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의 첫날, 11년 만의 황사 경보가 발효됐다. 황사가 엎질러진 세상에 서 있으니 기관지염보다 급성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다. 황사가 묽어진 뒤엔 초미세먼지와 미세먼지가 빈자리를 채웠다. 산책과 환기의 즐거움을 슬프게 추억한 일주일이었다.
토요일인 오늘, 봄비가 내렸다. 앞뒤 베란다의 창문을 창틀 끝까지 밀어젖혀 탁-! 소리가 났다. 베란다 바닥에 비가 튀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일주일 동안 짐처럼 끼고 살았던 미역국 냄새, 밥 냄새, 욕실에 떠다니는 샴푸 냄새, 네 식구가 방출한 이산화탄소 냄새를 바깥으로 진탕 흘려보냈다. 묵은 냄새들이 옅어졌다. 축축하고 상큼한 공기가 아래쪽에서부터 차올랐다. 수면양말 속의 발이 슬쩍 차가워졌다. 메아리처럼 들리는 직박구리의 찍-! 찍-! 소리, 비가 1cm 두께로 코팅된 아스팔트 위를 시속 40킬로미터로 달리는 자동차의 챠륵! 소리가 청량하게 들려왔다. 뭔가를 되찾은 사람처럼 안심이 됐다.
물방울이 먼지를 끌어안고 땅으로 추락한다. 봄비가 물청소를 한다. 봄비는 더 이상 땅에게 단물이 아니다. 구정물이다. 그걸 마실 땅과 지하수, 강, 바다에게 미안하다.
나긋하고 여린 저 봄비가 땅과 물에 들어가서도 계속 추락하길 바란다. 흙과 뿌리와 가시개미와 자갈과 바위를 지나, 물과 미역과 명태와 모래를 스쳐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길 바란다. 사람들이 게워낸 먼지에 수갑을 채워 지구 한복판으로 끌고 가길 바란다. 마침내 이 행성의 불타는 심장에 도착해서 자기가 연행한 티끌을 벌건 도가니 속으로 퉤- 뱉어 버리길 바란다. 먼지들의 최후가 불덩이의 간식이길 바란다. 담금질로 순도 100%가 된 금속처럼 청결해진 봄비만 수증기처럼 가볍게 위로 위로 올라오길 바란다. 마침내, 떠다니는 먼지가 없는 곳, 명랑한 물고기와 풀뿌리가 사는 곳에 정착하여 재미나게 살길 바란다.
인간들의 만행의 뒷감당을, 한 방울 봄비에게 떠넘겨본다. 얼굴도 붉히지 않은 채.
덤터기를 쓴 봄비는 우리 집 베란다 쇠 창틀에 부딪히며 팅팅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미지의 외국어라서 번역기를 돌려도 해석이 안된다. 아기 새처럼 작은 목청으로 하루 종일 팅팅 톡톡 탱탱 툭툭 거리고 있다. 얼핏 듣기엔 그냥 귀여운 음악 같다. 티읕이 빠지지 않는 저 거센소리들을 귀엽다는 순한 말로 칭찬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공기와 식물과 내 귀를 위한 봉사라고만 치부해버리는 것도 부당해 보인다. 음악이 아니라 욕이면 어떡하지. 봉사가 아니라 비명이면 어떡하지.
열한 시간째 봄비가 내리고 있다. 음악인지 비명인지 모를 입자가 자비롭게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