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왼쪽 잇몸에 임플란트 뿌리 두 개를 식립했다. 대중화되고는 있지만 내가 40대 초반에 임플란트 수술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수술날 아침, 상위 1% 겁쟁이인 나는 치과로 걸어가며 미친 듯 갈등했다. '그냥 잠적할까?'
현실 부정도 해봤다. '임플란트라니 실화냐? '
이날따라 치과는 왜 이렇게 가까운 것인가. 몇 걸음 떼지도 않았는데 벌써 치과 계단 앞이었다. 처참한 심정으로 층계를 올랐다. '와 씨, 난 이제 죽었다.'
경험해 보지 않은 일 앞에서 두려움을 많이 느끼는 편이다. 낯선 일인데 난이도까지 높으면 걱정의 농도는 더 짙어진다. 쫄리는 마음이 꿈속까지 영향을 줬다. 수술 전날 밤 꿈에서 나는 수술대에 누워 있었다. 고통스러운 내용의 예고편이었다. 억울했다. 현실에서 한 번만 고생하면 될 걸 꿈에서 쓸데없이 리허설한 것 같아서.
낯선 상황이 싫다면 온라인으로 예습을 하면 될 것 아닌가? 하지만 나는 임플란트의 이응도 검색하지 않았다. 수술 과정이 끔찍하다거나 통증이 심하다는 내용을 보게 될까 봐 그랬다. 그런 정보를 입수할 경우 최강 겁쟁이의 대처는 두 가지뿐이다. 즉시 수술 포기, 또는 수술할 때까지 벌벌 떠느라 현생 폭망.
의도적 임알못이자 모태 쫄보인 나는 수술 시간 5분 전에 치과에 도착했다. 대기실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자 머릿속은 리터럴리 진공상태가 됐다. 간호사분의 호명을 듣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잘 세팅된 나의 좌석이 보였다. 그곳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 '초록'이 풍년이었다. 길쭉한 쇠막대기들 아래에 깔려 있는 초록 수건, 초록 수술복을 차려입은 간호사들, 그 외에도 용도를 알 수 없는 각종 초록 천들. 불쾌한 긴장이 몰려왔다. 내게 늘 안정감을 주던 색깔의 배신이었다.
마취가 시작됐다. 이전에 했던 그 어떤 치과 치료보다 마취 주사를 많이 맞았다. 그 후 엑스레이를 찍으러 갔다. 치과에서 찍는 파노라마 엑스레이는 일어선 채로 턱과 이마를 기기에 고정하고 입으론 뭔가를 물고 손으론 손잡이를 잡은 뒤 눈을 감은 상태로 촬영한다. 간호사분께서 엑스레이 세팅을 마친 후 "움직이지 마세요"라고 말하며 방을 나갔다. 그때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입이 덜덜 떨리는 것이었다. 다리도 같이 떨렸다. 움직이지 말아야 하는 내 몸이 빠르게 '후달달달달달달달달달' 진동했다. 날씨가 추웠나? 아니다. 당시 기온은 20도를 살짝 웃돌았다. 마취 주사를 맞은 부작용일까? 아니다. 주사를 맞지 않은 다리도 떨렸으니까. 방사선 엑스레이 부작용이려나? 아니다. 전엔 이 방에서 떨어본 적이 없다.
되지도 않는 핑계를 그렇게 자꾸 지어냈다. 민망하고도 어이없는 후들거림을 변명으로 둘러대고 싶었다. 겨우 임플란트 앞에서 이렇게까지 겁을 먹은 나머지 물리적으로 요동하는 나, 입이 너무 떨리는 바람에 엑스레이 사진이 다 뭉개질까 봐 패닉에 빠진 나, 이런 딱한 경련을 의료진들에게 들킬까 봐 전전긍긍해하는 찌질한 나를 정면으로 감당할 수가 없었다. 부끄럽고 무서워서 딱 죽을 맛이었다.
영겁 같았던 몇 초의 엑스레이 촬영을 마치고 치과 의자로 돌아갔다. 조금 뒤 동그란 구멍이 뚫린 초록색 수건이 얼굴에 덮였다. 그 즉시 두 번째 난관이 닥쳤다. 심장이 2배속으로 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매너라곤 없는 층간 소음 가해자처럼 심방과 심실이 꽝! 꽝! 뛰어댔다. 내 의지로는 조절이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몹시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꺼내는 나만의 카드가 있는데, 바로 '출생' 경력이다. 그 카드엔 '난 애를 두 번이나 낳았는걸! 이런 건 껌이지!'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그러나 그 기합마저도 아무 효험이 없었다.
마침내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순간, 진심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었다. 선생님의 손목을 붙잡고, 수술 도구를 다 엎은 뒤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선생님! 이거 많이 아픈가요? 그냥 어금니 없이 살면 안 되나요? 이거 하다가 턱 박살 나면 어떡하죠? 나 그냥 돌아갈래애애애애!!!!!"
안타깝게도, 깽판을 치거나 수술을 받는 것 그 어느 쪽으로도 담력이 없는 나는 어색하게 "어... 어..." 소리를 내며 부자연스럽게 입을 벌릴 뿐이었다. 절체절명의 그 순간 의사선생님께서 두 번째 말씀을 선포했다. "힘드시면 손을 드세요. 그렇게 많이 힘들진 않을 거예요."
그렇게 많이 힘들진 않을 거예요.
그렇게 많이 힘들진 않을 거예요.
그렇게 많이 힘들진 않을 거예요...
저 열세 마디 말. 그것이 빛의 속도로 나의 공포심을 박살 냈다. 한순간에 심장이 정상화됐다. 몸의 떨림이 뚝 멈췄다. 내 몸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말 한마디에 이렇게까지 즉각적인 변화를 보인 게 정말이지 거짓말 같았다. 칠흑 같은 동굴에서 손전등을 탁! 켰을 때 어둠이 즉각 사라지는 것처럼 나의 시름은 증발했다. 강력하고 강력한 위로였다.
더욱 고맙게도 의사선생님의 말씀은 공갈이 아니었다. 잇몸과 턱뼈에 무지막지한 드릴의 압력이 느껴지는 와중에도 통증은 전혀 없었다. 진정 0에 가까웠다. 매일 걸리적거리는 내성 발톱보다도 안 아팠고, 호흡 곤란을 일으킬 만큼 아팠던 산통과는 비교도 안 됐다.
그럼에도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드릴의 소음과 진동, 압박 같은 것들이 영원히 지속되는 고문처럼 느껴졌다(사실 수술 시간은 짧았다. 총 25분 걸렸다. 두 개의 뿌리를 식립 했으므로 한 개에 12.5분 걸린 셈). 드릴에서 나오는 물이 석션이 잘되지 않아 자꾸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도 무척 불편했다. 잇몸을 꿰맬 때 실이 입술 끝을 너무 자극했던 것도 스트레스였다.
아래는 임플란트 수술에서 느낀 세 가지 감각을 10점 만점으로 표현해 본 점수이다.
①잇몸에 느껴지는 통증: 0(집에 돌아와 마취 풀린 이후에도 거의 안 아픔)
②석션/실/진동으로 인한 불편 : 5
③공포심 : 처음엔 100이었다가 "그렇게 많이 힘들진 않을 거예요."를 들은 이후엔 6~7 정도.
수술 후 나 자신을 복기해 봤다. 왜 그렇게 창피스러울 만큼 겁에 질렸는지를.
시야가 차단되는 점, 언제 얼마나 아플지 모른다는 점, 멀쩡한 잇몸을 자른다는 점, 멀쩡한 뼈에 구멍을 내야 한다는 점, 내 뼈에 처음으로 인공적인 뭔가를 심는다는 점, 굉장한 드릴질이 몇 번이나 남았는지 모른다는 점, 실로 입술을 따갑게 짓누르는 매듭질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점, 수술이 어떤 프로세스로 진행되는지 모른다는 점, 내가 아무것도 통제하지 못한 채 무력하게 누워만 있어야 한다는 점...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얼어붙게 만든 것 같다.
아무튼 임플란트 전 과정 중 가장 힘든 부분을 끝내고 살아 돌아왔다. 확신의 겁쟁이인 나도 임플란트를 치러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임플란트 수술을 앞두고 있을 누군가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많이 힘들진 않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