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 전부터 다시 이모티콘을 그렸다. 속도 있게, 그러나 성심껏. 총 6세트의 이모티콘을 제안했고 2주 뒤부터 결과가 발표됐다. 미승인, 미승인, 미승인, 미승인, 미승인. 다섯 번의 불합격 메일을 받았다. 연속 탈락 행진이었다. 서른 번 이상의 연속 탈락에 지쳐 지난 1년간 이모티콘 도전에 담쌓고 지냈었다. 1년 만에 이모티콘 제작에 의욕이 생겨 재도전을 시작했으나 결과는 씁쓸했다. 아직 결과를 모르는 이모티콘이 하나 남은 상태였으나 연속 36회 불합격(연속적이지 않은 것까지 다 합치면 총 69회 미승인이다)을 달성한 나는 울적했다.
뭐 이렇게까지 능력이 없고 난리일까. 이게 과연 건강한 도전일까. 자기 파악을 외면한 무모함은 아닐까. 아니면 나는 '고작' 이 정도의 불합격에 징징거리는 나약한 사람인 걸까. '아쉽지만'이라는 말이 들어간 탈락 메일 내용은 이제 달달 외울 정도다. 빨간색 '미승인' 글자를 들이미는 해당 플랫폼도 야속하다. 그들은 내 이모티콘에 미승인 도장을 찍는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다. 왜 떨어졌는지 대강 짐작은 한다. '미승인 받는 이유', '승인받는 방법' 같은 걸 검색하면 이모티콘 업계에 몸담은 작가들이 쓴 분석들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노하우들을 당연히 감안하여 작업한다. 그러는데도 계속 떨어진다. 경쟁률이 세서 어쩔 수 없는 걸까. 내가 주력하는 플랫폼은 카카오톡이다. 그곳엔 일주일에 대략 1,500건이 넘는 이모티콘이 제안되는데 그중 50건 이하의 이모티콘이 승인되는 걸로 추정된다.[1] 승인 확률이 바늘구멍이긴 하지만 승인받는 사람은 여전히 있다. 불합격의 탓은 결국 나에게 있다. 사용자와 플랫폼의 니즈를 또렷하게 읽지 못하며,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선명하게 그려내지 못하는 나에게.
능력과 멘탈이 그저 그런 내가 쉽지 않은 일에 계속 도전하는 이유는 세 가지이다. 생계와 의미와 재미.
생계
블로그 운영이나 네이버 이모티콘 판매, 최근 시작한 일러스트 굿즈 판매 등은 생계에 손톱만큼의 보탬이 된다. 그런데 그것은 신생아 손톱 사이즈다. 반면 카카오톡 이모티콘은 내게 월급을 준다. 내가 출시한 이모티콘 여섯 개는 출시한지 오래되었는데다 인기도 없기 때문에 매일 가냘프게 판매된다. 그 판매금이 한 달 동안 쌓이면 나의 유일하고도 허약하면서도 고마운 월급으로 완성된다.
의미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라는 김연아의 어록은 내게 충격 그 자체였다. 나는 어떤 일이든 '그냥' 하지는 못한다. 의미 없는 일을 하는 건 너무 괴롭다(그래서 오랫동안 집안일이 고통스러웠(과거형)음…). 이모티콘 작업은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이다. 문자로 이루어진 대화에 감정을 표현하는 그림을 톡톡 뿌려서 대화의 간을 맞춰주는 건 의미있는 일이다. 내가 만든 이모티콘이 사람들의 대화에 적절하게 사용되어 누군가의 마음이 좀 더 잘 전달되는 데 기여한다고 생각하면 퍽 기쁘다.
재미
나는 그림 그리는 게 가장 재밌다. 아웃풋이 형편없는데도 때려치울 생각은 해 본 적 없고, 거의 평생 그림을 그려왔는데도 지겹지 않은 걸 보면 재밌는 게 확실하다.
이모티콘이 가지는 생계, 의미, 재미라는 요소는 내 손이 이모티콘을 그리게 만드는 충분한 동기부여가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모티콘에만 주력하지는 못한다. 수백 대 일의 전쟁터에서 애를 쓰다가도 주기적(때론 1년 내내)으로 발을 빼 줘야 한다. 거기서만 죽치고 있기엔 내 힘이 너무 달리고, 이모티콘 외에도 해야 할 일은 많기 때문이다. 무경쟁 지대에 있는 그림 에세이 작업은 나에게 작은 힐링이며, 독서도 포기할 수 없다. 집안일과 육아는 디폴트 업무이다. 이런 일들은 내게 월급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나와 가족들을 살리는 소중한 일들이다.
36차 연쇄 탈락자는 궁금한 게 많아졌다. 이렇게 많이 실패하는 게 정상인가? 포기해야 하나? 가망 없는 일을 붙잡고 억지로 고집 피우는 중일까? 엄살 피우는 건가? 다들 이만큼씩 떨어지는 건가? 내 이모티콘은 뭐가 문제일까?
고민 속에서 일주일이 흘렀고 하나 남았던 마지막 이모티콘 제안의 결과가 도착했다. '승인'. 파란색 '승인' 글자였다. 37번 두드린 끝에 얻은 승인, 19개월(중간에 많이 쉬었지만)만의 합격이었다. 너무 오랜만의 승인이라 믿어지지 않았다. 촌스럽지만 무의식적으로 양 팔을 올려 만세 포즈를 취했다. 간만의 합격이 감사하면서도 고민은 계속됐다. 내 눈엔 미승인된 거나 승인된 거나 별 차이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모티콘에 대한 확실한 감이 없다는 반증일테다. 이런 내가 이 일에 계속 도전해도 될까. 미승인 69건과 승인 7건을 달성한 고민 많은 사람은, 어쨌거나 눈물이 찔끔 났다.
1. https://j-loveletter.tistory.com/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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