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3일의 산책-
버드 피딩의 결과
버드 피딩은 집의 외부에 새 모이통을 설치하여 야생 조류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일이다. 버드 피딩을 시작하기 전에 그것이 환경에 주는 영향을 조사했었다(참고). 그 결과, 겨울에 버드 피딩을 하는 것은 환경에 교란을 끼치지 않을뿐더러 먹이를 구하기 어려운 새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1월 말에 버드 피딩을 시작했다. 어느덧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모이통의 땅콩 분태는 단 한 알도 줄지 않았다.
나는 아파트 1층에 산다. 우리 아파트 뜰엔 참새가 종종 날아다닌다. 모이통을 잘 보이는 곳에 매단 뒤 새를 기다렸다. 나와 아이들은 새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모이통 근처에 되도록 접근하지 않았다. 손님이 왔는지 확인하고 싶을 땐 다른 방법을 썼다. 베란다 출입문의 유리에 보온을 위해 에어캡을 붙여놓았는데 거기에 디귿자 모양의 작은 칼집을 냈다. 문을 열어서 새들을 놀래는 대신 칼집이 난 에어캡 비닐을 살짝 들추어 바깥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새들 역시 우리를 놀래지 않았다. 아무 새도 오지 않았으므로.
아니, 마침내 오기는 왔다. 오늘 아침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와 아이들은 디귿자 비닐문을 빼꼼 들춰서 바깥 동향을 살피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도 깨자마자 아침 루틴을 실행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낯선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새다, 새였다. 참새 두 마리가 얇은 겨울 아침 햇살을 받고 있는 것이다. 참새가 앉은 자리는 우리 집 베란다 난간과 딱 붙어 있는 키 작은 향나무였다. 집 앞 나무에 참새가 앉은 모습은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게다가 참새들과 모이통의 간격은 불과 1미터. 새들이 땅콩 분태를 발견하고도 남을 거리였다. 드디어 모이통 고객 유치에 성공하는 것인가!
…그러나 그들은 일광욕만 하고 떠났다.
사실 우리 집 베란다의 위치는 새들이 좋아할 환경이 못 된다. 일단 베란다와 아파트 출입구가 딱 붙어 있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흡연 구역이란 표시는 없지만 애연가들이 집합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흡연가들은 우리 집 옆에서 담배를 시도 때도 없이 피운다. 베란다에 널은 빨래에 담배 냄새가 배기 일쑤인데 그때마다 화가 치민다(빨래 건조기 살까…). 게다가 베란다는 주차장과도 딱 붙어 있다. 배기가스와 먼지 역시 쏠쏠하다(진짜, 빨래 건조기 살까…). 베란다 앞 아파트 화단은 길고양이들의 낮잠 핫플레이스이기도 하다.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다 보면 졸고 있는 귀여운 길냥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사람, 고양이, 차, 담배 연기, 배기가스가 교차하는 오거리에서 밥 먹고 싶은 새는 드물겠지.
찾아가는 서비스
새가 오지 않는다면 내가 가면 되지. 요즘엔 공원에 갈 때마다 새들을 위한 귀리나 땅콩 분태를 챙겨 간다. 오늘도 귀리를 들고 산책로에 갔다. 3일 전에 갈대밭에 뿌려둔 귀리는 다 사라졌고 잔디밭에 뿌린 건 그대로였다.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먹어 주었다는 게 기뻤다.
먹이를 뿌렸을 때 새들이 즉각 등장해서 득달같이 해치우는 경우는 없었다. 산책로 입구에 먹이를 뿌려놓고 산책로 끝까지 갔다가 다시 입구로 돌아와도 먹이는 그대로다. 하루 이틀은 지나야 먹이가 사라진다. 마치 우편을 통해 편지를 주고받는 기분이다. 내가 건넨 말에 며칠의 기한을 두고 응답받는 일. 피드백이 광속으로 오가는 세상에서 맛보는 느림이 좋다. 다른 생명들과 교감하며 그들을 돌볼 수 있다는 점도 흐뭇하다.
봄 냄새
어제와 오늘의 낮 기온은 각각 20도와 12도였다. 한참 따뜻하더니 다시 쌀쌀해졌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삼한사온三寒四溫이 이한오온二寒五溫으로 바뀌는 추세라는데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달력과 온도계의 숫자가 어떻든, 공기에서 봄 냄새를 맡아버린 생명들은 겨울잠에서 차례차례 깨어났다. 3일 전엔 주황색 나비와 무당벌레를 봤다. 오늘은 공원 가로등 옆에 피어난 하얀 점 같은 꽃을 발견했다. 냉이꽃이었다. 소리쟁이의 구불구불한 잎은 수북해졌다. 날씬한 잎을 마주 피운 갈퀴나물도 돌 틈에서 돋아나기 시작했다. 나뭇가지엔 연두색의 고운 가루가 내려앉은 듯했다. 을씨년스럽던 가지에 어른어른한 연둣빛이 보슬보슬 부풀었다. 베이비붐이 아닌 새싹붐의 시작. 겨울에 균열을 일으킨 연두색에 내 마음이 울렁거렸다. 눈높이에서 작은 벌레가 붕-붕- 날기도 했다. 그런 애가 두 마리 더 있었다. 겨우내 자취를 감췄던 산책로의 터줏대감들이었다.
공원의 새들
오후의 물새들은 유선형의 조각품으로 변신했다. 그것들은 하중도 모래톱에 옹기종기 모여 1mm의 미동도 없이 해바라기 중이었다. 몸집이 제법 되는 까마귀와 직박구리는 오늘따라 투명 인간이 아닌 투명 새가 되어 깍깍- 찍찍- 소리만으로 존재했다. 대신 겨울에 잘 보이지 않던 비둘기들이 보였다. 공원 하늘을 시원스럽게 미끄러져 날아갔는데 세어보니 열여섯 마리나 됐다. 꼬리 뒤로 비행운은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편대비행하는 전투기처럼 빠르고 늠름했다.
갈대밭에는 더 많은 새들이 술래잡기 중이었다. 주로 붉은머리오목눈이인 것 같았는데 너무 작고 날쌘 탓에 제대로 식별하긴 어려웠다. 새라기보단 흐릿한 갈색 궤적에 가까웠달까. 팔레트에 짠 축축한 물감을 옆으로 쓱 문지른 자국 같았다. 작고 뿌옇고 짧은 흐름이 갈대 속에서 급하게 그려지고 지워졌다. 저놈들을 내 눈으로 또렷하게 포착해보겠노라고 한참을 관찰했다. 햇빛이 종아리를 데워서 따끔거릴 지경이 될 때까지 노력했다. 그러나 헛수고였다. 또렷한 거라곤 "쪼르르르 찍찍-"거리는 노랫소리뿐.
하늘 정수리엔 까만 점 세 개가 천천히 움직였다. 상위 포식자의 매서운 눈이 죽은 몸뚱이를 수색하는 중이었다. 수학자라면 점만큼 작아진 저 독수리들을 보며 저들의 고도를 휘릭 계산해 낼 수 있겠지만 난 수학자가 아닌 수포자이다. 대신 나에겐 인터넷이 있다. 독수리의 평상시 비행고도를 검색해보니 100m에서 300m 사이란다.[1] 이주할 땐 훨씬 높아져서 어떤 독수리는 11,300m까지도 날아오른다고 한다.[2] 독수리는 날개를 퍼덕거리는 대신 활짝 펼친 상태로 상승기류를 타고 비상한다.
한편, 성경엔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며, 독수리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듯 올라갈 수 있다."[3]라는 유명한 말씀이 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높은 자리를 꿰차게 될 거라는 세속적인 약속은 아니다. 바로 뒤의 말씀이 이렇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은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3] 독수리가 자기 힘으로 날개를 퍼덕여서 성층권 입구까지 올라가야 한다면 몹시 지치고 피곤할 것이다. 아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의 독수리는 탈진하는 일 없이 그곳에 도착한다. 상승기류 덕에 날아도 지치지 않고 올라도 피곤하지 않은 것이다. 사람의 인생도 스스로의 힘으로만 살아내기엔 초고난이도다. 인생길을 지치지 않고 완주할 수 있는 힘을, 나는 창조자로부터 얻는다. 하늘 위에서 까만 모래 알갱이처럼 작아진 독수리는 내 삶의 시청각 자료가 되었다.
어쨌거나, 공원의 많은 새들 중 내가 놓고 간 귀리를 잡순 분은 누구일까.
공사장의 고약함
공원의 공사는 50% 정도 진행된 것 같다. 오늘은 못 보던 중장비도 보였다. 구름을 찌를 듯한 팔이 달린 기중기였다. 그것은 아르젠티노사우루스의 갈비뼈만 한 쇳덩이를 옮기고 있었다. 용접 소리, 쇠 타는 냄새, 쇠 두드리는 망치 소리, 중장비가 뿜어내는 진한 매연 냄새, 건설 노동자분들이 태우는 담배 냄새로 공사장은 혼탁했다.
공사장 맞은편의 갈대밭과 강가는 물닭들의 집결지다. 왜 그곳을 찜했는지는 모르지만 물닭들은 유독 그 장소에서 바글거린다. 그런데 오늘은 평상시의 반밖에 없었다. 그들도 봄 냄새를 맞고 이주를 시작한 걸까? 휑한 강이 아쉬웠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 물닭을 만났다. 본거지에서 한참 떨어진 산책로 끝의 강가에 모여 있었던 것이다. 원래 거긴 물닭이 모이는 곳이 아니었다. 얘들이 왜 이곳으로 피신했을까. 물닭들도 시끄럽고 냄새나는 곳, 거대한 중장비와 쇳덩어리가 눈앞에서 흔들거리는 곳은 별로인가 보다.
쓰레기의 땅에도
산책로 끝부분에 물닭만 많은 게 아니었다. 쓰레기가 드글드글 했다. 원래도 쓰레기 친화적인 공원이지만 오늘은 몰려오는 봄기운과 대비되어 더러움이 한층 도드라졌다. 거대한 스티로폼 박스가 갈대밭을 굴렀고 강에는 신원 미상의 비닐들과 형태를 알 수 없을 만큼 퉁퉁 불은 오물들이 둥둥 떠다녔다.
쓰레기의 물 위에 새들이 떠다녔고 쓰레기의 땅 위에 봄이 착륙했다. 맘에 안 드는 곳을 기피하는 새들이지만 안타깝게도 이 강보다 더 나은 대안은 없나 보다. 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비위가 좋아서 어디든 내려앉는 걸까, 아니면 더러운 공원을 초록으로 덧칠해 주려는 걸까.
1.http://www.news-story.co.kr/news/articleView.html?idxno=57173
2.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8479045&memberNo=38419283
3. 이사야 40:31, 쉬운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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