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은 나의 교통봉사 당번이었다. 전국적으로 기온이 뚝 떨어진 아침이었다. 이보다 더 껴입을 순 없을 만큼 중무장을 했다. 초등학교 경비실 앞의 봉사 일지에 나와 아이의 이름을 적었다. '녹색 어머니회'라는 자수가 새겨진 노란 조끼를 입으며 '학부모회'가 아니라 '어머니회'라는 명칭을 박아놓은 것이 씁쓸했다. 초등학교 교통봉사에 아빠보다 엄마들이 동원되는 경우가 절대 다수인 게 현실이지만 굳이 저렇게 많은 실로 '어머니'라는 단어만 도톰히 새겨놓을 건 뭐람.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는 '학부모(라 쓰고 '엄마'라 읽는다) 교통봉사'에 대한 지난한 고민을 뒤로하고 횡단보도로 이동했다.
'정지'라는 단어가 인쇄된 깃발의 대를 잡아당겨 길이를 늘렸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그늘진 횡단보도. 여기서 40분간 서 있어야 한다. 아침해가 건물 뒤에 숨어서 통 나올 기색이 없었지만 몸이 둔할 만큼 겹쳐 입어서인지 하나도 춥지 않았다. 그러나 10분 후부터 추위가 바늘처럼 옷을 뚫었다. 영하의 날씨에 바깥에 서 있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손가락, 발가락이 너무 힘들었다. 장갑도, 두꺼운 양말과 신발도 아무 소용 없었다. 겨울에 바깥에서 일하는 분들의 처지를 요만큼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추위를 견디는 것보다 더 힘든 게 있었다. 몇몇 아이들을 마주하는 일이었다.
칼바람을 맡으며 학교 가는 초등학생 아이들의 옷차림이 어이없을 만큼 형편없었다. 털 모자와 부츠, 패딩을 두른 아이 옆으로 빨갛게 언 종아리를 드러낸 채 반바지를 입은 아이도 함께 걸어갔다. 맨발에 슬리퍼만 신은 아이들도 있었다. 얇은 잠바를 입은 애들은 수두룩했다. 소신껏 멋을 부린 게 아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돌봄을 받지 못한 표가 나는 학생들이었다. 교통봉사고 나발이고 그 아이들을 뒤쫓아가 양말과 따뜻한 패딩을 사 입혀주고 싶었다. 꽁꽁 싸맨 나도 이렇게나 추운데…. 봄에 교통봉사할 땐 알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나는 지방에 산다. 지방에서도 조금 낙후된 동네에 산다. 이 동네엔 부모의 돌봄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꽤 산다. 몇 개월 전에 어느 구호단체와 함께 그 아이들의 가정에 방문하여 식재료와 간식을 나눠줬다. 아이들은 키가 심하게 작거나 너무 말랐거나 비만이었다. 중한 아토피를 앓는 아이와 지적 장애인 아이도 있었다. 부모들의 형편이나 상황은 몹시 나빴다. 우리 집에서 코 닿을 거리에 그런 이웃들이 있었다.
교통봉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이불 속에 손발을 집어넣었다. 뜨거운 보리차도 마셨다. 차를 몇 번이고 더 끓여 마셨다. 그럼에도 몸에 박힌 냉기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어느 정도로 큰 따뜻함이어야,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 온기여야 이 추위가 지워질까. 칼 바람에 아팠을 종아리와 맨발이 떠올라서 목이 멨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내 이웃들의 겨울이 너무 가혹하지 않기를 기도하며 구호단체 홈페이지에 들어가 난방비 정기후원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