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와 어제, 이틀 연속으로 억울한 말을 들었다. 많이 서운한 말이었다. 목을 조이는 것 같은 말이었다.
그제 밤엔 잠을 못 잤다. 어제는 하루 종일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점 하나도 찍지 못했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건 오해라고, 나의 상황과 마음은 이러저러하다고 설명하고 싶었다. 나를 변호하고 싶었다. 그러나 선뜻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들을 마음이 없었으므로.
최근에 『오은영의 화해』라는 책을 읽었다. 오은영박사는 책에서 말한다. 인간관계의 균형을 위해서는 나의 입장을 한 번이라도 상대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때 중요한 건 '상대의 반응과 상관없이' 내 이야기를 하는 거라고 한다.
길길이 날뛰는 반응, 무시하는 반응, 귀찮아하는 반응, 자기 입장만 중요하다는 태도 앞에서 나는 담담히 내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 감정의 폭풍, 무례한 태도, 쾅 닫히는 문 앞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은 채 내 입장을 펼칠 수 있을까. 시도해 보지 않은 게 아니다. 이전에도 몇 번이고 용기를 냈었다. 그들에게 나를 오픈했다. 그때마다 그들은 분노했다. 귀찮아했다. 조용히 좀 있으라고 나를 밀어냈다.
그런 그들이 내 마음에 또 돌을 던졌다. 돌을 맞아서 아팠다. 하루를 꼬박 아팠다. 예전엔 말에 상처받는 나 자신이 싫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날 미워하지 않는다. 왜 나라는 인간은 이렇게 약하냐고, 왜 빨리빨리 씩씩하게 회복하지 못하냐고 스스로를 닦달하지 않는다. 돌에 맞으면 아픈 게 당연한 거다. 남달리 유약해서 그런 게 아니다. 통증은 그냥 통증일 뿐이다. 모기에만 물려도 피부가 말끔히 회복되려면 며칠이 걸리는데 하물며 두 번 연속 때려 맞은 마음의 통증이랴.
끙끙 앓으며 편지를 써 봤다. 내 말을 들어줄 리 없는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글자로 쏟아냈다. 약간 후련했고 꽤 허무했다. 다 쓰고 나니 확실하게 깨달았다. 이런 구구절절함을 그들은 절대 들어주지 않겠구나.
그러나 내겐 모든 걸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나는 자주 말한다. 남편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인생 최고의 선물이라고. 이 고백을 남편과 아이들에게 감탄사처럼 자주 읊는다. 남편은 나의 마음을 알아주며 내 이야기를 다 들어준다.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조건 없이 사랑해 준다. 남편에겐 감정의 폭풍도 없다. 그의 사랑은 깊은 바다처럼 잔잔하고도 풍부하다. 결혼 전엔 이런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이전의 모든 상처도, 현재의 상처도 남편의 사랑으로 위로받는다. 이번에도 남편에게 내 마음을 터놓았다. 남편은 들어주었고 공감해 주었다.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하지만 이런 남편도 내 문제를 대신 해결해 줄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내 말을 들어주는 또 다른 존재에게로 갔다. 내 어려움을 실질적으로 같이 돌파해 주시는 분, 하나님께 가서 호소했다.
하나님, 내 마음과 상황을 아시죠? 마음이 아파서 온종일 일도 못하고, 아이들에게 웃어주기도 힘들어요. 하루 내내 앓느라 힘들어요. 편안한 마음으로 제 삶을 살고 싶은데 그들이 이후에 또 돌을 던질까 봐 불안해요. 그들의 인정이나 사과 같은 건 바라지 않아요. 그저 제 인생을 좀 편안히 살고 싶으니 돌 좀 그만 던지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런데 그들은 제 말을 들어준 적이 없어요. 이전에도 몇 번이나 대화를 시도했지만 역풍만 맞은 거 아시죠. 그런 차가운 태도 앞에서 또다시 평정심을 유지하며 제 입장을 말할 자신이 없어요. 가만히 있기도 힘들고, 가만히 안 있기도 힘드네요. 하나님 도와주세요. 저 어떻게 할까요? 다시 대화를 시도해 볼까요, 아니면 가만히 있을까요?
어제와 오늘 새벽에 위와 같이 기도드렸다. 그 후 성경을 읽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대답을 들을 순서였다. 요즘은 사무엘상을 읽는 중인데 오늘 읽는 페이지에서 제일 먼저 이런 말씀이 보였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소. '나는...너희를 괴롭히는 다른 나라들에게서 너희를 구해 주었다."(쉬운성경/사무엘상 10:18) 아, 하나님께서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로부터 나를 구해주시겠구나. 내가 스스로 나를 변호하고 감싸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은 이번에도 나를 구해주실 것이다. 뭘 어떻게 손써 주실지 그 방법이나 시기는 모른다. 그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들었다.
조금 뒤에는 이런 구절이 나왔다. "...몇몇 불량배들은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할 수 있겠나?" 하고 비아냥거렸습니다. 그들은 사울을 미워하여 선물을 갖다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냥 잠자코 있었습니다."(쉬운성경/ 사무엘상 10:27) 사울은, 무려 하나님께서 콕 찍어 왕으로 지명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어떤 불량배들은 천지 분간을 못한 채 사울에게 비아냥댔다. 그런 불량배들에게 사울은 침묵으로 반응했다. 침묵한다 해도 내가 '내'가 아닌 게 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몰라주고 공격해도 나는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존귀한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오늘 식단 일기를 쓰기 위해 예전에 캡처해 둔 말씀을 꺼냈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있었다. "비웃는 자를 꾸짖지 마라. 오히려 미움만 산다. 지혜로운 자를 꾸짖어라. 그는 네 꾸지람을 고맙게 생각할 것이다. (쉬운성경/ 잠언 9:8)
이상의 세 번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확실히 깨달았다. 너를 비웃는 사람에겐 애써 입바른 말을 할 필요가 없단다. 그럴 시간과 에너지로 그냥 내가 너에게 준 오늘 하루를 살아. 나쁜 말들 때문에 내가 빚은 너의 존재가 변형 될 일은 없어. 그러니 침묵하고 있어도 괜찮아. 대신 나한테 다 말해. 네 기도에 이렇게 내가 대답해 주잖니. 너를 괴롭히는 사람들로부터 내가 널 구해줄게. 너 스스로 너를 구하려고 애쓰지 마.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는 동시에 눈물이 왈칵 솟았다. 하나님은 내 마음이 응급인 걸 아셨구나.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즉각적이고도 노골적으로 기도에 대답해 주실 리가 없다. 항상 깨닫지만 또 깨닫는다. 하나님은 내 아픔을 외면한 적이 없으시다. 기도에 선명하게 반응해 주시고 삶의 방향을 잡아주신다. 너무 황송하고 짜릿하다.
어쨌든, 하나님의 인도대로, 나는 침묵하기로 했다. 그들에게 나를 설명하기를 관뒀지만 억울하지 않다. 그들 덕분에 내 편엔 엄청난 리스너가 계심을 재확인했다. 하늘과 땅과 나를 만드신 하나님이 나의 말을 듣고 내 마음을 살피시며 선한 길을 알려주신다.
마음이 다 나았다. 벌떡 일어나 산책이나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