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1월 두 달간 제안한 이모티콘이 다 불합격됐다. 총 18개의 미승인. 마음이 널을 뛰었지만 계속 그렸다. 미승인의 바다에서 건진 이모티콘들을 치료해 주고 매만졌다. 미승인 메일을 받으면 좀 더 보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 같아 감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1년 전처럼 미승인의 늪에 기약 없이 빠지는 건 아닐까 싶어 불안하기도 했다. 꽤 자신 있었던 이모티콘이 떨어졌을 땐 거대한 스포이트가 내 몸의 수분을 1초 만에 쭉 빼가는 느낌이었다.
새로운 이모티콘이 출시될 때도 미승인 메일의 난타에 얻어터지느라 충분히 기뻐할 수 없었다. 성취의 순간은 찰나이고 실패의 경험은 일상이다. 이모티콘에서만 실패한 건 아니다. 최근엔 엄마 역할, 주부 역할도 버거웠다. 쉼이 필요한데 쉬기가 어렵고, 쉬지 못하니 속이 곪았다. 속이 고장 나니 아이들을 대하고 집안일 하는 게 배로 힘겨웠다. 하지만 이런 고단함도 나에게 필요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라고 믿는다. 삶이 왜 피곤하고 어려운지 다 이해하지 못한다. 내 삶을 명쾌하게 해석할 수 없다. 어디로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나의 좋은 목자이셨다. 삶의 고비 때마다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나를 든든하게 보호해 주심을 체험했다. 현재와 미래의 어려움 속에서도 내 손을 잡아주실 것을 믿는다. 이것이 나를 버티게 하는 신앙이다.
실패가 싫으면 그림을 안 그리면 된다. 하지만 나에게 그림은 생존을 위한 도구이며 기쁨이자 선물이며 정체성이다. 그리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니 때론 눈물 흘리며, 때론 신나게 작업한다.
현재 심사 중인 이모티콘은 9개이다. 판결을 기다리는 이모티콘들을 열어봤다. 내 자식 같은, 내 맘에 쏙 뜨는 이모티콘들이다. 쳐다만 봐도 웃음이 나왔다. 만족스러웠다.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작업물이었다. 시간을 쪼개가며 타이머와 싸워가며 그린 결과물들. 하지만 너무 오래 쳐다보면 안 된다. 정이 들수록 미승인 받았을 때 속상함은 커지니까. 방금 전에도 새로운 이모티콘을 제안했다. 눈과 어깨, 손목이 뻐근하다. 귀가 푹푹 쑤시고 잇몸은 퉁퉁 부었다. 컴퓨터를 꺼야겠다. 하나님의 미소 같은 포근한 겨울 햇살이 이제 그만 밖으로 나오라는 듯 내 옆구리를 찌른다. 산책로에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