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건에 곰팡이가 슬었다. 올여름만 세 개째이다. 빨랫감이 나오는 족족 세탁을 했는데도 그렇다. 다행히 옷엔 곰팡이가 안 슬었다. 비가 징글맞게 내렸던 작년엔 옷, 가방, 장롱, 이불, 모자 등 온갖 것에 곰팡이가 생겼었다. 그때에 비하면 올해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그래도 여름은 여름이다. 덥고 습하다. 방바닥에 물을 뿌려놓은 것처럼 장판이 축축하다. 걸을 때 장판에 발바닥 무늬가 찍힌다. 바닥을 향해 고개를 숙인 선풍기를 쉴 새 없이 틀고, 낮엔 에어컨을 꼭 켠다. 견디기 힘들 만큼 바닥이 이 축축할 땐 보일러를 튼다. 삼복더위 중이지만 어쩔 수 없다.
습기 때문에 축축한 바닥은 먼지를 더 잘 붙잡는다. 더럽고 축축한 바닥을 걸레로 닦을 때도 보일러 가동은 필수다. 물걸레질을 하면 바닥의 습기가 배가되기 때문이다. 보일러를 틀어 물기를 말려야 마침내 장판이 쾌적해진다.
여름은 식물에게도 힘든 계절이다. 다육식물의 잎을 가진 송엽국을 키우는 중인데 일주일쯤 전에 송엽국 한 뿌리가 죽어버렸다. 장마 때 물을 한 방울도 주지 않았는데 과습이 됐다. 뿌리와 잎이 무른 형태는 충격적이었다. 솜사탕에 물을 부어 버린 상태 같았다. 어떻게 식물이 사탕처럼 녹아버릴 수 있지. 얘들 혹시 수용성인가? 송엽국의 고향은 1년 내내 온화하고 서늘한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이다. 덥고 습한 우리나라의 여름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녹아내린 송엽국을 퍼서 아파트 화단에 버렸다. 몇 달간 애지중지 키웠던, 알록달록하고 달콤한 향의 꽃을 피우던 식물이었다. 벌과 나비를 불러 모으던 성실했던 식물이 흙으로 돌아갔다.
다른 화분의 흙엔 곰팡이가 생기기도 했다. 쨍한 햇살에 달달 구워져야 흙도 쾌적할 텐데 하늘은 우중충하고 날은 습하니 곰팡이만 활개를 친다. 흙에 생긴 곰팡이를 퍼서 버렸다.
그림 작업을 할 땐 팔이 책상에 쩍쩍 달라붙는다. 목에 닿는 가느다란 머리카락은 두꺼운 코트처럼 답답하다. 머리를 스포츠형으로 밀어버릴까 싶다가도 헤어스타일을 실용의 측면으로만 접근하진 말자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똑같은 일상을 살고 있지만 전보다 피로를 더 느낀다. 오늘은 알람 소리를 듣고도 일어나지 못했다. 덕분에 7시 10분까지 늦잠을 잤다. 산책도 거의 못하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걷는 게 힘들어서이다. 여름과 동시에 코로나도 무르익는 바람에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숨 쉴 수 있는 집이야말로 가장 안락한 장소가 됐다(발바닥에 바닥이 들러붙긴 하지만). 산책을 못하니 허리와 정신세계가 좀 피폐해졌다.
더위와 습도 외에도 삶은 도전투성이다. 요즘 나의 최대 도전 과제는 둘째의 수학 공부이다. 남편과 번갈아가며 공부를 봐주고 있는데 정말이지 학을 뗄 노릇이다. 학원엔 절대 가지 않겠다고 해서 우리가 가르치고 있지만 보통 어지간한 게 아니다. 이 아이에겐 암기력, 의욕, 이해력, 독해력이 전무하다. 도대체 그 많은 그림책은 어떻게 읽은 걸까(뭘 읽어낸 걸까)?내 아이니까 포기할 수 없어서 가르치고는 있다. 100번이나 반복한 개념과 문제인데도 뒤돌아서면 모르겠다고 할 땐 진짜로 울고 싶다. 나는 어른이니까 눈물을 참지만 이 아이는 맨날 운다. 방정식도 미적분도 아닌 시계 읽기와 cm, mm 개념이 어렵다며 통곡한다. 주님…….
어려운 시기와 계절이다. 그래도 감사한 일은 항상 있다. 강력한 습도에도 컴퓨터와 냉장고, 식기세척기, 선풍기, 세탁기, 신티크 등의 가전제품들-내 일상에 꼭 필요한 부품들-이 고장 없이 돌아가고 있다. 코로나가 깊어져서 아이들의 수학여행과 소풍이 백지화되었지만 등교는 계속하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여름성경학교는 취소되었지만 주일학교는 조심스럽게 진행 중이다. 도서관도 축소 운영 중이지만 여전히 책을 빌려 볼 수 있다. 장맛비로 샤워한 수박은 비싸고 맛 없어졌지만 오이와 애호박, 파프리카는 저렴해졌다. 불앞에 서 있는 게 힘들긴 해도 나에겐 먹을 양식이 있고 그것을 조리할만한 체력도 있다. 습기와 더위와 코로나를 바닥 닦아내듯 청소할 능력이 내겐 없지만 세상의 역사를 주관하시며 자기 자녀들을 돌보시는 주님이 계심을 안다. 힘든 시기를 버티는 모든 이들에게 그분의 자비가 상쾌한 가을바람처럼 찾아들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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