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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 Mar 02. 2023

최고의 작업실



나의 작업실은 우리 집 안방이다.

이 방을 막내와 함께 쓰고 있다.   

  

안방엔 

나와 막내의 책상, 

작은 책장 한 개, 

문 다섯 개 달린 장롱, 

내 가슴까지 올라오는 서랍장,

전자 피아노, 스탠드 에어컨이 

벽 4면을 빽빽히 두르고 서 있다.    

  

안방 책장엔 도서관에서 빌려온

어린이 도서와 보드게임들이 있다.

그래서 안방은 자주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애들은 내가 앉은 곳 바로 뒤에서

블록을 부어서 놀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보드게임도 한다.

귀가 따갑게 떠들어대며 논다.     


나는 이모티콘 작가이자

엄마이며 주부이다.

세 개의 업무를

하루 종일 뱅뱅 돌린다.   

  

많은 것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부른다.     


아이들은 간식과 밥을 달라며,

문제집 채점을 해달라며,

이것 좀 보라며,

심심하다며 나를 부른다.     


보글거리는 냄비, 텅 빈 냉장고,

더러운 방바닥,

세탁이 끝났다며 노래하는 세탁기,

빵을 다 구웠다고 삑삑 대는 제빵기,

셀프 드라이클리닝을 헹구라고

울려대는 타이머,

목이 탄다고 쪼그라드는 식물들도

나를 부른다.     


이런 상태에서 핸드폰까지 나를 부르면

답이 없다.

전화, 문자, 알람까지 수시로 울려대면

정신분열이 올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핸드폰을 

24시간 내내 방해금지 모드로 해 놓는다.

즐겨찾기 해 놓은 가족 외의

모든 전화, 문자, 앱 알람을 꺼 놨다.     


아침 첫 시간을 주님께 드리고

가족들을 챙기고

집안일을 하고

무수한 잡일을 다 한 뒤

남은 시간을 박박 긁어모아서

그림을 그린다.   

  

주 5일 근무, 

하루 평균 6~7시간을 그린다.     

반쯤 탈곡된 정신으로,

집중력의 바짓단을 붙잡은 채로

그린다.     


최근 읽은 어느 소설가의 에세이에서

작업실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작업실은 

생활 소음과 가족들로부터 분리된

반드시 고립된 공간이어야 한다고

그는 말하고 있었다.    

 

독립된 작업실을 바란 적은 없다.

하지만 나만의 방은 늘 갈구했다.

이런 공간과 상황에서 일하는 게

나도 너무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수 년 동안 

이렇게 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

하나님은 나에게 방을 주시는 대신

새로운 생각을 알려주셨다.     


가족은 내 일의 방해꾼이 아니라

내가 일 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라는 것을,

나 홀로 고립된 방 보단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다정한 공간이 

더 큰 복이라는 것을

알려주셨다.     


난, 만만치 않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초능력을 발휘하여 

일을 해내는 작가는 아니다.     


그저 하나님께 최고의 작업실을 선물 받은

복 받은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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