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에 쓴 글)
얼마 전에 '공부 타이머'라는 걸 샀다. '업 타이머'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서다. 도대체 내가 집에서 그림을 몇 시간이나 그리고 있는지 체크해 보고 싶었다. 며칠 체크해 보니 2~6시간 정도로 그날 그날 격차가 컸다. 그렇다면 오늘의 작업 시간은? 3시간 10분에 불과했다. 참 감질나게 그렸다.
펜을 펜대에 꽂으며 아쉬운 한숨을 뱉었다. 뭐 하느라 이것밖에 못 그린 거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게으름을 피웠나? 실망스러운 눈으로 오늘 완료한 to do list를 펼쳐봤다.
성경 읽기, 개인 기도, 아침/점심/저녁 치과 약 먹기, 아침/저녁 가글 하기, 점심/저녁 차리기, 설거지하기, 청소하기, 책 한 권 읽기, 독서 발췌하기, 행주 삶은 것 헹구기, 수건 삶기, 면 생리대/생리컵 삶기, 세탁기 돌린 후 빨래 널기, 빨래 개기, 영어 듣기, 에세이 한 편 쓰기(어쩌다 보니 지금 두 편째 쓰고 있는...), 고구마 삶기, 식빵 굽고 썰어서 냉장 보관하기, 당근 마켓에 안 쓰는 그릇 나눔 글 올리기, 당근 마켓 구매자 만나기, 머리 커트하기, 막내 공부 봐주기, 큰애랑 큰애 친구에게 간식 대접하기, 임플란트 수술 부위 냉찜질하기.
빼곡한 내 하루가 to do list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생리 이틀째였고 미승인 메일을 세 통이나 받았다. 아픈 아랫배와 아픈 허리, 낙심한 마음, 여전히 부어있는 임플란트 수술 부위를 달래가며 그림을 그렸다. 바쁜 와중에 부스러기 시간을 꽁꽁 뭉쳐 그나마 3시간 10분을 만들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너무 실망하지 말자. 실망스러워서 입꼬리가 내려가고 괜히 눈물도 핑 돌지만 그러지 말자. 진짜 그러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