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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는 분

by 녹차

어젯밤에 소위 가위눌림이라고 하는 수면마비가 찾아왔다. 눈은 뜨고 있었지만 의식은 계속 꿈속이었다. 꿈에서 나는 큰애와 대치중이었다. 깜깜한 방에 흐릿하게 보이는 책장의 그림자를 큰애로 착각했다. 반 수면상태의 나는 큰애의 무언가를 만류하려고 기를 썼다. 아이에게 애걸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아이를 붙잡고 흔들고도 싶었다. 하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우뚝 서 있는 아이와의 갈등,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나, 움직여지지 않는 내 몸은 삼중고였다. 괴로워서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어떻게든 소리를 내려고 몸을 비틀고 쥐어짰지만 되지가 않았다. 절망 끝에 하나님께 빌었다. 입 주변과 성대의 근육을 있는 대로 몰아붙였다. 마침내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 도와주세요!" 그 즉시 나는 내 목소리를 들으며 깨어났다. 하나님은 이번에도 나를 도우셨다.


수면마비와 꿈에서 탈출했지만 현실로 곧장 돌아오진 못했다. 저기 서 있는 게 큰애가 아니라 책장이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 1분 정도가 필요했다. 내가 지금 누워 있는 이 집이 어떻게 생겼으며, 누구와 살고 있는지 기억해 내기 위해선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사람은 스트레스와 피로 때문에 너무 익숙한 사실조차 잠시 까먹게 되나 보다.


최근 큰애가 어떤 잘못을 반복하는 일이 있었다. 나는 큰애에게 실망했고 기운이 많이 빠졌다. 큰애 역시 스스로에게 실망했다. 아이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대화와 사과가 오갔다. 남편과 나는 아이를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상황을 재정비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그러나 마음은 쉽게 편해지지 않는다. 전능자의 힘에 기대어 기도하는 것 외엔 다른 수가 없다. 큰애를 미워하지 않게 해 달라고, 포기하지 않게 해 달라고,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한다. 아이가 같은 잘못을 또 저지른 그날, 나는 아이를 안고 토닥일 뿐 차마 사랑한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내 힘으론 정말이지 할 수 없었다.


힘든 밤을 보내고 아침에 성경을 읽는데 하나님은 다음의 말씀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며 힘이십니다. 어려울 때에 언제나 우리를 돕는 분이십니다. (쉬운성경/ 시편47:1)"


자녀 양육을 하다가 벽에 부딪힐 때, 자녀의 좌절을 눈으로 볼 때, 안간힘을 써도 한 마디의 말도 못 뱉어내는 나 자신을 만날 때, 나는 하나님을 호출한다. 그분은 언제나 나를 돕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괴로운 밤에서 깨어나게 해 주신 것처럼, 낮의 괴로움 속에서도 나와 내 아이를 도우실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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