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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그럽게 사랑하며

by 녹차

"우와, 색감이 너무 예뻐요. 캐릭터도 너무 귀엽고요. 엄마, 이번 이모티콘은 당연히 승인될 거예요."


큰애의 단골 멘트다. 내가 이모티콘 작업을 할 때마다 저런 찬사를 보낸다. 영혼 없는 립 서비스가 아니다. 큰애는 내 그림을 진심으로 좋아한다. 큰애 방엔 액자가 여러 개 있는데 모두 내 그림을 프린트해서 방주인이 직접 끼워둔 것이다. 내가 그린 이모티콘도 프린트해서 소장한다. 아이의 칭찬을 들으면 한 편으론 쑥스럽고, 한 편으론 고맙다. 보는 족족 "이건 무조건 통과될 거예요!"라며 호언장담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예언은 펠레의 저주와 비슷해서 대부분의 이모티콘이 탈락한다. 미승인 소식을 들으면 큰애는 세상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 도대체! 왜요?"라며 콧김을 씩씩거린다. 카카오톡 이모티콘 심사위원에 이 아이를 위촉하는 일이 시급하다.


큰애뿐 아니라 과묵한 막내와 남편도 나를 지지하고 사랑한다. 큰애처럼 표현이 풍부하진 않지만 두 남자의 은은한 사랑도 따뜻하게 표현된다. 어릴 때 못 받은 칭찬과 사랑을 어른이 되어서 한 번에 받는 느낌이다.


나의 사촌 오빠와 언니들은 아주 똑똑하다. 사촌 오빠 1은 서울대, 사촌 오빠 2는 미국 유학, 사촌 언니들은 이화여대에 갔다. 큰어머니는 나의 엄마에게 전화해서 하소연하기 일쑤였다. "우리 00가 전교 3등밖에 못했지 뭐야." 반면 우리 엄마는 반에서 3등도 쉽게 해내지 못하는 남매를 키웠다.


오빠는 어릴 때 영특했지만 중학교 때 방황을 해서 바라던 과학고엔 진학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꿈꾸던 특목고에 합격했다. 고등학교 합격 소식을 듣곤 너무 기뻐서 서둘러 집에 갔다. 현관을 열고 엄마에게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나, 붙었대요!" 엄마는 나를 흘깃 쳐다보며 "그래"라고 말한 뒤 읽던 신문을 계속 읽었다. 아, 이건 기뻐할 일도 칭찬받을 일도 아니구나. 말할 수 없이 민망했다.


오빠는 고등학교 때도 방황을 했다. 그러다 지방대에 들어갔는데 큰엄마는 우리 엄마에게 그것도 대학이냐고 비아냥거렸다. 그리하여 엄마는 고3인 나를 나를 앉혀놓고 엄숙하게 말했다. "오빠는 못 갔지만 너는 서울대에 가거라." 그러나 나 역시 서울대에 못 갔다. 대신 내가 꿈꾸던 대학에 합격했다. 가슴이 벅찼다. 기뻐하는 나에게 엄마는 굳은 얼굴로 차갑게 말했다. "너는 좋냐? 나는 안 좋다." 그 아홉 마디는 대학 합격의 기쁨을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큰엄마 역시 나의 대학에 대해 빈정거린 것은 물론이다.


엄마는 큰엄마의 비교에 오래도록 시달렸다. 비교당할 때마다 학을 뗄 만큼 싫어했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당한 비교를 고스란히 나와 오빠에게 적용했다. 참 의문이었다. 비교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뼈저리게 알면서 왜 그걸 자기 자식에게 갖다 대는 걸까. 엄마는 오빠와 나에게 끝없이 요구했다. 절대로 만족하지 않았다. 우리를 늘 한심해 했다. 끝없이 잔소리했다.


오빠와 나는 다르게 반응했다. 오빠는 반항했다. 엄마와 싸웠다. 학사경고를 맞았다. 자퇴를 했다. 집을 나갔다. 집 나간 오빠를 찾기 위해 정처 없이 길을 헤매던 날의 막막한 감정이 아직도 선명하다. 오빠와 엄마의 전쟁은 너무 길었고 지나치게 시끄러웠다.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 불화가 지긋지긋해서 평화주의자가 됐다. 엄마의 잔소리와 오빠의 반항을 다 혐오했다. 나는 차라리 엄마를 만족시켜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엄마의 워너비는 황새였고 나는 뱁새였다. 내 전략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 합격 소식을 들은 밤, 냉소가 기쁨을 잡아먹은 밤, 깜깜한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 울었다. 엄마가 들으면 안 되니까 소리 없이 울었다. 그때부터였다. 엄마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툭 끊어졌다. 쓸데없는 의무를 홀가분하게 내려놓은 건 아니었다. 마음의 자유를 얻은 것도 아니었다. 일생일대의 시험에서 불합격한 기분이었다. 꼭 붙어야 하는 테스트 앞에서 절대로 합격할 도리가 없는 열등생이 된 것 같았다. 무기력했다. 많이 슬펐다. 화가 났다.


그날 밤 이후로 20년의 시간이 흘렀다. 졸업, 결혼, 출산 등의 굵직한 일을 통과했다. 많은 일이 있었다. 엄마와의 관계는 이런저런 굴곡을 겪으며 조금씩 완만해졌다. 하지만 엄마와 내겐 여전한 것이 있다.


여전히 엄마는 큰엄마와 사촌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엄마는 일류 대학을 나온 사촌들과 큰엄마와의 불화를 들추며 "그래도 너희들은 명절에 우리한테 오지 않느냐"라고 말한다. 어릴 적의 비교와 양상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여러모로 듣기 거북한 비교이다. "엄마, 그 집 사정을 우리가 다 아는 것도 아니고, 다른 집 자식 흉보는 것도 좀 그렇잖아요. 사촌들 사는 모습에 대해서는 이제 그만 관심 거두세요."라고 말씀드리니 "그래, 그건 그렇지."라고 하셨다.


큰엄마는 단지 '자녀 비교'만 시전하지 않았다. '시집살이 종합 선물세트'를 내 엄마에게 오랫동안 쏟아부었다. 혹독했던 큰엄마 등살은 이제 거의 끊어졌다. 하지만 엄마는 여전히 옛날 일을 못 잊고 몸서리치신다. 똑같은 이야기를 내게 하고 또 하신다. 상처를 쉽게 떨쳐버리지 못하는 엄마가 안쓰럽다. 내가 엄마와 똑같은 일을 당했다면 나는 엄마의 반만큼이라도 견딜 수 있었을까. 나는 엄마를 치유할 능력도 책임도 없다. 그러나 당신의 짐의 중량을 줄이기 위해 말이라는 형태로 뱉어내고 또 뱉어내는 엄마의 고달픔을 토닥이고는 싶다.


나는 여전히 엄마에게 말하지 못한다. 내 감정들, 힘들었던 옛날 일들, 최근에 겪은 더러운 일들 모두를. 엄마에게 나의 이야기를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미칠 듯이 이야기하고 싶었기에 온몸의 용기를 긁어보아 진심을 보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때마다 결과는 처참했다. 엄마는 나의 일상 이야기엔 귀찮음으로, 기쁨에는 차가움으로, 고민에는 무시로, 요구에는 호통과 거절로 답했다. 결국 내가 엄마에게 할 수 있는 말들은 몇 가지로 추려졌다. 농담, 날씨 이야기, 식물 이야기, 손주들이나 내 일에 관련된 '좋은' 소식.


감정이 풍부하고 수다쟁이인 큰애는 나에게 온갖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쏟아놓는다. 저런 이야기를 엄마인 나에게 편하게 털어놓는 게 낯설고 신기했다. 처음엔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게 힘들었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내가 어릴 때 엄마에게 바랐던 일이었기에 부족하나마 아이에게 귀를 내주었다. 들어주고 반응해 주는 다정한 엄마가 되는 건 너무 어려웠다. 전능한 신께 매일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난해했다. 아직도 나는 모자란 엄마이지만 큰애는 나를 꼭 안으며 말한다. "엄마가 내 엄마라서 너무 좋아요. 매일 더 많이 좋아요." 이런 말을 들으면 많이 기쁘고, 조금은 마음이 무겁다. 내 엄마는 저런 고백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엄마는 아직도 종종 요구한다. "너도 이런 걸 해봐라, 저런 건 왜 안 해보냐." 그런 요구들은 더 이상 내 목을 조르지 않는다. 엄마로부터 거의 자유로워진 것 같다. 나를 바꾸고 싶어 하는 요구에 대해서 엄마를 기분 나쁘지 않게 하면서도 산뜻하게 사양할 줄 알게 됐다. 그리고 나도 엄마에게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다. 인정, 공감, 따뜻한 표현 같은 것들을 엄마로부터 갈구하지 않는다. 엄마도 저런 좋은 것들을 거의 받아본 적이 없으니 텅 빈 그릇에서 무엇을 퍼줄 수 있었을까. 엄마도 얼마나 허기졌을까. 줄 게 없어서 얼마나 곤란했을까.


엄마의 상처와 고통을 예전보다 더 이해한다. 엄마와의 대화는 점점 편해지고 길어진다. 온갖 괴로운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이만큼 뒷바라지해 주신 것에 감사한다. 터널을 통과한 엄마를 존경한다. 손주들을 이뻐해 주시는 것도 감사하다. 그럼에도 모든 걸 엄마에게 터놓진 못한다. "엄마, 사랑해요"라는 여섯 글자를 발화하는 것도 쉽지 않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게 어려울 뿐이다. "사랑해요"를 적는 대신 내가 그린 하트 이모티콘을 엄마에게 보낸다. 그 정도는 편안하게 할 수 있으니까.


매일 가족들로부터, 특히 딸아이로부터 차고 넘치는 인정, 공감, 사랑의 말을 듣는다. 매일 합격하고 매일 위로받고 매일 고백받는 셈이다. 어릴 적의 나와 지금의 나는 똑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가족으로부터 받는 대우는 달라졌다. 어릴 적의 나는 따뜻한 사랑을 충분히 표현 받지 못했는데 지금은 차고 넘치게 받고 있다. 인간은 존재 자체로 존귀하므로 사랑받지 못하는 건 언제나 부당하다. 또한 인간은 너무나 허물이 많으므로 사랑받는 건 언제나 은혜이다. 그러니 허물 많은 존귀한 사람들끼리 서로 너그럽게 사랑하며 사는 게 좋은 것 같다. 나의 엄마도 그런 사랑 속에 살면 좋겠다. 매일 '합격, 위로, 고백' 종합 세트를 받으시길 기도해 본다. 언제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내 사랑하는 엄마를 부탁드린다.


여호와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으신 분입니다. 주는 그가 만드신 모든 것들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여호와는 주를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가까이 계시며, 진실로 주를 부르는 자들에게 가까이 계십니다. (쉬운성경/ 시편 145: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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