않았다. 곧, 텁텁한 냄새가 감지됐다. 대기의 냄새였다. 오늘의 공기는 회색이었다. 마스크를 쓰든 벗든 질식의 느낌은 그대로였다.


작은 새들이 갈대 속에서 우르르르르- 와르르르르- 날았다. 비둘기는 파닥파닥파닥파닥, 왜가리는 팍- 팍- 팍-으로 받아쓸 법한 날갯짓으로 흐린 공기를 갈랐다. 작은 새일 수록 날갯짓의 비피엠BPM이 높다. 비피엠은 음악에선 템포를 나타내는 단위이지만 의학에선 심박수를 표시하는 단위이다. 몸이 작은 동물일수록 더 빠른 심박수를 갖는 것이 자연의 보편적인 규칙이다. 닭의 심박수는 분당 245번인데 벌새는 1260번까지 올라간다.[1],[2] 작은 새들은 헥헥헥헥, 큰 새들은 후욱- 후욱- 후욱- 산소를 마시는 것이다. 나와 새들은 열심히 걷고 날면서 먼지와 공기의 혼합물을 들이켰다. 탁한 공기를 다 마셔서 없애버리자고 우리끼리 공모했다.


공사장엔 야외무대가 착착 완성되어 갔다. 높이가 7미터는 되어 보이는 쇠로 된 아치가 세워지고 있었다. 나는 공원에서 물소리와 새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만족스러운데 어떤 이들은 사람의 음악을 여기로 가져오고 싶은 모양이다. 광활한 잔디밭을 공간의 낭비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고. 사다리차에 올라탄 사람이 아치의 윗부분을 망치로 쾅! 쾅! 쾅! 두드렸다. 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는 나의 발소리와 새들의 날갯짓 소리를 흡수했다.


까치 한 마리가 나뭇가지를 입에 문 채 강변에서 날아올랐다. 까치는 쇳덩이 아치를 지나 내가 서 있는 언덕 위를 넘어 찻길을 건너 어느 나무에 도착했다. 거기엔 반쯤 완성된 까치집과 그 애를 기다리던 짝꿍 까치가 있었다. 까치들은 새로 물고 온 나뭇가지를 솜씨 좋게 끼워 넣으며 신혼집을 조립했다. 사람의 건설은 시끄러웠지만 까치의 건설은 조용하고 풋풋했다.


나는 내 심장의 비피엠을 올려 걷는 속도를 높였다. 쇳소리로부터 가능한 한 빨리 멀어지고 싶었다. 애틋한 마음으로 입성한 공원을, 반대의 마음으로 탈출했다. 까치집처럼 조용한 내 집으로 몸을 틀었다. 마스크를 다시 꼈지만 때 묻은 공기는 섬유 틈으로 슝 슝 들어왔다. 그런 걸 잔뜩 마셨더니 목이 칼칼했다. 아파트 입구에 다다르자 동백나무 다섯 그루가 나를 반겨주었다. 나무엔 땡그란 동백꽃 봉오리가 오동통하게 영글어 있었다. 저 알사탕 같은 걸 톡 따서 입안에 넣어 녹이면, 향긋한 꽃물이 까끌까끌해진 내 목구멍을 어루만져 줄 것 같았다.







1. https://www.earthlife.net/birds/blood.html

2. http://mincho.hani.com/arti/PRINT/8141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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