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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없이 미련하게

by 녹차

-이모티콘 작업 근황-


석 달 동안 미승인만 받았다. 연속 28개 미승인을 받았고 전체 미승인의 합은 202개가 되었다.


애를 써서 그린다. 대충 그리지 않는다. 문제는 승인받았던 것들과 미승인 받은 것들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답답하고 애가 탄다. 어쨌거나 계속 그린다. 다른 작가님들의 책을 읽고, 미승인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영상도 꾸준히 찾아본다. 연구하고 생각하며 메모하면서 그린다.


가끔은 풀이 죽는다. 때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다. 하지만 대부분의 날엔 즐겁게 열정적으로 작업한다. 철도 없이 미련하게 그리고 또 그린다. 좋은 이모티콘을 그리게 해주십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린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라는 말에 동의한다. 상황이 어렵고 실패가 계속되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은 나를 자석처럼 자신에게로 잡아당긴다. 불굴의 의지로 그리지 않는다. 그림과 나 사이엔 밀당이 없다. 서로를 계속 당기기만 한다.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것은 커다란 은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실패가 푸짐하더라도 잘 견뎌야한다.




오늘은 위의 영상을 보았다. 카카오 이모티콘의 최고령 작가님 인터뷰이다. 참 많은 말씀에 공감했다. 특히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그날의 할 일을 안 한 것 같다'라는 말씀에 눈이 커졌다. 완벽하게 똑같은 입장이다.


내 많은 실패와 시행착오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쌓여가는 오답노트를 보며 곰곰 생각해 보지만 거창한 답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나도 장은주 작가님처럼 살고 싶다. 얼마나 많이 실패하든, 나의 실력 없음과 센스 없음이 얼마나 지독하든, 연필 잡을 힘이 있을 때까지는 계속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다. 그러다 보면 또 언젠간 누군가에게 내 그림이 닿을 기회가 오겠지.


이제 설거지를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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