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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Oct 05. 2022

모든 사람은 풀과 같고

어제 점심때 떡만둣국을 먹은 게 실수였을까. 한 두시간 지나니 슬슬 어지러웠다. 왜 이러지 싶어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 누웠다. 아뿔싸, 급체였다. 3시부터 5시까지 토하고 토했다. 어설프게 소화된 점심을 대여섯 번에 걸쳐 다 쏟아냈다. 목구멍과 식도가 이렇게 따가울 수 없었다. 전부 게워내고 나니 힘이 빠졌다. 힘이 빠지면 그냥 축 늘어지면 그만일 텐데 뭐 이렇게 아프고 고통스러운지. 물이 다 빠져 말라버린 강바닥은 태연하지가 못하다. 쩍쩍 갈라진다. 비명을 지르면서 망가진다. 나도 딱 그 지경이었다.


사람의 몸은 정말이지 쓸만하다. 수정체가 세포분열을 한 후 가장 먼저 만들어지는 장기는 심장이다. 그때부터 탄생 후 죽기 직전까지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질주한다. 머리카락과 손톱은 내가 관리하지 않아도 알아서 성실하게 자란다.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신묘막측하다. 조금만 들여다봐도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얼마나 기이하게 만드셨는지 탄복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몸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 이사야서의 말씀은 참으로 적절하다. "모든 사람은 풀과 같고, 그들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다. 여호와께서 그 위에 숨을 내쉬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쉬운성경/이사야 40:6~7중)"


급체로 앓아누운 나는 목소리도 낼 수 없고 몸도 움직일 수 없었다. 빈틈없이 곤란했다.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었다. 쩔쩔매며 빌었다. 내 몸뚱어리의 한계를 하나님께 여쭈었다. 그리고 나를 수치와 괴로움으로 모는,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내 인격의 한계도 같이 말씀드렸다. 하나님, 이것들 좀 고쳐주세요. 괴로워 죽겠어요. 그런데 제가 고칠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수리해 주세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가족들의 도움, 병원의 도움으로 지금은 기력을 되찾았다. 만 하루를 굵고 짧게 아픈 뒤 원상 복귀됐다. 오늘 오후부터는 몸을 살살 움직여 행주를 삶고 아이 교복을 빨고 식구들 저녁을 차렸다.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다. 여기서 뭘 더 바랄 게 있을까. 평소에 왜 그렇게 많은 고민을 붙잡고 살았을까. 어려움을 만날 때면 삶의 부수적인 것들이 희미해진다. 고난은,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볼 수 있게 해주는 맑은 안경인가 보다.


저녁 상을 물린 후 수요예배에 갔다. 오늘 설교는 여리고성을 점령한 이야기였다. 인간이 점령할 수 없는 여리고성을 하나님께서 무너뜨려주신 이야기. 이런 기적 같은 이야기를 나를 믿는다. 삶에서 만나는 모든 한계 앞에서 나의 구원이 되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이루어진다." (쉬운성경/ 이사야 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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