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0일의 산책-
파마를 만 중년 여성이 큭큭 웃었다. 그녀를 웃긴 건 미용실 텔레비전이었다. 시장 후보들의 토론이 방영되고 있었는데 토론보다는 예능에 가까웠다. 오가는 대화 속에 논리와 품위는 없었다.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와 높은 톤의 목소리로 서로를 찌르기 바빴다. 저 난장을 싱글싱글 웃으며 관전할 아량이 내게는 없었다. 그래도 어쩌겠나. 예능 프로그램을 즐기는 이웃을 존중해야 했고, 미용실 사장님의 사유재산도 인정해야 했다. 굴러다니는 미용가위 하나를 낚아채 케이블 선을 싹둑 잘라버리는 야만을 저질러선 안 된다. 나는 미용의자에 스스로를 꾸욱 눌러놓았고 머리칼 끝에서 들리는 가위의 찰칵찰칵 소리에 청각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경박한 말소리가 페이드아웃되길 바라며.
일주일 전, 설 연휴와 '5인 이상 집합 금지'가 동시에 종료됐다. 제한이 풀리자마자 친정·시댁 부모님들을 뵈러 갔다. 일주일간 고속도로를 달리느라 동네 산책로는 밟지 못했다. 일상으로 돌아온 산책에 굶주린 나와 아이들은 이발 다음으로 산책을 택했다. 머리카락 길이가 달라진 우리처럼 강변 공원은 달라져 있었다. 아이들의 놀이터이던 모래톱이 일주일 사이에 싹 없어진 것이다. 모래톱을 싹둑 자른 미용사는 굴착기였다. 산책로 옆에 전에 없던 모래 언덕이 생겼는데 거기에 굴착기의 삽 부분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쇳덩어리는 '이 몸이 새 언덕을 축조했노라'라고 인증하는 낙관이었다.
한 겨울에 모래톱으로 내려가 언 강을 밟던 일, 모래톱에서 나뭇가지와 조개껍질을 줍던 일, 모래 위에 새겨진 아담한 새 발자국을 따라 걷던 일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몽땅 추억으로 묶여버렸다. 뒤뚱뒤뚱 밟으며 놀 희고 넓은 모래톱이 과거로 사라진 게 당황스럽고 섭섭했다.
하지만 산책로 곁에서 자라던 나무들에겐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산책로 옆 비탈엔 비바람의 침식 작용으로 뿌리가 반쯤 드러난 나무들이 있었다. 겨울바람에 얼어붙던 나무의 맨발을 보드라운 흙으로 덮어준 건 굴착기가 이 공원에서 최근에 한 작업 중 그나마 잘한 일이다. 우리의 푹신한 놀이터가 나무의 새 신발로 바뀌었다고 생각하니 분하지 않았다. 납득할 만한 등가 교환이었다.
공원 잔디밭에선 한 남성이 연날리기를 하고 있었다. 고분고분하지 않은 바람은 연을 높은 나무의 우듬지에 걸었다. 연 주인은 실을 거푸 당겼는데 오라는 연은 안 오고 실만 싹둑 끊겼다. 옆에 있던 서너 살배기 여자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내가! 내가!"를 외쳤다. 무엇을 어떻게 내가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으나 기운 좋게 고함을 질러댔다. 아저씨는 딸을 목말 태워 나무 쪽으로 갔다. 연은 장정의 두 배 반이 넘는 길이의 나무 최상층에 걸려 있었다. 아빠 목에 올라탄 작은 아이는 연을 향해 짧은 팔을 '끙!'하고 뻗었다. 소녀의 몽당 손가락 끝까지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러나 아깝디 아까운 차이(약 2미터)로 작은 손에 연은 닿지 않았다. 어처구니없는 도전 정신이 귀여웠다. 아이 아빠는 "봐, 안되잖아. 너무 높아서 못 꺼내."라고 자식을 달랬다. 아가는 자신의 패딩 잠바를 아빠 얼굴에 덮어 씌우며 성질을 냈다.
연에게 불친절했던 바람이지만 그것의 촉감은 부드러웠다. 낮 기온이 20도 가까이 올랐기 때문이다. 2월의 온도라기엔 기형적으로 따뜻했다. 옅은 황토색 잔디를 뚫고 4월의 대표 식품인 쑥이 허둥지둥 솟아올랐다. 온난화에 아무 책임이 없는 작은 새들은 덤불 속에서 천진하게 날아다녔다. 날씨에 결백한 후투티들도 발랄하게 땅을 쪼았다. 오늘의 날씨에 일조한 죄인 셋은 집에서 가져온 볶은 귀리를 덤불 한쪽에 뿌렸다. 환경 파괴의 대가를 억울하게 치르는 무고한 야생 동물들에게 건넨 작은 마음이었다. 한 줌 곡식으로 우리의 채무를 싹둑 제거해버리겠다는 도둑놈 심보는 아니었다. 그냥 그거라도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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