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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나는 재택근무하는 프리랜서다. 홀로 일하는 재택근무자에겐 단점도 있지만 장점도 있다. 인간관계 스트레스가 없다는 게 장점 중 하나다. 물론 좋은 사람들로부터 얻는 배움이 없다는 건 단점이다.아쉽지만 그런 건 독서를 통해 보충하려고 한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말'이었다. 이런저런 모양의 육체적 폭행을 당한 경험이 아예 없진 않다. 하지만 그런 건 어쩌다 겪는 이벤트였다. '말'로 얻어맞는 일은 훨씬 많았다. 언어로 인한 부상이 누적되다 보니 신체에 가해지던 것들 보다 더 아프게 기억되는도 모르겠다. 하지만 때론 피부에 난 생채기보다 부서진 마음이 더 고통스럽다. 거짓말, 무시하는 말, 놀리는 말, 욕하는 말, 거부하는 말, 나를 조종하려는 말들의 홍수에서 허우적거리던 긴긴 어린 시절은 우울했다. 전혀 돌아가고 싶지 않다. 지금은 밝은 보사노바 선율 같은 말을 가족들과 주고받는다. 이런 시절을 살게 돼서 좋다. 차고 넘치게 감사하다.


뾰족한 말로부터 거의 해방된 나와는 달리 남편은 여전히 말에 시달리며 산다. 바깥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사람을 많이 상대하다 보니 그렇다. 말에 많이 찔린 날의 남편은 집에 들어올 때부터 표정이 다르다. 무례하고 무책임하고 못된 말들이 남편의 마음에 고랑을 판다. 남편에게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내 맘까지 우울해지고 화가 나는 칙칙한 말들. 그것들이 발화될 때의 생생한 뉘앙스와 분위기까지 다 받아내야 했을 남편이 안쓰럽다. 속상하고 화가 난다.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혀는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힘을 가졌으니…(쉬운성경/ 잠언 18:21상)", "부드러운 말은 송이꿀과 같아서, 영혼에 달며 뼈를 치료한다.(쉬운성경/잠언 16:23)"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 또한 하나님은 사람을 그분의 형상대로 만드셨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도 우리의 말로 생명을 창조할 수 있다. 내 말로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다. 송이꿀 같은 말, 상대방의 영혼에 달콤함을 선물하는 말을 할 능력이 선천적으로 탑재되어 있다.


얼마 전에 미승인 받은 이모티콘 중엔 미승인 돼서 오히려 감사했던 게 있다. 처음으로 부정적인 멘트로 콘셉트를 잡았던 이모티콘이었다. 작업하는 내내 즐겁지 않았다. 성난 표정을 서른두 개씩이나 그렸더니 내 표정도 그렇게 따라갔다. 제안하고 나서도 마음이 찝찝했다. 빨간 미승인 글자를 보고 나서야 정신이 차려졌다. 제작할 때부터 마음이 불편했는데 왜 이런 걸 꾸역꾸역 그렸을까. 이젠 저런 콘셉트의 이모티콘은 그리지 않기로 했다. 내 말이 가진 파워를 죽이는 쪽이 아닌 살리는 쪽으로 조준하고 싶다. '사람을 살리는 말, 부드러운 말'을 앞으로 작업할 모든 이모티콘들의 공통 콘셉트로 삼자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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