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에 총 13개의 이모티콘을 제안했다. 그중 2개는 아직 심사 중이고 11개는 탈락했다. 10월 내내 미승인만 받은 셈이다. 총 미승인은 102개를 달성했다. 드디어 탈락 100회를 돌파했다.
10월 한 달간 나는 뭘 한 걸까. 소변이 잘 안 나올 만큼, 그림 그리다가 졸 만큼 피곤했다. 밥을 하고, 집안을 닦고, 연필을 쥐느라 손가락 끝이 터서 피가 났다. 핸드크림으로는 회복이 되지 않아 매일 연고를 발랐다. 그렇게 애써서 내 길 앞에 13개의 허들을 세웠다. 그것들은 내 발에 걸려 우수수 넘어졌다. 나도 11번 연속으로 땅에 나뒹굴었다. 멀쩡할 리 없다. 기분이 망연해졌다. 물 부족으로 쪼그라든 다육이의 잎처럼 마음에 주름이 졌다.
결과주의로 나를 몰아세우는 건 부당하다. 그럼에도 나를 다그쳤다. 왜 이렇게까지 못하지? 왜 이렇게 감이 없지? 9월엔 승인을 몇 개 받았으면서 10월엔 왜 퇴보했지? 나의 효용가치는 뭐지? 이럴 거 뭐 하러 열심히 살았지? 모니터 속의 이슬로 사라져버릴 참이었던 내 피, 땀, 눈물은 나의 닦달을 들어야 했기에 맘 편히 휘발되지도 못했다. 나는 '나의 과정들'을 그렇게 두 번 죽였다.
다행히도, 어젯밤부터 시작된 어그러진 자기혐오는 오늘 새벽에 막을 내렸다. 우그러졌던 마음도 조금씩 팽팽해지고 있다. '하다 보면 또 언젠간 승인되겠지'라는 막연한 긍정이나 자기 최면 때문은 아니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긍정의 힘』이라는 책과 그 책의 저자인 조엘 오스틴을 좋아하지 않는다.
습관처럼 열심히 노력하겠지만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노력 만능 주의를 신봉해서도 아니다. 노력은 나를 102번이나 배신한 장본인이다. 밑도 끝도 없는 긍정과 노력 지상주의엔 신물이 난다. 이런 까칠한 사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부정적인 감정과 무기력에서 빠르게 회복 중이다.
내가 노력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에게 꽃길을 보장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나의 역할이기 때문에, 주어진 삶을 직무유기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노력한다.
예수님은 '종에게 재산을 맡기고 간 주인의 비유'를 들려주셨다. 종들은 각각 다른 분량의 달란트(돈)를 받고 그것을 관리하라는 책임을 부여받는다. 시간이 흘러 종들에게 결산의 때가 온다. 종들은 주인에게 받은 달란트로 장사를 하여 각기 다른 분량의 재산을 남겼다. 주인은 종들이 남긴 달란트의 많고 적음으로 그들을 평가하지 않았다. 주인은 착하고 충성된 종을 칭찬했다. 그러나 악하고 게으른 종에게 노했다.
아침에 눈을 떴다는 것은 하루치의 생명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노력으로 얻은 게 아니다. 내 심장은 나의 계획과 노력으로 뛰지 않는다. 나는 매일 to do list를 적지만 거기에 '심장 뛰게 하기'라고 쓰지 않는다. 생명은 내가 받은 가장 놀라운 선물이다.
그림을 좋아하는 마음, 그림 그리는 재능 역시 내가 받은 선물이다. 이 재능은 세계적이지도 국내적이지도 않다. 그만큼이 나에게 주어진 분량이다.
나의 역할은 내게 주어진 달란트로 오늘 치 장사를 성실히 하는 것이다. 나에게 달란트를 맡기신 하나님은 수익률을 따지지 않으신다. 받은 선물을 착하고 충성스럽게 운용했는지만 보신다. 내가 나에게 들이대는 잣대나 세상이 나에게 요구하는 기준과는 다르다. 많이 넘어졌고, 넘어진 충격으로 잠깐 아팠지만, 어두웠던 생각이 서서히 교정됐다. 넘어진 건 중요한 게 아니구나. 실패한 건 아무것도 아니구나. 결과의 빈약함에 슬퍼할 필요가 없구나.
오늘 새벽 기도회 때 들은 말씀으로도 위로를 받았다. "주께로부터 힘을 얻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를 의지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쉬운성경/ 시편 84:4상, 12)"
변변찮은 내가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불안한 세상을 살아간다. 이 삼박자 안에선 행복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나의 발은 요동하지 않는 바위 같은 주님 위에 서 있다. 나를 만드신 분, 나의 영혼과 육체에 생명을 주신 분, 흰 종이 위에 선을 그을 때 짜릿한 감정을 느끼게 해 주시는 분. 이 모든 선물을 주신 주님 때문에, 가장 큰 선물이신 주님 덕분에 내 마음은 행복해진다. 마음에 힘이 차오르는 걸 느끼며 기도드렸다. '또 실패한다 해도 낙심하지 않게 해 주세요. 선물을 받은 사람답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실히 살게 해 주세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그린 이모티콘이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웃음과 따뜻함을 부풀리는 이스트가 되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