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토요일 밤, 그림을 그리고 싶다.

by 녹차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도 그리고 싶다. 그림은 질리지 않는 즐거움이다. 그림을 그리면 짜릿하다. 더 그리지 못해서 안달이 난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선과 색이 채워지는 과정이 재미있다. 과정은 유쾌한데 결과물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다. 그러니 자꾸만 그려보고 싶다.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이모티콘이든 일러스트든 뭐든, 내가 봐도 좋고 남이 봐도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 하얀 종이는 나의 단골 가게이다. 그림은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고마운 친구이다. 어디로 이사 가든 이 친구는 나와 늘 함께한다. 그림은 외로움을 달래준다. 생계에도 보탬이 된다. 종이 안엔 중력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그림을 그릴 때 막막하면서도 자유로운 건 그 때문이다.


잘 시간이 넘었다. 좀 전까지 가동되던 클립 스튜디오(그림 그리는 프로그램)를 껐다. 컴퓨터도 꺼야 하는데 미적거리고 있다. 미련이 남아서 쓸데없이 타자를 두드리는 중이다. 자야 되는데 그림을 그리고 싶다. 하루종일 꽤 그렸는데도 또 그리고 싶다.


그림에 취한 마음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카페인 같은 그림을 몸에서 뽑아내자. 그림을 꺼낸 빈자리에 졸음을 푹푹 채우자. 그림 그리고 싶은 마음은 서랍에 넣어두자. 안녕, 우리 내일모레 아침에 다시 만나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성취는 찰나, 실패는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