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즐겨 입던 티 두 장을 버렸다.
1. 12년 된 고양이 프린트 티.
큰애가 2살 때쯤 내가 선물 받은 티이다. 커다란 재래시장에서 지인이 즉흥적으로 사줬다. 남색 바탕에 엄청나게 큰 고양이 얼굴이 프린트된 옷이다(고양이 얼굴 너비가 내 손으로 한 뼘 반이다). 안쪽으로 미세하게 기모 처리가 되어 있어서 얇아도 따스했다. 무지막지하게 큰 그림이 인쇄된 옷은 정말이지 내 취향이 아니었으나 선물 받는 그 순간 거절할 수 없었고, 막상 입어보니 기능적인 면에선 흠이 없었기에 홈웨어로 즐겨 입었다. 오른쪽 팔 쪽에 생긴 구멍 하나, 청소하다 실수로 생긴 락스 자국, 전체적으로 일은 보풀들, 군데군데 떨어진 아랫단, 엄청나게 늘어난 목둘레 등이 이 옷의 연식을 말해준다. 어제 서랍장을 정리하며 문득 인정했다. 이젠 보내줘야 할 때라고. 첫아이의 침과 눈물부터 나의 땀, 생활 속의 온갖 구정물을 머금었다 뱉었던 티. 정들긴 했지만 기쁘게 떠나보낸다. 그리고 이 옷을 대신할 띠동갑 티를 주문했다. 프린트라곤 없는 깔끔한 먹색 티이다. 내 취향에 꼭 맞는 디자인 되시겠다. 맘에 드는 옷을 닳을 때까지 오래 입을 생각을 하니 달콤하다.
2. 6년 된 줄무늬 티
적당한 두께, 실용적인 길이, 내가 좋아하는 흑백 줄무늬, 헐렁한 품이 좋아서 즐겨 입은 티이다. 직접 선택해서 산 옷이라 애착이 가서 더 자주 입었다. 집순이가 집에서 봄, 가을, 겨울 내내 입었으니 닳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고양이 프린트 티에 비하면 아직 젊었는데도 낡은 걸로 치면 막상막하다. 양쪽 겨드랑이에 구멍 세 개, 팔에 구멍 한 개가 생겼고 소매 단 풀린지는 꽤 되었다(그러나 귀찮아서 바느질은 안 했다). 이 옷 역시 보내줘야 할 때라는 걸 깨달았다. 다행히 온라인 쇼핑몰에서 똑같은 옷을 발굴하여 주문했다. 오예.
비운 옷들이 저 두 벌만은 아니다. 서랍장에서 안 입는 옷을 모두 비웠다. 멀쩡한 옷은 당근 마켓에 무료 나눔 했고 입지 않는 옷과 낡은 옷은 버렸다. 즐겨 입는 옷, 나와 가족의 입맛에 맞는 옷만 남긴 서랍장은 신경안정제로 탈바꿈됐다. 이제 머리가 혼잡스러울 땐 서랍장을 열어보면 된다. 깔끔한 오와 열, 시원한 여백이 복잡한 내면을 토닥여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