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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Feb 02. 2021

버드 피딩, 해도 될까?


Copyright 2021. 녹차 all rights reserved.




까치밥은 우리나라의 다정한 문화다. 선조들은 감나무의 감을 모두 따지 않고 새들이 먹을 수 있게 남겨 두었다. 외국에도 비슷한 문화가 있다. 바로 '버드 피딩(Bird Feeding)'이다. 버드 피딩은 집의 외부(정원이나 베란다 밖)에 모이통을 설치하여 야생 조류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일이다. (위험한 도로 근처에서 새에게 먹이를 준다거나, 물새들에게 사람이 먹는 음식을 던져 준다거나, 촬영이나 유희를 목적으로 새를 유인하기 위해 먹이를 흔드는 잘못된 모이 지급도 버드 피딩이라면 버드 피딩이지만 이 글에서는 제외하겠다.)


까치밥에 비해 버드 피딩은 좀 더 적극적이고 광범위하다. 유튜버 '새덕후'에 따르면 미국 가구의 40%, 영국은 75%가 버드 피딩 중이라고 한다.(출처) feedwatcher 사이트에는 미국에서 5천만 명의 사람들이 매년 수십억 파운드의 씨앗을 새들에게 제공한다고 말한다.(출처) 코넬 조류학 연구소에서는 미국 가정의 43퍼센트 또는 약 6천5백만 가구가 버드 피딩 중이라고 발표했다.(출처) 영국 생태 학자 케이트 플러머는 영국에서만 버드 피딩으로 1억 9,600만 마리의 새가 먹이를 보충하는 중이라고 말한다.(출처) 버드 피딩을 다룬 외서들도 셀 수 없이 많다. 새를 먹이는 일에 대한 그쪽 사람들의 관심을 짐작할 만하다.


서양의 버드 피딩 문화가 저토록 활발한 건 우리와 주거환경이 다른 탓도 있을 것이다. 좁은 땅에 사는 우리는 아파트 인구가 많다. 아파트 상층에 사는 가구에서 버드 피딩을 했을 경우 아래층 사람에게 민폐를 끼칠 우려가 있다. 새 분비물, 날갯짓 소리, 지저귐 소리가 이웃 주민에게 스트레스를 준다면 무리해서 버드 피딩을 고집해선 안 된다. 대다수의 사람이 마당 없는 집에 사는 우리나라에서 버드 피딩이 대중화되지 않은 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버드 피딩이 가능한 주거 환경에 산다거나 새를 좋아한다고 해서, 또는 험난한 환경에서 사는 새들이 가엾다는 이유로 버드 피딩을 무작정 시작해도 괜찮을까? 그러기엔 고민해야 될 것들이 있다.


1. 버드 피딩은 새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2. 버드 피딩은 인위적인 생태계 교란이 아닐까?

3. 버드 피딩은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주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4. 버드 피딩을 하면 새들이 야생성을 잃고 모이통에 의존하지 않을까? 휴가나 이사 등의 이유로 모이 지급을 중단하면 새들이 굶어죽지 않을까?

5. 버드 피딩이 철새들의 이주를 늦추진 않을까?

6. 버드 피딩은 어느 계절에 하는 게 좋을까?

7. 여러 종류의 새들이 모이통으로 올 텐데, 서로 다른 새들이 모이통을 매개로 서로의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건 아닐까?

8. 그 외 버드 피딩의 좋은 점은 무엇인가?


위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보았다.



1. 버드 피딩은 새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수천 명의 프로젝트 참여자가 수집한 30 년 동안의 FeederWatch 조사에 따르면, 모이통을 많이 사용하는 종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개체 수가 늘어났다.(출처) 또한 모이통을 이용한 새들은 더 건강하고 많은 새끼를 낳았다.(출처) 영국에서도 버드 피딩이 영국 전역의 도시 새 개체 수 증가 와 관련이 있다고 나타났다.(출처)



2. 버드 피딩은 인위적인 생태계 교란이 아닐까?

버드 피딩으로 개체 수가 늘어나는 게 좋은 현상일까. 버드 피딩이 새들의 자연 생존율을 방해하여 생태계를 교란 시키는 건 아닐까. 아니면 갈수록 터가 좁아지는 야생에서 살아가는 위기의 조류를 돕는 것일까. 이것에 대한 간단한 대답은 없다. 

owlcation 사이트는 버드 피딩이 '인간이 이 행성에 가한 피해를 바로잡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자신의 문명을 구축하느라 동물 서식지를 너무 많이 잠식했다. 야생 동물들의 생존 환경을 망쳐놓은 인간이 버드 피딩으로 생태계에 환원하는 것은 합리적인 행동이라는 입장이다.(출처)

생태 학자 케이트 플러머도 위와 비슷한 주장을 펼친다. 인간이 환경 변화를 유발했기에 전 세계적으로 새들의 먹이 터나 먹이의 양도 변했다. 인간이 새들의 자연식품 공급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조류의 생존 전망이 광범위한 방해를 받고 있다. 버드 피딩은 이런 상황에서 새 개체 수를 조금이나마 지원하는 긍정적인 개입으로 볼 수 있다.(출처)

실제로 BTO(British Trust for Ornithology)의 연구에 따르면, 여러 농지 종자를 먹는 조류 종이 겨울에 정원 모이통을 방문하는 이유는 변경된 농업 관행으로 인한 자연식품의 고갈 때문이라고 한다.(출처)

참고로 뉴욕타임스는 2019년 9월 19일에 코넬대학교 조류학 연구소와 미국조류보호 협회의 공동 연구 결과를 통해 북미 지역에 서식하는 조류 개체 수가 1970년에 비해  29억 마리 줄었다고 발표했다.(출처) '새와 생명의 터'라는 우리나라 기관에서도 '조류 현황 2014'를 통해 과거에는 120종, 근래에 들어서는 103종의 조류가 상당한 감소를 보였다고 작성했다.(출처)

조류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든 원인은 대형 초원, 숲의 감소로 인한 서식지 손실, 과도한 농약 사용, 기후 변화, 고양이의 포식, 건물 및 통신 장비와의 충돌, 조류의 먹이인 곤충의 감소 등이다.(출처

버드 피딩이 아닌 인간의 번성 그 자체가 생태계 교란의 핵심으로 보인다. 버드 피딩으로 늘어난 개체 수는 인간이 번성하느라 줄어든 개체 수에 비하면 미미한 것 같다.



3. 버드 피딩은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주는 것과 뭐가 다른가?

김인철 전남대 조류생태학과 교수는 "4~5월은 괭이갈매기 산란기로 먹이 대신 새우깡을 되새김질해 새끼에게 먹이게 되면, 어린 괭이갈매기가 영양실조로 성장하지 못하는 등 생태환경이 파괴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출처)

반면 10년 이상 새를 연구한 경성대 조류관 우동석 담당은 큰 문제가 안 된다는 입장을 냈다. 새우깡은 갈매기에게 간식 수준이므로 새우깡을 매개로 인간과 새가 교감을 나누는 기회를 반대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출처)

나는 김인철 교수의 우려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갈매기에게 지급되는 새우깡의 양이 아무리 간식 수준이라 해도 새우깡이 '건강한' 간식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갈매기가 좋아서 그에게 간식을 주고 싶으면 갈매기의 먹이 습성에 맞는 자연의 먹이를 제공하는 게 맞지 않을까.

버드 피딩의 경우엔 새들이 먹는 씨앗이나 견과류, 물을 지급하는 게 보통이다. 새우깡과는 질이 다르다. 그리고 버드 피딩에서는 대체로 야생 새들과 인간의 거리가 유지된다. 손에 새우깡을 쥐고 갈매기가 집어먹게 유도하는 것처럼 야생 동물과 밀접 접촉을 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4. 버드 피딩을 하면 새들이 야생성을 잃고 모이통에 의존하지 않을까? 휴가나 이사 등의 이유로 모이 지급을 중단하면 새들이 굶어죽지 않을까?

새들은 신뢰할 수 있는 먹이 공급원에 익숙해지고 그곳으로 매일 방문한다.(출처)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모이통을 이용하는 새들은 자신의 식사량의 3/4을 다른 곳에서 보충한다. 모이통이 비면 새들은 재빨리 자연식으로 돌아간다.(출처) 가장 혹독한 기상 조건을 제외한 모든 상황에서 야생 조류는 모이통이 비었을 때 다른 먹이를 찾을 수 있다.(출처

대부분의 새는 씨앗뿐만 아니라 곤충, 열매, 작은 척추동물을 먹는다. 모이통에 보이지 않는 새들은 다른 곳에서 다른 음식을 먹는 중이다. 심지어 매우 극단적인 날씨인 겨울에도 모이통의 음식은 새들의 주식이 아니라 보충제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는 나무껍질에서 잠자는 곤충을 찾고 다른 곳에서 다른 음식을 찾을 수 있다. 버드 피딩을 중단한다고 해서 새들이 굶어 죽지는 않는다. 그들이 조금 더 열심히 일해야 할 뿐이다.(출처)

생태 학자 케이트 플러머도 연구 자료를 인용하며 버드 피딩이 새의 의존성을 유발한다는 우려엔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연구에 따르면 모이통의 먹이는 겨울철 푸른박새 식단의 20% 미만을 차지하며, 모이를 얼마나 쉽게 구할 수 있는지에 관계없이 어미 새는 거의 독점적으로 새끼에게 자연식품을 먹인다. 25년간 모이통을 이용하던 새들에게 모이통을 끊었으나 그것에 그 새들의 겨울 생존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연구도 있다. 즉 보충 식품은 보충 식품일 뿐이다. 버드 피딩으로 인해 새가 자연식품을 찾아 먹는 능력을 잃게 된다고 말할 이유는 없다.(출처)

유튜버인 '새덕후'도 비슷한 말을 했다. 새들은 자신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사람이 주는 씨앗 같은 한 가지 먹이만 먹는 게 아니라 단백질 같은 다른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서 벌레 등을 알아서 잘 찾아먹는다고 한다.(출처)



5. 버드 피딩이 철새들의 이주를 늦추진 않을까?

모이통으로 인한 풍족한 먹이 덕분에 철새들이 이주할 생각을 하지 않을까 봐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 철새의 이주를 유발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이다. 낮의 길이, 낮은 기온, 식량 공급의 변화, 유전 적 소인의 변화 등으로 이주가 촉발될 수 있다. 수 세기 동안 새를 새장에서 키운 사람들은 철새가 매년 봄과 가을에 안절부절하는 시기를 겪으며 새장의 한쪽으로 반복적으로 펄럭이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새장은 대체로 온도가 따뜻하며 식량에서 풍족한 곳임에도.(출처)

feedwatch 사이트는 철새 이주의 요인으로 '광주기'를 콕 집어 이야기한다. 철새의 이주 충동은 주로 낮의 길이에 의해 유발되는데, 모이통에 있는 풍부한 모이조차도 새의 이주 충동에 저항하도록 만들지 않는다고 말했다.(출처) 생태환경 잡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도 광주기를 언급하며, 조형 참새목 조류의 경우 무엇보다 낮의 길이와 관련된 '생체 시계'가 월동지에서의 출발시기를 결정하게 된다고 말했다.(출처) 오슬로대 교수인 닐스 크리스티안스텐세스도 철새의 이동에 있어서 낮의 길이가 중요한 변수라고 주장한다.(출처)

오히려 늦여름과 가을에 철새들에게 먹이를 주면 남쪽으로 가는 여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의견도 있다. 올바른 새 모이가 제공한 추가 칼로리는 새들에게 안정적인 에너지를 제공함으로써 철새의 이주에 기여하는 것이다.(출처)

오늘날 철새 이주에 무엇보다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지구 온난화이다. 많은 유럽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유라시아 철새들은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평균 2.5일에서 3.3일 이동 시기가 빨라진다고 보고했다. 새들의 생체 리듬은 번식과 관련된 호르몬 분포와 연관된다. 기온이 오르면 번식 관련된 호르몬 분비가 증가하고, 이러한 생체리듬 변화가 철새 이동 시기를 빠르게 만든다는 것이다.(출처)

버드 피딩이 철새 이주 시기에 영향을 끼친다는 결정적인 연구는 찾을 수 없었다.



6. 버드 피딩은 어느 계절에 하는 게 좋을까?

연중 내내 모이통을 유지하는 걸 문제 삼지 않는 의견도 있었지만(출처) 대부분의 자료들은 '여름엔 굳이'라는 뉘앙스였다.

날씨가 더울 때는 모이통을 없애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극심한 더위에서는 새가 모이통을 방문하지 않을 수 있을뿐더러 습기가 높거나 더울 때 씨앗 같은 모이가 쉽게 상하기 때문이다.(출처)

대부분의 새들은 여름엔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 새끼를 낳고 키울 때 많은 새들이 곤충을 먹는 데 집중하기 때문에 그럴 때는 먹이가 덜 필요하다. 어린 새들이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음식을 찾는 방법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므로 여름에는 버드 피딩을 중단하는 게 좋다.(출처)



7. 여러 종류의 새들이 모이통으로 올 텐데, 서로 다른 새들이 모이통을 매개로 서로의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건 아닐까?

모이통에 많은 새들이 찾아올 경우 그 모이통은 독감 유행 시기의 문 손잡이 역할을 한다. 모이통엔 예상치 못한 종이 한데 모일 수 있고, 평소보다 더 자주 새를 모아서 기생충 및 기타 오염 물질에 이상적인 조건을 만들 수 있다. 정기적으로 세제를 이용하여 새 모이통을 청소하는 것이 필수인 이유다.(출처1출처2

최소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최대한 2주 간격으로 모이통을 청소할 것을 전문가들은 권고했다. 씨앗 찌꺼기나 새의 분비물이 너무 많다면 매주 청소하는 것이 좋다. 먹이통 아래의 땅에 씨앗 껍질이 쌓인다면 그곳도 매주 청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쥐가 방문할 것이다.(출처)

너무 많은 새들이 찾아온다면 여러 개의 모이통을 거리를 둬서 설치해야 한다.(출처)

audubon 사이트는 이렇게 결론 내렸다. "그러니 새들에게 먹이를 주세요. 하지만 그러려면 새들이 떠난 뒤의 청소 업무를 맡았다는 것도 깨달으세요."(출처)



8. 그 외 버드 피딩의 좋은 점은 무엇인가?

버드 피딩은 새들의 삶을 더 쉽게, 우리의 삶을 더 즐겁게 만들어준다.(출처) 대부분의 경우 야생 조류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괜찮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도 좋다. 모이통에서 얻는 칼로리와 영양의 추가 증가는 번식 기간 동안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버드 피딩을 하는 사람은, 자연에 참여하고 생태에 대해 배우고 세상을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들기 위해 그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조심스럽게 행해지는 한, 사람과 새 모두에게 유익하다.(출처)



버드 피딩에 대한 고민들을 대략 해결한 후 나는 모이통을 구입했다. 나는 새를 좋아하고 아파트 1층에 산다. 앞 베란다 바깥으로 모이통을 걸었다. 그 안엔 땅콩 분태를 반쯤 채워 두었다. 새들은 지방이 풍부한 씨앗이나 견과류를 좋아한다고 해서 땅콩을 골랐다. 꽉 채우면 모이 소비가 느려질 테니 모이통 세척 주기를 당기기 위해서 반만 채웠다.  모이통은 초봄까지 걸어둘 생각이다. 


버드 피딩을 시작한 지 오늘이 4일째다. 지금까지 손님이 아무도 없다. 개업하자마자 폐업 위기다. 어젯밤엔 꿈까지 꿨다. 우리 집 모이통에 새들이 잔뜩 찾아와 식사하는 꿈이었다. 아이들도 매일 아침 조심스레 창문을 내다보지만 실망의 연속일 뿐이다. 내일은 산책로에 가서 새들에게 호객 행위를 해야겠다. "짹짹짹! 짹짹짹짹짹 짹짹 짹짹짹짹 짹짹 짹 짹짹 짹짹 짹짹 짹~(얘들아! 보양식이나 간식 필요하면 우리 집 앞에 와서 먹고 가~)"


* 새들이 모이통을 발견해서 찾아오기까지는 일주일 이상 걸린다는 이야기도 있다. 일단 발각?되면 맛집 소문나는 건 시간문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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