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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시락

by 녹차

큰애가 아주 어렸을 때 장염에 걸린 적이 있다. 며칠간 죽과 물 외엔 아무것도 못 먹었다. 소아과에 갔더니 옆에 있는 다른 아이가 과자를 먹고 있었다. 큰애는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림의 떡 같은 과자를 가리키면서. 나는 왈칵 눈물이 터졌다. 옆에 다른 엄마들이 있었지만 울음이 나오는 걸 조절할 수 없었다. 아이가 마음껏 먹을 수 없다는 게 너무너무 마음 아팠다.


나는 스스로를 꾸짖었다. '아아니, 애가 무슨 중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겨우 과자를 잠깐 못 먹는다고 이렇게까지 슬퍼? 나 참, 이게 무슨 주접이야. 살다 보면 아이가 진짜 힘든 일도 겪게 될 텐데 그때마다 엄마가 돼가지고 애보다 더 울어젖힐 거야? 의연한 부모가 되어야지.' 하지만 고장 난 수도꼭지와 폭발해 버린 감정은 힘이 셌다. 마침내 나는 다음과 같이 결심했다. '장염 낫기만 해봐. 우리 아기한테 마트에 파는 음식 다 사줄 거야.'


그 이후로도 아이들은 종종 아팠다. 더 심하게, 더 오래 아픈 적도 많다. 하지만 애들의 고생 앞에서 즉각적으로 눈물이 펑 터진 건 저 때가 유일하다. 그때 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눈이 또 축축해진다. 내 새끼 입으로 음식을 넣어주지 못하는 것. 그건 가슴이 와그작 찌그러지는 통증이었다.


부모가 되니 새로운 일을 겪게 된다. 부모가 되기 전엔 몰랐던 기쁨을 맛봤다. 부모라서 경험해야 하는 아픔도 있었다. 어떤 감정이 배가되기도 했다. 측은지심이 그중 하나였다. 이 마음은 초기엔 내 자녀에게 과도하게 발휘되었는데 차차 다른 아이들에게로 번져나갔다.


큰애가 아가였을 때 아이티에서 강진이 발생했다. 작년에도 그곳엔 큰 지진이 났지만 2010년의 재난은 정말 참혹했다. 아이티 인구의 1/3이 사망했다. 도심을 촬영한 사진이 보도됐는데 남녀노소의 시신이 길 위에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모든 죽음이 기막혔지만 내 시선은 아주 작은 몸집의 사람들에게로 꽂혔다. 내 아이는 여기서 안전하게 살아 있는데 왜 저 아이의 생은 벌써 꺼져야 했을까. 모니터 앞에서 며칠을 울었다. 아이티 정치인들이나 불한당들이 가로챌 가능성이 높았지만 구호금을 보냈다.


한편, 나는 내 코가 석자다. 최근엔 4개월 내내 수십 개의 불합격을 쌓고 있다. 노동력이 속수무책으로 재가 되는 걸 보는 게 괴롭다. 집안에 목돈 들어갈 일이 코앞인데 푼돈도 꾸준히 못 벌고 있다. 집도 없고 땅도 없고 주식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극한 어려움 속에서 사는 아이들이나 이웃들을 생각하면 내 고민들은 부끄럽다. 그들 앞에선 내 곤란을 입에 올릴 수도 없다. 너무 윤이 반지르르하기 때문에.


심슨가족에 나오는 리사는 이런 말을 했다. "세상의 많은 고통을 두고 어떻게 잠을 자죠?"(시즌 1, 2화) 밥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 고통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속이 상한다. 내 사정도 변변찮지만 남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의 고통들 앞에서 무력감을 느낀다. 고통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슬프고 화가 난다. 하나님께 하소연도 하고 따지기도 한다. 그러면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복음서) 이 말의 1차 청자였던 제자들은 부자가 아니었다. 전 어부, 현 무직이었다. 굶주린 거대한 무리들의 허기를 해결할 능력이라곤 요만큼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 하나가 발견하여 가져온 작은 도시락으로 만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일으키셨다.


작은 도시락이면 된다. 나에게도 그건 있다. 기아와 고통의 난제는 내가 풀 수도, 해결할 수도 없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하나님도 그 점을 아신다. 그래서 나에겐 지속 가능한 작은 순종만을 자비롭게 요구하신다.


첫 애를 선물로 받아 몸속에 품고 있을 때, 처음으로 아동 결원 후원을 시작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후원에 임하는 마음이 비로소 짙어졌다.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기쁨, 그 입에 밥 못 먹이는 슬픔을 알게 되어서였다. 몇 명의 아동들에게 내 아이가 먹는 작은 도시락을 나누었다. 그들이 나이가 들어 '아동'이라는 이름을 벗고 사회로 나가는 걸 지켜보았다. 현재 후원 중인 아동, B를 알게 된 지는 곧 1000일이 된다. 1000일을 기념하여 B에게 편지를 썼다. B의 얼굴을 그린 그림도 첨부했다. 그림으로 돈 버는 재주는 허약하고 들쑥날쑥하지만 사랑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는 건 어렵지 않다. 이 그림은 경쟁률 같은 장애물이라곤 없는 쭉 뻗은 길을 달려 안전하게 B에게 도착할 것이다. 아이들을 향한 사랑은 재가 되는 법이 없다.


십수 년 전, 장염에서 회복된 큰애에게 마트에서 파는 걸 다 사주지는 못했다. 그럴 형편도 못 되었고 아이의 배에 그것들을 다 담을 수도 없으니까. 하지만 아이가 고른 과자 몇 개를 기쁘게 사주었다. 나도 아이도 행복했다.


작은 도시락 같은 나눔은 세상을 통째로 고칠 수 없다. 전 재산을 기부하거나 수천수억을 기부해야 기부 답지, 내 소유의 작은 것을 나누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은 도시락이 한 사람의 배나 마음은 채워줄 수 있다. 함께 행복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웃을 돕기 위해서 내 통장에 수천수억이 모일 때까지 인내할 필요는 없다.


"땅에 심은 것을 거두어들일 때는 밭의 구석구석까지 다 거두어들이지 말며 거두어들이다가 곡식이 밭에 떨어졌더라도 줍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어라. 포도밭의 포도도 다 따지 마라. 포도밭에 떨어진 포도도 주워들이지 마라. 가난한 사람과 외국인을 위해 그것들을 남겨 두어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다." (쉬운성경/ 레위기 19: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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