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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

by 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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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아이 반에서 녹색 학부모회 교통봉사를 지원한 사람이 나뿐이라는 걸 알게 된 건 어제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첫 교통봉사를 나갔다.


반마다 할당된 교통봉사는 1학기에 여섯 번, 2학기에 일곱 번 정도이다. 보통은 그걸 각 반 학부모 몇 명이 나눠서 감당한다. 하지만 올해는 나 혼자 열세 번을 다 서게 생겼다. 당황스러웠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코로나 확진 중이다. 학부모 교통봉사까지 세밀히 챙겨주시긴 힘든 상황이다. 교통봉사 업무를 담당하는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선생님께서는 어디까지나 봉사이기 때문에 해당 날짜에 모두 나가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하셨다. 시간 날 때만이라도 해주십사 부탁하셨다.


녹색 학부모회에 지원하지 않은, 또는 지원하지 못한 학부모들에게 일호의 원망도 없다. 부모들의 시간이 얼마나 빠듯한 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지원자가 나뿐임을 미리 알려주지 못한 담임 선생님이나 추가로 지원자를 뽑아주지 못한 담당 선생님께도 불만은 없다. 코로나 때문에 수업 준비할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쁘신 걸 알기 때문이다. 내 궁금증은 따로 있다. 현재 시니어 클럽을 통한 초등 교통봉사('봉사'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사실은 유급 노동이다)가 우리 동네를 포함하여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교육청은 언제까지 지속 불가능하다고 판명이 날대로 난 '녹색 학부모회'를 질질 끌고 갈 것인가.


나는 교육 관계자도 아니고 공무원도 아니고 뭣도 아니다. 시스템을 건드릴 능력이 없다. 그저 격무에 지쳐서 곤죽이 된 선생님들이 안타깝다. 가족을 부양하려고 새벽부터 출근하는 부모들의 처지를 이해한다. 밥벌이는, 아이의 안전을 누구보다 신경 쓰는 부모가, 안전 문제를 후순위로 둘 만큼 처절한 것이다. 이것이 그나마 출퇴근이 없는 '재택 N잡러'인 내가 녹색 학부모회 교통봉사를 지원한 배경이다.


납득되지 않는 시스템의 불편함과 교통봉사를 통해 얻는 이득을 어떻게 섞어야 할지 모르겠다. 세상은 구석구석 말도 안 되는 것투성이인데 이 작은 일에서조차 그렇다. 교통봉사를 지원하면 봉사 인원 모집에 피가 마를 선생님들께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한 겹의 안전막'으로서 보탬이 된다. 아이들과 눈 맞추며 통학을 돕는 나는 신선한 보람을 느낀다. 그러려면 1분 1초가 아쉬운 N잡러의 소중한 시간을 뚝 떼어놓아야 한다. 동시에 이 거지 같은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게 되며 봉사를 하지 못하는 학부모에게 괜한 부채감을 지울 수도 있다.


작은 일에 작지 않은 고민이 붙는다. 그러나 다행히도 눈과 손은 고민할 줄을 모른다. 눈은 열심히 신호등을 보았고 손은 부지런히 깃발을 뻗었다. 아이들과 웃으면서 인사를 나누고 자동차들을 경계했다. 몸을 쓰는 단순한 임무중엔 고민 묽어진다.


집에 돌아와 박영선 목사님께서 쓰신 『교회』의 한 챕터를 읽었다. 거기에 '작은 자'와 '작은 일'에 대한 말씀이 인용되어 있었다.


...'참 잘했구나. 너는 착하고 신실한 종이다. 네가 작은 것에 최선을 다했으니 내가 훨씬 더 많은 것을 너에게 맡기겠다...' (쉬운성경/ 마태복음 25:21상)


...'내가 배가 고플 때, 너희는 내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내가 목마를 때, 너희는 마실 것도 주지 않았다. 내가 헐벗었을 때, 너희는 내게 아무것도 입혀 주지 않았다. 내가 아플 때나 감옥에 있을 때, 너희는 나를 돌보지 않았다'... '주님, 언제 주님이 배고프거나, 목마르거나, 나그네 되었거나, 헐벗었거나, 아프거나, 감옥에 있는 것을 보고 우리가 돌보지 않았습니까?'...'내가 너희에게 진정으로 말한다. 이 사람들 가운데 가장 작은 자 한 사람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다.' (쉬운성경/ 마태복음 25:42~45 중)


박영선 목사님은 위의 성경 말씀을 다음과 같이 풀었다.


"왜 성경이 그토록 '작은 자' 하나를 강조할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맡겨진 일들이 모두 전체 속의 한 부분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약화시키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두가 합쳐야 하나란 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지체로, 부속으로 존재합니다...


...여러분은 작은 자요, 여러분이 하는 일은 작은 일입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자도 작은 자이며 어린 소자입니다. 그에게 한 일은 작은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이야말로 큰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손길에 쓰임을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깃발 들고나가는 싸움이 아닙니다. 매일 허락된 일상생활, 여러분의 가정을 지키고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생활 속에서 수많은 작은 일을 겪으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소자, 작은 자인 것 같지만 얼마나 큰 손길에 붙잡힌 존재인지를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있는 이상은 가장 위대한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역사를 움직이는 존재요, 놀라운 일을 맡고 있는 것입니다."


위 글을 읽으며 작은 일에 작지 않은 고민이 따라붙은 것이 이해됐다. 작은 일로도 큰 기쁨을 느낀 게 이해됐다. 나는 오늘 그 횡단보도 앞에 놓인 하나님의 '작은 자'였고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하나의 필수 '세포'였다. 모든 얽힌 것을 다 해결하지 못하고, 모두를 동시에 배려하지 못하고, 세상의 모순을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하고, 내가 줄 수 있는 작은 배려를 나누고, 모순 앞에서도 최선의 미소를 지어야 할 이유를 하나님은 보여주셨다.


다이어리를 열어서 한 달 뒤인 4월 13일에 동그라미를 쳤다. 다음 교통봉사 일정이다. 다리가 부러지지 않는 한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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