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말부터 7월 말까지, 두 달 약간 넘는 기간 동안 줄줄이 미승인을 받았다. 서른 개의 미승인을 이어 받다가 어제 마침내 한 건의 승인을 받았다. 오랜만의 파란 두 글자, '승인'. 볼을 꼬집었다. 꿈이 아니구나. 숨을 후우 내쉬었다. 감사했다.
어제저녁 밥상에서 가족들에게 승인 소식을 전했다. 남편과 아이들은 수저를 놓고 박수를 쳐주었다. 나보다 더 기뻐해 주어서 쑥스러웠다. 부끄러움과 고마움 속에서 무심한 척, 나는 계속 수저를 놀렸다.
큰애가 말했다. "그렇게 오래 많은 미승인을 받으면 나는 매일 울 것 같아요. 어떻게 엄마는 안 그래요? 어떻게 계속 그려요?"
나도 로봇이 아니다. 야들야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실패가 계속되면 너무나 고달프다. 그렇기에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힘들 땐 두 가지를 사실을 기억한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
나에겐 자녀가 있다는 사실.
평소에도 늘 기도하지만, 힘든 일이 있을 땐 하나님께 더욱 기도한다. 체면 같은 거 차리지 않고 속을 다 털어놓는다. 기도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내 모든 요구를 즉각 들어주는 자동판매기라서가 아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런 분이라면 나는 미승인을 한 번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기도하는 이유는 그분이 나의 참되고 선한 부모이시며 영원한 비빌 언덕이시기 때문이다.
"기도란 우리가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을 얻어내는 수단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지키시는 아버지 이심을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아버지와 보내는 시간에는 실패이거나 의미 없는 시간은 없습니다. (노진준 목사/ 출처 )"
기도하는 중에 말씀을 읽거나 듣노라면, 나에게 꼭 맞춤 제작한 것 같은 위로와 지혜를 만나게 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감각하게 되는 순간이다. 지금 내 처지를 다 이해하시는 분, 나를 선하게 인도하는 하나님을 나는 믿는다. 이 믿음으로 어려운 시기를 견딘다.
내가 자녀라는 사실과 더불어 나에게 자녀가 있다는 사실이 삶의 고단함을 이겨내게 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딸과 아들은 말 그대로 토끼 같은 자식들이다. 남편과 함께 얘네들을 먹여살려야 한다. 그러니 부모는 자기 일이 안 풀린다 한들 주저앉아 한탄할 새가 없다. 대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며 묵묵히 일할 뿐이다. "하나님, 저에게 두 자녀를 주셨고, 해외의 두 아동을 후원하게 하셨죠? 얘네들을 책임질 힘을 주실 거라 믿어요. 아이들을 끝까지 먹여 살리고, 끝까지 사랑할 수 있게 저의 상황과 마음을 채워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