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초능력
하루를 마감할 땐 똥 누다 억지로 끊은 찝찝함을 느낀다. 몸뚱이가 한 개 밖에 안 되는 게 너무 아쉬워서 수학 문제집 속에 나를 집어넣은 뒤 이 육체를 제곱해버리고 싶다. 나는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한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다. 해도 해도 미완성인 할 일 목록이 내일로 이월된다.
며칠 전엔 하루 종일 집안일을 했다. 봄맞이 대청소였다. 앞뒤 베란다를 쓸고, 마른 빨래를 개고, 세탁기 두 번 돌려서 널고, 화장실 청소를 하고, 집안 쓸고 닦고, 식탁 의자와 부엌 하부장과 싱크대를 닦고, 가스레인지와 전자레인지를 닦고, 냉장고도 닦았다. 그러는 틈틈이 글을 쓰고, 성경을 읽고, 영어 공부를 조금 하고, 밥 먹으면서 책을 읽고, 통밀빵을 만들고, 점심과 저녁을 차리고, 내일 먹을 반찬 만들고, 막내에게 수학을 가르쳐 주고, 식기세척기에 안 들어가는 냄비와 그릇을 설거지했다.
하루 만에 손이 사포처럼 변했다. 열 손가락 끝에 핸드크림을 치약처럼 콕콕콕콕콕콕콕콕콕콕 짜서 발랐다. 가문 땅이 물 삼키듯, 갈라진 손끝이 로션을 꿀떡 꿀떡 흡수했다. 피곤해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결국 나는 분신술을 수련하기로 했다.
내가 익히려는 분신술은 이러했다. 나누어진 '나'들은 완벽하게 똑같은 '나'다. '나'들의 체험, 기분, 생각 등은 실시간으로 온전히 동기화된다. 이것은 한 사람이 수학 문제를 풀면서 동시에 세계사 암기를 하는 경우와는 꽤 다르다. 보통은 두 일 모두 제대로 하기 힘들지만 분신술로 나누어진 '나'에겐 가능하다. 수학 공부하는 '나'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수학에 집중할 수 있다. 같은 시간에 세계사를 외우고 있는 또 다른 '나'의 의식에는 전혀 방해받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나'들은 완전히 연결된다. 마치 내 심장과 나의 관계와 비슷하달까. 심장이 전력 질주로 뛰고 있을 때도 나는 고요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나누어진 '나'들은 원하면 언제든 한 몸으로 복원된다. 여러 명의 '나'가 각각 샤워를 하거나 따로 밥을 먹으면 물과 양식이 낭비될 테니 그럴 땐 가능한 합체를 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분신술은 지구 환경에 마이너스일 수밖에 없다. 하다못해 산소라도 더 소모하게 될 테니까. 우리의 지구는 하나다. 지구는 분신술이 안 된다. 분신술이 가진 윤리적인 문제는 내 마음을 찝찝하게 했다. 하지만 여분의 '나'를 확보하고 싶은 내 바람은 거대했다. 지구보다 더.
나는 분신술을 터득하기 위해 산으로 들어갔다. 이 나무나 저 나무나 다 그 게 그거 같은 수천의 쌍둥이 초록들 틈에서 수련을 시작했다. 24분 동안 수련에 매진한 나는 어쩌다 보니 분신술을 습득했다. 두 명의 '나'는 서로를 마주 보며 "헐 대박."이라며 반가워했다. 흥분을 가라앉힌 '나'들은 짧은 의논 끝에 '1번 나'를 하산시켰다. 집에 가서 식구들 밥도 차려야 하고, 반납 기한 다 되어가는 도서관 책도 읽어야 했으니까. '2번 나'는 계속 수련한 끝에 네 명의 '나'를 추가로 분리해냈다. 2, 3, 4, 5, 6 번의 '나'는 1번이 있는 집으로 금의환향했다.
'나'들은 만나자마자 역할분담을 했다. 평소 하던 일을 여섯 가지로 나눴다. 살림, 육아, 산책, 독서, 글쓰기, 그림 그리기. 깔끔하게 분류되지 않는 일은 그때그때 나눠 하기로 했다(부모님께 전화드리기, 잼 나이프에 묻은 땅콩버터 빨아먹기 등). 역할은 하루씩 교대로 실행했다. 하기 싫은 일(예를 들면 살림)을 특정한 '나'에게만 전담시키면 그 '나'는 미쳐버리겠지. 그럼 '나'들 끼리의 동기화 덕분에 결국 '나'라는 완전체도 미쳐버리겠지.
역할의 로테이션 속에서 환상적인 날들이 이어졌다. 한 가지 일에 하루 종일 집중할 수 있는 삶은 곶감보다 달콤했다. 하루 종일 산책하고, 하루 종일 책을 읽고, 하루 종일 글자와 그림에 파묻히는 날은 전두엽이 간질거릴 만큼 좋았다. 4일을 베짱이처럼 지내다가 생존과 책임의 영역인 살림과 육아를 이틀 동안 감당하는 것도 즐거웠다. 사람 노릇을 몰아서 하는 기분이랄까.
일주일이 지나서야 여섯 명의 '나'들은 각성했다. 왜 우리는 고작 여섯에 만족했는가. 생활인의 경계에 갇혀서 해볼 엄두조차 못 했던 모험들을 이젠 뭐든 할 수 있지 않는가. 여섯 명이 아니라 열여섯 명, 백여섯 명으로 '나'를 불릴 생각을 어째서 못 했나. '나'들은 서로 머리를 박으며 우린 돌대가리였어,라고 자책했다.
'나'들은 흥분 속에서 펜을 꺼냈다.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허겁지겁 적어 내려갔다. 전국 미술관 투어하기, 시골에 살면서 밤마다 별 보기, 조용한 산속 오두막에 콕 박혀서 세계문학 전집 독파하기, 영어 마스터하기, 자전거 배우기, 팔 굽혀 펴기 할 줄 아는 사람 되기, 탐조인으로 살아보기, 이모티콘 작업 재도전 하기, 강변 산책로 쓰레기 청소하기, 오랫동안 못 봤던 친구들 차례로 만나기, 요양보호사와 사회복지사 자격증 따서 외할머니가 계신 요양원에 취직하기……. 여기까지 적고 나서 '나'들은 훌쩍 훌쩍 울었다. 외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눈물을 닦고 코를 푼 '나'들은 또 다른 걸 깨달았다. 저 목록들을 수행하려면 여분의 '몸'뿐 아니라 '돈'도 필요하다는 것을. 무슨 돈으로 미술관 도장 깨기를 할 것이며, 무슨 돈으로 시골에 집을 얻을 것이며, 무슨 돈으로 자격증 공부를 할 것이며…….
어쩔 수 없이 리스트가 추가되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하기, 베이커리 아르바이트하기,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하기……. 여기까지 적은 '나'들은 더욱 우울해졌다. 나는 어째서 이 나이 되도록 세상에서 통하는 기술 하나가 없는 걸까. 나는 왜 이다지도 생산적이지 못한 인간일까.
리스트가 길어질수록 점점 민망해지던 '나'들은 자신의 유일한 재능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가 가진 오직 하나의 기술, 분신술로.
1번 '나'가 말했다. "분신술을 가르쳐주는 영상을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자. 순식간에 다이아 버튼 받을걸? 수익도 굉장할 거야." 2번 '나'가 말했다. "맞아, 이 기술은 전 지구인이 원할 거야. 단박에 인기 동영상 1위 하겠지?" 3번 '나'가 말했다. "근데 나쁜 놈들까지 이 기술을 쓰면 안 되잖아." 4번 '나'가 말했다. "맞아. 난 분신술을 30분 연속으로 자 보는 게 소원인, 밤중 수유에 시달리는 새내기 엄마에겐 가르쳐 주고 싶지만 소말리아의 무법자들이나 미얀마의 군부들에겐 알려주고 싶지 않아." 5번 '나'가 말했다. "나쁜 놈이 없다고 가정해도 이 기술은 공개 못 해. 모든 지구인이 자신을 둘로만 불려도 세계 인구가 153억 명이 되잖아. 그것만으로도 끝장이야. 우리 터전인 지구 자체가 닳아 없어져 버릴 거라고."
달콤한 꿈에 부풀었다가 세계 종말에 가닿은 '나'들은, 터지기 직전까지 팽창했다가 순식간에 바람이 빠져버린 풍선처럼 쭈그러들었다. 금단의 특권을 여섯 배로 누리는 자신들이 반칙의 제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신께서 인간에게 딱 하나의 몸뚱이만 주신 이유를 시무룩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둘을 넘어 여섯, 여섯을 넘어 열여섯이 되어도 자가 분열은 완결되지 않을 것이었다. 하나의 육체로 동동거리며 이 일 저 일을 찔끔거리던 그 모습 그대로 백 명의 '나', 천 명의 '나'는 수 백 수 천 배로 많아진 할 일 앞에서 동동거릴 것이 예상되었다.
분신술의 흐린 전망에 '나'들은 실망했다. 타오르던 백일몽의 의지가 꺼져버리고 머리카락처럼 얇은 연기만 피어 올라갔다. 여섯의 '나' 모두, 똥 누다 만 구린 기분에 빠졌다. 여섯 배의 삶을 살았는데 여섯 배로 늘어난 잔변감만 남았다. 불편하고 피곤했다. 졸음이 몰려왔다. 힘 빠진 '나'들의 손에서 펜이 굴러떨어졌다. '나'들은 한 명의'나'로 합체했다.
나는 하나밖에 없는 푹신한 내 이불 위에 몸을 눕혔다. 단출한 한 명의 나는, 건포도처럼 달달한 잠에 빠져들었다. 잠 속에서 달콤한 꿈을 꾸었다. 그 꿈의 끝엔 세계 종말 대신 밝은 레몬색 아침이 한 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