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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누가 사겠냐

by 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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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린 일러스트를 다양한 상품에 프린트해서 판매 중이다. 판매한지는 2개월이 지났다. 수익은 없다시피하다. 판매 부진의 이유는 많을 거다. 내 그림이 별 볼일 없어서, 대량생산되는 공산품들에 비해 가격이 약간 비싸서, 홍보가 안 돼서, 생필품이 아니어서, 판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등등.


나의 현실은 여전히 무인도이다. 봐 주는 이 없는 곳에서 개인전을 여는 느낌이다. 반응이 거의 없다. 하지만 계속 그린다. 그것이 유일한 전략이니까. 이 전략은 미련하다. 통할 거라는 보장이 없다. 자기만족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으니 이거라도 하겠다는 심정인지도 모르고.


최근엔 친지 한 사람에게 내 일러스트 상품 소식을 알렸다. 구매해달라는 읍소처럼 비칠까 봐 말할지 말지 고민되었지만 그래도 그림을 보여주고 싶어서 소개했다. 한 번 구경해보라는 나의 말에 그는 'OK'라는 알파벳 두 개를 보냈다. 그 후 열흘이 지나도록 다른 반응은 없었다.


또 다른 친지에게도 일러스트 상품을 보여줬다. "그리느라 수고했다" "그런데 이걸 누가 사겠냐?"라는 두 문장이 함께 발화됐다. 둘 다 맞는 말이었다. 두 번째 말엔 기운이 좀 빠졌지만.


가끔 자괴감이 든다. 나는 왜 이 나이 먹도록 나만의 그림 세계를 구축하지 못했을까. 나는 왜 20년 가까이 도전만 하고 있을까. 그림을 그린 지 오래인데도 왜 늘 제자리 같을까. 자리를 잡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내가 심은 씨앗도 뿌리라는 걸 내릴까. 열매 다운 열매를 맺는 날이 올까. 내 그림들은 어쩌다 이런 과년한 무명씨의 주인을 뒀을까.


그래도 꿈은 꾼다. 누군가는 나의 그림을 보고 미소 지을 수 있기를. 내 그림을 통해 마음이 요만큼 밝아지기를. 세상에 태어난 내 그림이 1인분의 몫을 하게 되기를. 그런 즐거운 소망을 품고 연필을 움직인다. 그림 그리기 같은 행복한 일을 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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