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에 지인이 놀러 왔다. 그는 내가 그림 그리는 사람이란 걸 안다. 내가 보고 싶어서 왔다는 그는 내가 차려준 밥을 먹으며 이렇게 말했다. "제 아이는 절대 그림 안 시킬 거예요."
그는, 나의 업에 대해 폄하하려는 건 아니라고 했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창의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기 아이들은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단다. 자신의 첫째 아이가 그림에 꽂혀서 너무 고민이란다. 만약에 아이가 그림을 전공하겠다고 하면 자신은 1원도 지원해 주지 않을 거라고도 말했다. 왜 저렇게까지 생각하는 건지 몹시 의아했다. 혹 가까운 친지 중에서 예술을 업으로 삼았다가 망한 사람이라도 있냐고 물어봤다. 딱히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지인은 반복해서 말했다. 그림 그리는 건 평범하지 않다고. 자기는 아이들이 평범하게 살길 바란다고.
그림 그리는 삶과 '평범'이 양 극단에 서있을 거라곤 생각 못 해봤다. 애초에 '평범'이란 개념은 잘못된 이상이기 쉽다. 『평균의 종말』을 쓴 토드 로즈는 평균의 허상을 꼬집으며 "평균적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못 박았다. 책의 요지는 이러했다. 평균, 또는 평균 이상이 되라고 닦달하는 관점을 거부하고 자기의 관점에서 최고의 자신이 되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이라고.
누구나 자기 속에 어떤 기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평균'이라고 생각하는 건 오류다. 그리고 그것으로 자신이나 남을 속박하는 건 폭력이 될 수 있다.
한편 내가 지인의 생각을 아예 수긍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나도 내 아이들이 그림을 전공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내가 걸어 봤고, 걸어가고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어떤 고충이 있을지 안다. 내가 맛본 좌충우돌과 실패를 아이들이 똑같이 겪으란 법은 없지만 그래도 이 쓴맛을 선뜻 권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우리 집 형편에서 예체능을 전공시키는 건 쉽지 않다.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최대한 존중하되 빚을 내서 교육하지는 말자고 남편과 오래전에 합의했다. 한데 큰 애는 벌써 그림 전공에 호감을 갖고 있다. 저 호감이 커져서 마침내 그림을 전공하겠다고 선언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녀 교육 앞에서는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어쨌든 나는 아이에게 "그림 전공은 절대 허락할 수 없다"라고 말할 체면이 없다. 내가 그림을 전공하는 호사를 누렸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게 맞다고도 생각한다. 하나님이 자녀에게 주신 달란트를 잘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부모로서의 내 역할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림 그리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도 안다. 자신의 진로를 남이 좌지우지하려 할 때의 고통도 잘 안다.
그러니 아이가 하겠다는 일에 초 치고 싶지가 않다. 휘황찬란한 뒷받침은 못 해 줄지라도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응원해 주고 싶다. 평균이 어떻고, 밥벌이가 어떻고라는 잔소리는 세상에서 지겹도록 들을 거다. 그러니 부모까지 그런 말을 보탤 필요는 없지 않을까. 막아서지도 말고, 미안해하지도 않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의 따뜻한 지원을 해주고 싶다.
무엇보다 자녀를 키우는 건 내 능력이나 계획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성경을 읽고 자녀를 키우면서 알게 됐다. 하나님이 아이들을 세상에 보내실 땐 그들의 삶을 책임져 주시겠다는 약속도 동봉하신 것임을. 주님이 아이들의 삶을 어떻게 인도하실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의 매일을 응원하고 싶다. 아이들이 자라서 무슨 전공이나 일을 하게 되든 그것으로 자신의 삶을 기쁘게 누리길 바란다. 또한 하나님이 주신 그 달란트를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사용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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