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 빵집에서 통밀 식빵 가격을 올렸을 때 충분히 이해했다. 식재료의 가격이 야금야금 오르는 상황을 나도 관전 중이기 때문이다. 빵 가격을 올린 건 3년 만이라고 한다. 통밀 식빵이 400원 올라서 4,900원이 되었다. 우리 식구들이 매일 한 덩이씩 클리어하는 작은 식빵이 거의 5,000원인 거다. 싸지 않다. 주식인 현미쌀에 비하면 더더욱. 가격 인상을 납득하지만 비싼 건 비싼 거다. 우리 집의 한 달 빵 값은 진즉에 10만 원을 찍었다. 저 금액도 부담스러운데 여기서 빵 지출이 더 커지면 너무 헤프다. 하지만 빵을 안 먹을 순 없다. 가족들 모두 빵 없는 아침을 상상하지 못한다. 대책이 필요했다.
나는 가정용 제빵기를 검색했다. 가성비 좋은 모델이 11만 원대 후반이었다. 우리 집은 100% 통밀빵만 먹기 때문에 재료로는 통밀가루와 이스트면 충분했다. 식힘망도 하나 골랐다. 이것들을 다 합치니 13만 원 대. 결제 버튼을 누르는 대신 양손으로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제빵기, 살 것인가 말 것인가. 몇 시간 동안의 밀도 높은 번뇌가 시작됐다.
제빵기를 사자니 걸리는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제일 거북한 건 살림이 늘어난다는 점이었다. 나는 텅 빈 공간을 사랑한다. 꼭 필요한 물건만 소유하는 걸 지향한다. 특히 바닥에는 가구 외의 물건을 놓는 걸 싫어한다. 그러나 바닥 말곤 제빵기를 놔둘 데가 없다. 제빵기로 100% 통밀빵이 얼마나 완성도 있게 구워질지도 모르겠다. 메이드 인 제빵기 빵이 식구들 입맛에 맞을 거란 보장도 없다. 제빵기 사용법이 간단하다고 하지만 자질구레한 집안일이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일이 늘어나는 건 늘 부담스럽다. 사놓고 안 쓰게 되기라도 하면, 고민하느라 보낸 시간 낭비에 돈 낭비가 더해진다. 기기가 빨리 고장 나기라도 하면 스트레스까지 합쳐지겠지.
제빵기 구매를 주저하면서도 구매 버튼 앞을 쉽게 떠날 수 없었다. 늘 주문하던 통밀 식빵 여섯 개를 장바구니에 담고도 평소처럼 쉽게 결제를 누르지 못하는 내 손가락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초기 비용이 다소 들긴 해도 장기적으로 식비를 절약할 수 있는 버튼을 클릭했다. 제빵기와 함께 할 불확실한 미래보다, 비싼 빵 값을 할부금처럼 성실하게 지불하는 일이 더 짐스러웠기에.
몇 시간 애를 태우다 제빵기를 주문했다. 디자인은 구렸다. 반면, 한 달 전엔 10년 넘게 애 태우던 물건을 샀다. 식기세척기였다. 남의 집을 옮겨 다니며 사는 우리 가정에 적합한 무설치 소형 식기세척기. 가격은 19만 원대. 디자인도 예뻤다.
첫애가 태어난 후, 집안일을 보조해 주는 가전에 눈이 갔다. 초 예민한 아가를 돌보며 겸하는 집안일은 송두리째 짐이었다. 식기세척기에 대한 필요도 그때 싹텄다. 첫애가 물건을 붙잡고 일어설 무렵이 되자 단순한 '필요'가 불타는 '갈구'로 변했다. 설거지를 할 때면 첫애가 내게로 기어 왔다. 아이는 내 다리를 붙잡고 서서 내 엉덩이에 자기 머리를 쿵 쿵 박았다. 그러면서 목청껏 곡을 했다. 설거지가 끝날 때까지. 밥 차리고, 밥 먹이고, 식탁 치우고, 설거지하는 연속 노동 때문에 안 그래도 피곤한데 엉덩이와 달팽이관을 두드려 맞기까지 해야 됐다. 고달파서 딱 환장할 노릇이었다. 제발 좀 이 설거지라도 누가 대신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때 난 왜 '생각만' 했을까. 남편에게 집안일을 함께 하자고 왜 더 적극적으로 요청하지 않았을까. 리베카 솔닛은 여성들에게 주입된 "공손함"에 대해 "어떤 상황에서도 남들의 안락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서글프게 말했다. 나에게도 그런 공손함이 두껍게 발려 있었다. 아이로서, 집안의 최연소자로서, 여성으로서 공손하라는 가르침을 지속적으로 받았다. 덕분에 남의 안락을 깨트리는 요구를 꺼내는 게 몹시 힘들었다. 그러나 나에게도 환장하지 않을 만큼의 안락은 필요했다.
남편은 왜 적극적으로 집안일에 동참하지 않았을까. 자라면서 집안일을 해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그때 괴로운 시절을 통과하는 중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은 내가 부탁하는 일을 흔쾌히 해주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집안일에 깊이 들어오지는 않았다. 내가 편하게 요구하는 사람이 되기까지, 남편이 집안일을 그때보다 더 많이 나서서 하는 사람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결혼 초기의 내 미련함과 남편의 수동성은 아쉬운 기억이다.
여하튼 십 년 넘게 식기세척기를 사지 못한 건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너무 비쌌고, 식기세척기 설치를 위해 남의 집 싱크대를 손대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고, 이사할 때마다 새로 만나는 부엌들은 소박한 개수의 그릇을 수납하기에도 빠듯했다. 이 세 가지를 한번에 극복한 모델이 마침내 눈에 들어왔다. 지체 없이 구매 버튼을 눌렀다.
남편과 첫애는 이미 자기 식기를 스스로 설거지한다. 우리 집은 기름기 덜한 채식 위주로 먹느라 설거지가 까다로운 편도 아니다. 식기세척기에 넣을 수 없는 그릇(플라스틱 반찬통이나 냄비)들은 지금도 직접 씻어야 한다. 그럼에도 좋다. 설거지의 상당 부분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어서, 내 시간이 요만큼 늘어나서 즐겁다. 식기세척기의 쾌속 모드를 누르면 30분 동안 철벅 거리는 물소리가 난다. 요즘 즐겨 감상하는 ASMR이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독서를 누린다. 단팥죽보다 달콤한 시간이다.
식기세척기를 사면서 밀대 걸레도 샀다. 10년 동안 사용한 밀대가 있지만 보관 방법도, 사용할 때마다 길이를 조절해야 하는 점도, 걸레를 탈착하는 방식도 다 번거로웠다. 내 속에 누적된 불편함이 드디어 폭발했다. 쇼핑 검색창에 '밀대'라고 쳤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독특한 우주다. 방대한 차이 속에서도 희한하게 다른 이들과의 교집합을 가진 우주다. 내게 필요한 밀대와 똑같은 물건이 모니터 속에 있었다.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는 구매평들이 쌓여 있었다. 나는 구매 옵션에서 '걸레 추가'를 클릭한 후 2만여 원을 지불했다. 손잡이를 누르면 물이 칙- 나오는 새 밀대를 보고 둘째 아이는 "미래가 된 것 같아요!"라며 놀라워했다. 새 밀대는 보관도 용이하고 걸레 탈착 및 세척도 파격적으로 쉬운 데다 디자인까지 예쁘다. 방 닦는 일이 몇 배 유쾌해졌다.
최근 한 달간 저런 물건들을 샀다. 하지만 장바구니에 넣을 일 없는 물건도 여전히 많다. 텔레비전, 에어프라이어, 김치냉장고, 오븐, 빨래 건조기, 공기청정기, 제습기, 전기밥솥, 커피 머신, 토스트기, 로봇 청소기, 스팀 청소기 등. 이것들은 나와 우리 집에 필요 없다.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구매하는 일은 낭비이다. 남의 말에 흔들리느라 내 줏대를 낭비한다. 물건을 고르느라 시간을 낭비한다. 그걸 사느라 돈을 낭비한다. 그걸 놔두느라 집 평수를 낭비한다. 그 물건을 관리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나의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한다. 마침내 그 물건은 쓰레기로 변형됨으로써 지구의 자원과 우리 행성의 공간을 낭비한다.
성경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소가 없으면 외양간이 깨끗하겠지만,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다."(잠언 14:4) 집에 물건이 없으면 호텔방처럼 쾌적할 것이다. 그러나 꼭 필요한 물건들은 생활에 유용한 도구가 된다.
한편 성경에는 이런 말씀도 있다. "세상 물건을 쓰는 사람은 그것들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은 사람처럼 사십시오."(고린도전서 7:31상) 무라카미 하루키는 『장수 고양이의 비밀』에서 이렇게 말했다. "형체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물건은 양면이 있다. 물건은 나를 고민에 빠지게도, 나를 돕기도 한다. 좌우간 그것들에게 내 마음까지 줄 순 없다. 그것들은 그저 물건일 뿐이다. 언젠가는 다 사라져버릴.
*. 리베카 솔닛,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창비
- 구매한 물건들 : 오성 7인용 제빵기, 쿠쿠 식기세척기 CDW-A0310TW, 살림의 발견 밀다 밀대 걸레. 네이버 쇼핑에서 검색 후 최저가로 구매함. / 광고 아님. 과소비 및 충동구매 조장 아님. 혹 댓글로 물어보실까 봐 정보 공유 차원으로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